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의 바울 신학 혹은 바울 연구서는 그리스적 관점이나 유대적 관점 중 어느 일면으로 바울의 전부를 설명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괄목할 만한 연구 성과를 앞세워 최근 신약학계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마이클 F. 버드는 본서를 통해 바울의 신학이 지닌 다층적 측면을 집중력과 균형감각을 갖고 탁월하게 조명해낸다. 그 핵심 논점은 유대교의 전통에 충실하면서도 유대교의 울타리를 넘어, 토라(율법)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중심으로 이방인 그리스도인을 새 이스라엘의 동등한 일원으로 포용해내는 바울의 특이성(anomaly)이다.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서의 바울의 특이성을 맨 처음 조명한 학자는 존 바클레이다. 버드는 바클레이의 논점에 공명하면서도, 바울의 특이성을 디아스포라 헬레니즘과의 관계가 아닌,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유대교 전반의 맥락 속에서 규명해내려고 한다.
제1장에서는 바울의 관점에서 바라본 유대교의 구원관을 논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먼저 이에 대한 학계의 기존 주장을 검토하는데, 이 중에서 유대교를 ‘언약적 율법주의’(covenantal nomism)로 파악하는 E. P. 샌더스의 모형에 대한 평가가 주목할 만하다. 저자는 제2성전기 유대교 내에 존재하는 [특히 구원관에 있어] 다양한 측면을 ‘언약적 율법주의’라는 단일한 표지로 다 설명할 수 없음을 지적한다. “은혜는 [언약 관계 속으로] 들어가게 하고 행위(율법의 준수를 통한 순종)는 그 언약 안에 머무르게 한다”는 기본 원리가 바울의 종교적 모형과 동일함을 주장하는 견해에 대해서도, 바울은 이러한 유대교적 틀 안에 단순히 머물지 않고 전통적 유대교의 경계를 넘어 “앞으로 나아간다”고 말한다. 바울의 특이성은 율법적 순종을 통해 해결할 수 없는 인류의 곤경(죄에 사로잡힌 상태)를 지적하면서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구원에 이르는 통로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제시하는 것에서 드러난다.
제2장에서는 바울과 유대교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연속성과 비연속성을 그의 선교적 소명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한다. 저자는 흔히 ‘이방인의 사도’라고 알려진 바울의 선교 활동에서 그 초기부터 원숙기에 이르기까지 유대인이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음을 논증해낸다. 이 점은 바울이 회심 직후에 다메섹과 예루살렘에서 그리스어권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으며, 안디옥 교회의 파송을 받아 이방인 선교를 본격화 했을 때에도 유대교의 회당을 주요 교두보로 삼았을 뿐 아니라, 유대교 개종주의에 맞서 이방인 회중의 자유와 동등성을 위해 분투하는 와중에도 유대 그리스도인과 이방인 그리스도인 간의 연합을 추구하기도 했다는 사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만이 아니라 유대인을 포함한 모든 교회의 사도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었으며, 이렇듯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공동체(새 이스라엘)를 향한 그의 비전은 유대교와의 단절이 아니라 종말에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통치에 참여할 것이라는 구약의 예언에 충실한 구속사적 연속성의 견지에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바울 신학의 ‘구속사적 연속성’이라는 표현에 맞서, 바울 서신에 대한 묵시적 해석을 발전시켜온 E. 케제만, J. C. 베커, J. L. 마틴 등은 묵시적 단절을 바울 복음의 특징으로 내세울 것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마틴은 바울 신학의 묵시적 도식을 구속사적 관점과 확연하게 대비시키면서, 후자야말로 갈라디아 교회에 침투하여 바울과 논쟁을 벌였던 유대교 개종주의자들이 지지하던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N. T. 라이트, 제임스 D. G. 던, B. 롱네커, R. 헤이스 등은 바울 신학에서 묵시적 요소와 구속사적(언약적) 요소간에는 근본적 통일성이 있다고 본다. “침공 이야기: 갈라디아서에 대한 묵시적·구속사적 재해석”이라는 제목이 붙은 제3장에서 저자는 묵시학파가 바울 복음에서 하나님의 종말론적 개입을 통한 새로움 내지 침공의 모티프를 찾아낸 것의 의의를 인정하지만, 바울에게 있어 기본적으로 묵시적 요소와 구속사적 요소 간의 이분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라이트의 입장에 공명하여, 이러한 관점에서 갈라디아서에 대한 자신의 새로운 독법을 통해 마틴의 묵시적 해석을 재검토한다. 버드의 논지에 따르면,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제시하는 칭의의 원리는 이방인 그리스도인을 교회에 통합하기 위한 것으로서, 일견 할례로 대표되는 율법 준수의 요소에 대립되는 단절성을 띠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칭의의 모티프 안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아브라함 언약을 연결할 뿐 아니라 이를 통해 신약의 교회를 이스라엘의 구속사적 지평 위에 재정위함(그리스도와 교회는 구약 언약의 성취임을 밝힘)으로써 연속성의 측면도 놓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드러나는 바울의 특이성(anomaly)은 그가 묵시적 세계관에 입각하여 성서적 내러티브를 구사하는 방식에서는 유대교적 틀에 머물고 있지만, 그의 신학이 구원의 원인으로서 율법의 가치를 거부하고 그 대신에 메시아를 통한 묵시적 복음을 천명한다는 점에서는 유대교의 경계를 훌쩍 넘어서는 것이다.
