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가 시작이다
우리는 공포스러운 전염병을 만났습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는 2020년 6월 10일 오후 3시 00분 현재 전 세계 확진자는 7,323,427명이고 사망자는 413,681명으로 사망률은 5.65%입니다.
인간이 할 수 없다
이 전염병의 문제는 치료제나 백신의 개발로 치료되려면 시간이 걸린다는 점입니다. “미국 알레르기감염증연구소의 주도 아래 45명의 건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임상에 돌입한 모더나의 코로나19 백신은 개발이 완료되기까지 최소 12개월에서 18개월이 소요될 전망”이라며 “현실적으로 올해 안에 백신이 상용화되기는 어려워 보인다”(한경비즈니스 2020-3-31 인터넷판)고 밝힌 것을 보면 이 전염병이 다 퍼지고 면역력이 웬만큼 생기고 잘 견디지 못한 사망자들이 나온 후에야 진정된다는 뜻입니다. 일시적이지만 ‘인간이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인간 세상에 강력한 경고인 셈입니다.
하지만 이같은 전염병은 역사를 돌아보면 작고 큰 경우가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더욱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것보다 더 심각했던 적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20세기 초인 1918년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한 사람은 3천만명에서 5천만명으로 제1차 세계대전으로 사망한 2천만명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그때도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약 1억명이 죽은 1347년 발생한 흑사병이 있었고 더 거슬러 가면 165년에 발생한 안토니우스 역병이 있습니다. 이 기막힌 전염병들의 특징은 ‘인간이 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시키는 사건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주시할 것이 있습니다. 아니러니컬하게도 그같은 인간 절망의 시기에 복음은 확장되었고 놀라운 부흥운동이 일어났을 뿐 아니라 교회는 고통당하는 세상에 유익한 존재로 등장합니다. 그것이 오늘 교회가 오히려 기피 대상이 되고 위험한 집단으로 여기는 상황과 전혀 다른 점입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입니까? 여러 가지 점에서 살펴야 하겠지만 이전의 상황들과 오늘 교회의 상황과 다른 분명한 점이 있는데 그때는 회개 운동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 회개운동은 크게 두 방향에서 이뤄졌습니다. 하나는 위기를 겪으면서 교회가 회개로 나아간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먼저 회개가 이뤄지고 영적 부흥을 만난 후에 전염병을 만난 경우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먼저 회개 운동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코로나 19라는 전염병이 온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만난 전염병 앞에 교회가 심각하게 회개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교회는 역사상 가장 부패하고 무기력한 상황을 맞았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알다시피 이미 목회자의 윤리는 흔들리고 물질화된 신앙과 번영신학에 물든 한국교회의 위기 현상들이 밖으로 드러난 지는 오래 되었습니다. 더 이상 덮을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런 까닭에 어떤 위기가 있을 때마다 보여주기식이라도 했던 회개운동 마저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만난 사태가 불안하고 위험한 이유입니다.
회개가 방법이다
지금 우리는 흉내를 내는 정도가 아니라 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서는 회개가 필요합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주님이 하신 말씀처럼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져야 할 시기를 지금 만난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눅3:9)
이미 부요해질 때로 부요해진 교회, 마치 요한계시록의 에베소교회처럼 엄청난 교회가 되었지만 회개하고 다시 처음 신앙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하나님과 상관없는 교회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소아시아의 흔적만 남은 교회를 보듯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2:5)
자꾸 주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모먕만 있을뿐 맛을 잃은 소금의 모습말입니다. 아예 맛을 상실하여 더 이상 쓸모없는 종교인으로 전락한 상태말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5:13)
더 큰 걱정은 아예 회개할 수 없는 상태까지 이른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입니다. 죄에 무뎌져 양심이 화인 맞은 상태여서 마음에 찔림도 없을뿐 아니라 오히려 더 악해질까 걱정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희망은 하나님께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세우며 기도하기 위하여 회개하는 것이 우선적인 일입니다. 그것이 지금처럼 세계적인 전염병의 문제든 혹은 전쟁과 세상화의 위기든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직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경건한 칠천명의 크리스천이 있을 것을 알기에 함께 기도하길 원합니다. 먼저 우리라도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 서길 원합니다. 아무쪼록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자신의 기도 자리를 지키며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기도하는 사명자들이 일어나 함께 회개하며 기도하기를 원하며 이책을 내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