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중장년층 어른들은 텔레비전에서 볼 만한 프로가 없다고 불평을 합니다. 왜냐하면 텔레비전 프로는 거의 십대 가수나 댄서들에 의해서 점령당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흐느끼는 것인지 중얼거리는 것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귀청을 찢는 듯한 댄스 음악들이 주종을 이룹니다. 십대들의 정서에는 그런 리듬이나 음악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사십이나 오십 된 분들에게 그런 노래를 한 시간 정도 듣고 있으라고 하면 아마 머리가 아파서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반대로 청소년들에게 흘러간 옛 노래나 춘향전의 창가를 들으라고 하면 잠을 자든지 기절해 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만큼 시대에 따라 세대간의 정서 차이가 심한 것 같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청소년들을 옛날 어른들의 사고의 틀로 가두어둘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많은 교회에서 청년들을 위한 예배를 따로 드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청년들이 가지고 있는 예배의 정서와 어른들이 가지고 있는 예배의 정서가 많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의 예배는 모든 것이 다 짜여져 있는 순서에 의하여 이루어집니다. 찬송도 같은 곡을 두 곡 연이어서 부르는 법이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분위기도 차분하고 조용합니다.
그런데 청년들을 위한 예배에는 예배의 격식이 따로 없습니다. 찬송도 복음 성가를 여러 곡 부르고 때로는 같은 곡도 몇 번씩 부릅니다. 자리에서 혼자 벌떡 일어나서 찬송을 부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의자 옆의 바닥에서 무릎을 꿇고 찬송을 부르는 사람이 있고, 찬송은 부르지 않고 기도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찬송을 부른 후에 사회자도 없이 바로 설교자가 나와서 설교를 하기도 합니다. 옛날에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감정을 극도로 통제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요즘 젊은이들은, 그런 것은 죽은 예배이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마음껏 표현하는 것이 더 은혜스러운 예배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시대가 흐름에 따라 예배의 방식도 많이 변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젊은이들을 옛날의 틀로 가두어둘 수 없는 시대가 왔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궁금한 것은 형식이 달라지면 그 안에 들어 있는 진리도 달라지는가 하는 점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신앙 훈련을 받는 사람들은 자주 금식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얼마나 경건한가를 그가 하는 금식의 횟수로 나타낼 정도였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가장 중요한 교파였던 바리새파 사람들은 모두 정기적으로 일주일에 두 번 이상씩 금식을 했습니다, 그 금식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를 알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신앙의 틀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 틀 안에 들어가야 인정을 받고 이상한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따로 특별히 금식에 대하여 훈련시키지 않으셨고, 그래서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혹시 먹을 것이 없어서 억지로 굶은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시간을 정해 놓고 금식을 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이것을 보고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질문했습니다. “우리와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을 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을 하지 않습니까?” 사실 이것은 예수님께 당연히 물어볼 수 있는 질문이었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이런 것입니다. “요즘 제대로 신앙 훈련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모드 금식을 합니다. 그런데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을 하지 않으니 도대체 어떻게 된 것입니까? 우리 사회에서는 신앙 훈련을 받는다고 하면서 금식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당신의 제자들밖에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 유별나게 믿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례 요한의 제자들의 질문
당시 ‘금식’은 하나의 신앙의 틀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실제로 하나님을 잘 믿느냐 안 믿느냐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틀안에 들어가느냐 들어가지 않느냐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의 눈에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아주 튀는 사람들처럼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당연하게 여기는 금식을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도대체 당신들이 잘났다면 얼마나 잘났다고 우리의 중요한 관례를 무시하고 그렇게 튀는 행동을 하느냐?”는 식으로 도전한 것입니다.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9:14).
여기서 ‘그때에’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세리들과 함께 식사를 한 때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세리 마태를 제자로 부르신 뒤에 그의 집에서 세리들이나 다른 죄인들과 식사를 하셨던 때는 아마도 다른 교파에서는 금식일로 지켰던 날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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