제4장에서는 갈라디아서 2:11-14에 나타난 이른바 안디옥 사건을 바울의 신학적 특이성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계기로서 재조명한다. 여기서 안디옥 사건이란 베드로가 안디옥 교회를 방문하여,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과 격의 없이 식탁 교제를 나누고 있었는데, 야고보가 보낸 예루살렘 교회의 사절단이 나중에 도착해서 이방인과의 식사를 금하는 율법 조항을 준수하도록 압력을 넣은 것에 바울과 바나바가 굴복함으로써 이방인 그리스도인과의 열린 교제로부터 물러나게 된 사건을 말한다. 버드는 이방인과 유대인으로 구성된 안디옥 교회의 정황,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이 지닌 미비점, 당시 팔레스타인에서 반이방인적 정서가 격화되었던 배경 등에 초점을 맞추어 안디옥 사건을 둘러싼 맥락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한다. 이를 통해 그는 이 사건의 배후에 단지 유대교의 음식 규정에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 이방인 그리스도인과의 동등한 식사 교제를 가로막는 ‘할례’의 문제가 진짜 쟁점으로 자리 잡고 있었음을 밝혀낸다. 바울은 이러한 유대주의화(Judaizing)의 노선에 반대하여, 복음의 진리 안에서 이방인들이 누리는 자유와 동등함을 옹호하고, 그들을 새 이스라엘에 통합하는 원리로서 율법의 준수가 아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제시한다. 이로써 마침내 바울 신학이 태동되기에 이른다.
“사도 바울과 로마 제국”이라는 제목이 붙은 제5장에서 논하는 바울의 특이한 면모는 그가 로마 시민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다스리는 새로운 질서에 의해 로마 제국이 극복될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저자는 로마 제국을 대하는 바울의 태도를 직접적으로 반제국주의(anti-imperial)로 간주하지는 않는다. 바울은 정치적 행동주의를 표방한 적이 없으며, 그의 관심은 시종일관 유대인 신자와 이방인 신자가 연합하는 교회 공동체를 세우는 것(즉 목회)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바울의 복음이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는 하나님의 아들이자 주님이신 예수를 선포하는 가운데 제국의 수사법을 차용함으로써 사회정치적 성격을 드러낼 뿐 아니라, 제국의 통치 질서에 대한 대항적 태도도 암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저자는 “제국대항적”(counter-imperial)이란 개념으로 바울의 사회정치적 태도를 설명한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에서 로마서 본문들을 로마 제국의 문화적 배경에 비추어 해석함으로써 얻어낸 결론은, 로마 제국과 메시아 복음 간의 대립은 바울의 이해하는 바에 따르면 정치적·군사적 영역에서가 아니라 사회적·문화적 부문에서 전개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로마 권력의 편에서 로마서가 불온한 체제 전복적 문서로 간주될 수 있는 까닭은 그것이 단지 kyrios(주)나 euangelion(복음)과 같은 제국의 언어를 차용한다는 점이 아니라, 다윗의 혈통에서 나신 메시야(왕)가 장차 열방을 통치하실 것이라는 전망을 묵시적 언어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대인으로서 바울이 지닌 특이성은 단지 바울 개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 문제는 기독교의 형성에 있어 그 태반이 되는 유대교와의 연속성 내지 불연속성의 주제와 맞닿아 있다. 로마 제국과의 관계에 있어 바울이 지녔던 특이한 태도 역시 제국의 지배 질서에 맞서 역사를 변화시킨 기독교의 본질적 동력과 연결되어 있다. 저자의 논지와 주장을 따라가다 보면, 유대교 내의 한 묵시적 종파에서 출발했던 예수 운동이 만인을 구원하는 세계적 보편 종교(기독교)로 성장하게 된 비결을 발견하게 된다. 본서는 근래에 나타난 괄목할 만한 바울 연구의 여러 학문적 성과를 치밀하게 검토하면서 성경 본문 및 제2성전기 유대교와 태동기의 기독교를 둘러싼 역사적 배경에 대한 풍부한 연구를 바탕으로 바울과 그가 활동했던 맥락에 대한 균형 잡힌, 설득력 있는 그림을 제시한다. 현대 바울 연구에 있어 탁월한 역작으로 자리매김 되기에 손색이 없는 본서를 바울과 초기 기독교 형성의 역사에 관심 갖는 모든 이들에게 필독서로 추천한다.
