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의 수고와 노력, 율법을 잘 지켜서 천국에 갈 수 없다. 우리의 어떤 공로와 수고 없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오직 예수님의 희생과 그분의 대속으로 구원을 얻었다고 고백하는 것이 기독교의 구원관이다.
p.35 <하늘나라의 비유1>中
주님이 우리를 부르신다. 물론 준비된 자를 부르신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주님의 소명은 인간의 조건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세리 마태처럼 우리가 죄로 물든 자리에 앉아있을 때, 악에 찌들어 살아갈 때, 교만과 거만한 마음으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살아갈 때, 주님은 강권적인 손길과 음성으로 부르시고 외치신다.
p.68 <다시, 부르심>中
믿는 자에게 고독과 외로움은 때로 긍정적인 것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우리 삶에서 경험하는 고독함과 외로움은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해결하지 않아도 된다. 폴 틸리히의 말처럼 그리스도인이 느끼는 외로움과 혼자 있게 된 즐거움이 있다면, 그 안에 분명 하나님의 목적이 있음을 기억하고 신앙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p.158 <거룩한 고독이 필요할 때>中
모든 것이 새로워지는 신앙의 삶에서 서로 정죄하고 다투고 싸우며, 율법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예배의 본질을 통해 예배자의 마음과 자세를 회복하는 것, 바로 그것이 영적인 쉼이다.
p.204 <쉼의 시간>中
교회는 불러 모아야 할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대면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을 대면했던 모습을 회개해야 한다. 또한, 비바람이 몰아치고 풍랑이 몰아쳐도 상류로 항해 올라가는 연어처럼 세상에 맞서 거꾸로 향해 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교회가 추구해야 할 목표이자 방향이며, 회복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p267 <역류의 예수>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