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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에 대한 모든 것이 담겨져 있다.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고통의 근본적인 치유를 하나님의 은혜로 치유한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 이상으로 큰 일을 행한다. 바로 그것을 여러분이 보고 느끼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죄책감은 우리가 우리 개인의 도덕적인 기준을 위반하는 어떤 일을 한 것에 대해 책임감을 느낄 때 생겨나는 정신적 감정적 고통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죄책감은 타락하고 죄많은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들 가운데 하나이며, 우리의 행동을 제한하시고 또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분의 은혜의 한 부분으로서 작용한다.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비정상적인 인간이다. 그들은 반사회적 이상 성격자 혹은 반사회적 정신병 환자로 불리우게 되며 그 정도면 대개는 위험한 수준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가장 기본적인 도덕 기준을 깨뜨리거나 가장 잔학한 범죄를 저질러놓고도 죄책감의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해버리고 만 도덕적 영적 나병환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1950년대 크로스컨트리 사냥 대회에 나가서 무죄한 열네 명의 목숨을 살해했던 찰리 스탁웨더와 같은 사람이다. 법정에서 그는 죄책감을 느꼈냐는 질문에 대하여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요, 토끼를 쏘는거나 별로 다를 바가 없던데요.” 그는 죄책감의 고통을 느끼는 능력을 완전히 상실해버린 양심 없는 사람의 극단적인 예였던 것이다.
그러나 죄책감은 반대편 극단으로 치달아 아주 잔인하고 파괴적인 폭군이 될 수도 있다. 행위 지향적인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그토록 편만해 있는 것이 바로 이러한 죄책감이다. 그들의 죄책감은 뭔가 잘못된 것을 행했거나 생각했을 때 생겨나는 그런 정상적이고 구체적인 죄책감이 아니다. 그들의 죄책감은 모호하게 일반화된 감정이다. 한 내담자에게 자신의 죄책감을 한 번 표현해보라고 했더니 이렇게 아주 적절하게 표현했다. “저의 죄책감은 왠지 모르게 항상 찜찜한 기분 같은 겁니다.” 이 전면에 깔린 죄책감이 그들 그리스도인들의 도덕적 영적 바탕 세력이다. 이 죄책감의 끈질긴 압력이 그들로 하여금 쉴새없이 더 자꾸만 뭔가를 하게 만든다. 그들이 알고 있는 모든 성경 말씀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믿고 순종하려는` 그 많은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죄책감을 결코 떨쳐버리지 못하며 그들이 이미 하나님께 용서받았고 받아들여졌다는 확신을 주장하지 못한다. 그러면 이 사람들이 왜 죄책감의 사슬을 깨뜨리는 것을 그토록 어려워하는지를 하나하나 살펴보기로 하자.
┃본문 143-145 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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