■ 차례
서문
약어
서 론 여러 면모를 지닌 유대인 바울
제1장 바울이 이해한 유대교에서의 구원
제2장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이자 유대인의 사도인가?
제3장 침공 이야기: 갈라디아서에 대한 묵시적·구속사적 재해석
제4장 안디옥 사건(갈 2:11-14): 바울 신학의 시작
제5장 사도 바울과 로마 제국
참고문헌
저자 색인
성구 및 고대 문헌 색인
■ 추천사 중에서
사도 바울은 어느 한 관점으로 모조리 설명될 수 없는 인물이다. 유대교만의 관점 혹은 그리스–로마의 관점으로만 설명한다면 우리는 다차원적인 바울의 신학을 놓치게 될 것이다. 마이클 버드는 이 책에서 바울이 유대인이지만 당대 유대인과 다른 면을 설명하고 있으며, 동시에 바울이 로마 시민이었지만 로마인과는 사뭇 다른 점을 분해해낸다. 그 시대에 속하면서 그 시대와 구별되는 바울의 독특성을 이해하기 원하는 사람에게 본서는 그 길을 보여줄 것이다.
김경식_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대학교
바울은 신약성서학계에서 언제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본서는 바울이 자신의 정체성을 유대인만으로 제한하지 않는다는 뜻에서 ‘특이성’(anomaly)을 포착함으로써 바울 신학의 과녁을 정확히 꿰뚫는다. ‘혁신적 신학자’ 바울의 면모를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하는 버드의 통찰은 바울에 관한 ‘더’ 새로운 관점을 추동하는 강력한 촉매제가 될 것이다.
윤철원_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이 책에서 소개하는 역사적 바울은 현대 신앙인이 가져야 할 사회·정치적인 태도와 방향성을 제시하는 ‘이례적인’(anomalous) 인물이다.
이민규_한국성서대학교 신학대학원
세계 신약학계에서 주목받는 학자인 마이클 버드는 학계의 복잡한 논의들을 쉽게 풀어내어 정리해주면서 자신만의 통찰력으로 독특한 입장을 가미하는 보수적인 성향의 학자다. 『혁신적 신학자 바울』은 최근에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바울 연구의 중요한 주제들을 바울의 정체성과 관련하여 전체적으로 조망하게 해주는 중요한 책이므로 목회자들과 학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이상일_총신대학교 신약학 교수
본서는 유대인 바울에 대한 기존의 여러 관점들을 공정하게 요약·평가하는 동시에 저자가 견지한 역동적이고 다층적인 바울의 신학적 정체성을 매우 선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전의 주요 학자들이 조명한 여러 관점과 해석을 합리적으로 자리매김하면서 그 틈새의 시선으로 논증한 저자의 관점은 창의적인 만큼 교훈적이다. 바울과 유대교라는 주제에 대한 또 하나의 역작으로, 그 연구사적 지형의 세밀한 파악과 함께 바울 신학도들이 의지할 만한 또 다른 샛길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차정식_한일장신대학교, 한국신약학회 회장
마이클 버드는 서구 기독교 미디어를 통해 학계의 ‘유력자’(heavy hitter)란 태그를 달고 해마다 급부상하고 있는 중진 신약학자이다. 그의 글과 사고의 특징은 빼어난 균형감각과 흐트러지지 않는 집중력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옛 바울 창고’와 ‘새 바울 창고’ 학계의 양 진영을 적절히 넘나들며 다섯 가지 관심 분야를 방문한다. 인간 바울과 주변 환경 이해를 심도 있게 재부팅하기 원하는 독자에게 꼭 집어 안겨주고 싶은 책이다.
허주_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본서는 버드의 최고 걸작으로서, 어쩌면 톰 라이트의 색채도 약간 가미되어 있다고 하겠다. 본서를 읽다보면, 역사적 자료에 근거한, 바울 서신에 대한 견고한 해석뿐 아니라 바울 및 1세기 유대교를 둘러싼 학자들의 다양한 견해와 논쟁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엿보게 된다.
조슈아 W. 지프 |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
마이클 버드는 바울이 기독교인이 된 후에도 여전히 유대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버리지 않았음을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 바울은 끝까지 유대인이었지만,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다른 유대인들이 보기에 그는 별종(anomaly)이었다.
프랜시스 왓슨 | 더럼 대학교
바울은 독불장군 격의 사도였고, 독보적인 사상가였으며, 유대인치고는 별난(anomalous) 인물이었다. 버드가 바울을 그가 속한 정황 속에서 조명하면서도, 그를 그 시대의 조류에 순응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가 지닌 독특한 성격을 끌어내는 방식은 참으로 탄탄하다. 본서는 역사적 바울에 대한 신선한 통찰이 가미된 참으로 매력적인 해석이라고 하겠다.
니자이 K. 굽타 | 조지 팍스 복음주의 신학교
■ 본문 중에서
나의 목표는 어떻게 해서 바울이 철저한 유대인이면서도 유대인 동포들 사이에서 악명 높은 문제 인물이 되었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나의 대답은 간단히 말해서 바울은 특이한 유대인(an anomalous Jew)으로서 유대교의 일반적인 신념과 논란이 될 만한 신념을 모두 갖고 있던 기이한 인물이었고, 이로 인해 그를 둘러싼 사회종교적 배경과 충돌을 빚었다는 것이다.
_ “서문” 중에서
나는 “특이한 유대인”의 관점이 가장 유용하다고 본다. 다만 나는 바클레이와는 달리 바울이 지닌 특이성의 본질은 디아스포라 헬레니즘 내에서 자신의 방식을 실현하고자 하는 그의 시도와 관련된 역설(逆說)이 아니라, 보다 적절하게는 그의 메시아적 종말론, 즉 하나님을 예배하는 유대 그리스도인과 이방인 그리스도인으로 이루어진 연합체를 위해 사회적 공간을 창출하고자 하는 그의 시도에서 나온 부수적인 사회적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요컨대,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열어놓으셨고, 이는 새 창조의 시작과 이스라엘의 회복을 의미하는데, 거기서 바울이 세운 교회들이 그 선봉에 서 있었다.
_ “서론: 여러 면모들 지닌 유대인 바울” 중에서
하지만 유대교가 이방인을 구원에서 배제한 것만이 바울이 유대교에 가한 비판의 전부라고 볼 수는 없다. 물론 바울은 이방인이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유대교로 개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민족중심주의적 토라 해석을 실제로 거부하기도 했고(갈 2:11-15; 롬 3:21-31), 자신의 이방인 선교를 유대인들이 방해한 사실에 대해서도 언급한 적이 있다(살전 2:15). 학자들은 바울의 보편주의 대 유대교의 특수주의라는 개념을 가볍게 취급하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보다 적절하게 말하자면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 간의 사회종교적 연대가 민족적인 것이 아닌 새롭게 창안해낸 것 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유대교의 세계관을 재해석할 수 있는 내러티브가 제공되었고, 이방인을 이방인으로서 유대교 회중 안에 포함시키는 등 연속적이면서도 새로운 내러티브가 가능하게 되었다.
_ 제1장 “바울이 이해한 유대교에서의 구원” 중에서
바울의 회심 사건에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 하나님의 형상, 영광의 주로 선포하라는 부르심이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선교적 사명이 처음부터 그의 회심 경험에 연결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아시아와 에게해 지역에서 바울의 선교 활동이 거둔 성과와 또한 실패를 통해, 바울은 자신의 사도적 소명이 비유대인을 향한 것임을 분명히 깨닫게 되었다. 그에 대한 증거를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바울이 비유대인을 식별하기 위하여 사용했던 주요 용어인 ἔθνος,Ἕλλην,ἀκροβυστία,ἄνομος는 가변적이고 유연한 명칭으로서, 상황에 따라 그중에 유대인을 포함할 수 있었다. […] 둘째, 유대인은 바울의 초기 선교 사역과 후기 선교 사역을 통틀어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 선교의 문이 이방인들에게 열렸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문이 유대인들에게 닫힌 적도 없었다. […] 따라서 나는 누가와 초기 교회가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만이 아니라 유대인의 사도로서도 그려낸 것이 기본적으로 틀리지 않았다고 결론 내린다.
_ 제2장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이자 유대인의 사도인가?” 중에서
바울의 묵시 사상이 이스라엘의 성서가 들려주는 이야기나 그에 따른 언약적 약속들과 충돌하는 불협화음을 내는 것은 아니다. 복음에 선포된 하나님의 침공 행위는 바울이 자신의 신학적 담론에서 자주 거론하는 언약–성취라는 도식 안에 여전히 자리잡고 있다. 우리가 바울의 묵시적 신학을 유대교 성경의 메타내러티브로부터 분리시켜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므로 결국 나는 바울의 사상에서 또 하나의 특이한 면, 즉 바울 복음이 이스라엘 이야기에 대한 당대의 내러티브를 단호히 인정하는 동시에 그것을 급진적으로 재구성하는 면을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란다.
[…]
이러한 모든 논의 가운데, 우리는 여전히 바울을 참으로 특이한 인물로 보이게 하는 바울 사상의 요소들을 본다. 바울이 성서 내러티브를 사용하거나 묵시적 세계관을 전개하는 방식을 살펴보면 그가 분명히 유대교적 틀에 확고히 머물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다른 유대교 사상가들이나 묵시적 선견자들과는 달리, 바울은 율법을 구원을 위한 필수적 조건이 아닌 구원의 예비적 조건으로 삼는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메시아에게서 절정에 이르지만, 그 이야기는 이제 메시아적 내러티브를 중심으로 이스라엘의 사명과 경험과 소망이 재구성되는 방식으로 새롭게 전달된다. 바울은 지금이 어떠한 때인지, 현 시대에 이스라엘에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또 이스라엘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또한 이방 민족들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에 대해서 새로울 뿐 아니라 도발적이기조차 한 이야기를 주조해낸다.
_ 제3장 “침공 이야기: 갈라디아서에 대한 묵시적·구속사적 재해석” 중에서
바울이 지닌 특이성은 안디옥 사건에서 처음 나타났다. 그 사건의 와중에 바울은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는 범주를 해체할 것을 주장했고, 그에 따른 당연한 결과로서,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 두 계층의 구성원이 있다는 생각, 즉 토라를 대하는 태도에 입각하여 유대인과 이방인이 각각 두 개의 개별 교회로 모여야 한다는 생각 에 동의하기를 거부하였다.이러한 특이성이 기초가 되어 기독교 사상에 있어 바울의 가장 유구한 공헌으로 기억될 만한 업적이 이루어졌고, 1세기 유대인이 갖기에는 어쩌면 가장 독특한 믿음, 즉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근거하여 언약의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로 설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겨나게 되었다.
_ 제4장 “안디옥 사건(갈 2:11-14): 바울 신학의 시작” 중에서
로마 제국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바울이 하나의 대안적 제국에 대한 전망을 형상화하고 있음을 알아보았을 것이다. 로마서를 암암리에 제국대항적인 글로 만드는 것은 바울이 단지κύριος나 εὐαγγέλιον과 같은 병행어구를 사용한다는 점이 아니라, 그러한 언어가 묵시적이고 메시아적인 내러티브 가운데 표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속에는 언제라도 오셔서 단번에 열방을 복종케 하실 오직 한 분인 주님만이 좌정해 계신다. 만일 로마의 관리가 바울의 로마서를 읽었다면, 그것은 매우 파격적인 문서로 보였을 것이다. 어느 죽은 유대인을 어떤 의미에서 가이사의 잠재적 경쟁자로 선포하는 내용의 서신이었기 때문이다. 로마서는 좋게 보면 종교적으로 유해하고, 나쁘게 보면 정치적으로 불온한, 동방에서 발생한 한 광신적 사교 집단이 지껄이는 헛소리 정도로 치부되었을 것이다.
_ 제5장 “사도 바울과 로마 제국” 중에서
Weight | 2.5 lbs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