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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 복음과 교회의 공공성

$24.00 $16.80

저자 : 송영목  |  출판사 : SFC 출판부
발행일 : 2020-06-11  |  (140*210)mm 248p  |  979-11-87942-42-9
천국 복음과 기독교 신앙은 진정 개인적이고 내세적인 것인가?
기독교적 사회 참여에 대한 개혁주의 성경신학적 연구
한국교회는 요즘 사회로부터 공익에는 관심이 없고 신자들의 사익만 추구한다는 비판을 듣고 있다. 이는 한국교회가 전통적으로 개인주의적이고 내세주의적인 복음주의의 영향을 크게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통적인 교회일수록 이러한 경향을 더 뚜렷하게 드러내며 주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최근 여러 신학자들은 연구를 통해 기독교 신앙이 전통적으로 개인주의적이고 내세주의적인 것만은 아니며, 올바른 신앙은 필연적으로 공공성을 드러낼 수밖에 없음을 밝혀내고 있다. 신앙의 공공성은 있으면 좋은 정도가 아니라 반드시 드러나야만 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공공신학’은 한국의 모든 교회들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한편 전통적인 교회들은 진보신학적인 사회참여론에는 거부감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전통적인 교회들을 위해 가장 전통적인 장로교회의 배경에서 기획된 성경적 공공신학 안내서이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주일 교회당에서만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유니폼을 입고, 그 외의 시간과 장소에서는 그 옷을 벗어 버리려 한다(롬13:14, 갈3:27, 골3:10). 그 결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교회는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다. 복음도 사라져 간다. 그러나 운동선수가 경기 중에 유니폼을 벗으면 안 되듯이, 그리스도인 또한 예수님의 옷을 벗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서는 안 된다. 그럴 경우 하늘로부터 경고 카드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의 이런 부재 현상은 16세기 로마 가톨릭의 박해를 피해서 자기 정체성을 쉽게 드러내지 않았던 개신교의 ‘니고데모주의 자’의 재현(redivivus)처럼 보인다.
(13쪽)

공공신학은 개인의 실존이나 신앙의 초월성을 강조하다가 발생하는 ‘세상에서 도피하는 경건주의’를 극복하고자 하며, 나아가 기독교의 구원이 본래부터 영적이자 공공적 구조를 지니고 있음을 일깨워서 천국, 정의, 평화를 소망하게 만들어 세상을 변혁하려 한다. 공공신학은 1970년대에 본격화하기 시작했는데, 루터교 역사학자인 마티(M. E. Marty)는 이런 신학을 ‘초월적 지시(예를 들어 이데올로기나 종교)의 빛 아래에서 인간의 삶을 해석하려는 노력’이라 정의했다. 성석환은 공공신학이 20세기 후반 신자유주의의 확산에 대항하여 본격화되었다고 말한다. “공공신학의 본격적인 궤도는 20세기 후반부터 전 지구적으로 확산된 신자유주의가 인간의 공존과 ‘공동의 선(common good)’을 현저히 위협하자, 이에 저항하여 형성된 시민 사회의 공론장에 적극적으로 참여를 모색하는 이들에 의해 분명해졌다.”
(14~15쪽)

신약의 성도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보다 더 높은 윤리적 실천을 요구받는다. 하지만 모든 그리스도인은 계속하여 비윤리적 삶과 범죄의 유혹을 받고 그 속으로 빠져들기도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중간기 유대문헌의 이러한 용서의 개념으로부터, 범죄 후에 예수님의 속죄를 믿음으로써 진정한 회개 를 해야 하고 더 나아가 거룩하고 의로운 삶의 열매를 일상에서 맺어야 한다는 교훈을 간접적으로 배울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하나님께서 사죄를 베푸신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면 남의 허물을 용서하며 살라고 가르치신다(참고: 엡4:32). 참고로 크리소스톰(349-407년)은 산상설교 중 마태복음 7장 13, 14절과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 강설(눅16:19-31)을 통하여 자신의 경건관을 금욕적인 수도사의 삶으로부터 사회 속에서의 적극적인 사랑의 실천으로 바꾸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제자들에게 세상을 등지고 살라고 명하지 않으신다.
(45쪽)

제자들은 광명한 곳과 집이라는 공공영역에서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마10:27). 종교개혁의 표어들도 공공성을 강조한다. 이는 적용과 실천을 위해 소개하고 기억할 만하다. 예를 들어,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표준으로서의 영감받은 성경을 강조한다. ‘오직 믿음(sola fide)’은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를 통하여, ‘오직 은혜로써(sola gratia)’ 칭의를 입은 사람들의 믿음의 생활을 강조한다. 성도의 삶은 세상 속에서 ‘오직 하나님의 영광(soli Deo gloria)’을 드러내기 위하여 나누어지지 않는 온전한 충성(sola fide, undivided faithfulness)을 바쳐야 한다. 성경의 중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만(solus Christus) 교회와 만유의 머리이시며, 그분께서만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유일한 선생이시다(기독교강요 4.8.1 참고).
(63쪽)

성령 충만한 이는 신비주의나 신앙의 내면화 혹은 개인 윤리에 함몰될 수 없다. 왜냐하면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의 현재적 다스림은 복음 진리의 통치로 나타나기 때문이다(행8:29, 15:28 참고). 이것은 구약성경에서 미리 볼 수 있다. 김영진은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개혁은 말씀과 더불어 역사하신 성령님의 사역의 결과라고 설명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교회사로 잠시 눈을 돌려 보자. 1907년 평양 대부흥의 주역이었던 길선주 목사는 1910년에 백만 구령 운동을 제창했다. 길선주는 몰역사적인 부흥사가 아니었는데, 안창호 등과 함께 독립협회 평양지부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했으며, 1912년에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렀다. 길선주 목사는 1919년 3.1운동 때 기독교인을 대표해서 독립선언서에 서명했다. 이처럼 성령 충만한 이는 복음을 전하는 열정과 더불어 역사와 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책임 있게 행동한다.
(92~93쪽)

그리스도인이 복음 진리로 제대로 무장했다면, 그는 구원을 이루는 회복적 정의를 이 세상에서 구현하는 데 힘써야 한다(마18:12-35). 욥의 친구들은 인과응보라는 ‘징벌적 정의’를 내세웠지만, 욥은 기도를 통해 회복적 정의를 실천했다(욥42:10). 이런 회복적 정의의 온전한 성취는 죄인의 회복을 위해서 십자가 위에서 중보 기도를 드린 예수님께로부터 볼 수 있다(눅23:34). 구약의 남유다의 패망은 하나님의 심판이지만, 그것은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불가역적인 최종 거절을 가리키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통치의 기초는 의와 공의와 인자와 진실, 즉 회복적 정의이기 때문이다(시89:14).
(96~97쪽)

천국 백성이 세속 사회 속에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알리고 증언하는 선교적 의미가 있는가? 만약 그리스도인이 소금과 빛으로서의 역할에 대한 이해와 헌신이 없이 존재한다면 아무 런 의미가 없다. 만약 하나님 나라가 이미 도래했음을 부정한다면, 다음과 같이 비관적이며 미래적인 진술에 힘없이 고개만 끄덕일 것이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야만 천국의 새 시대가 도래할 것이기에, 교회가 어두운 세상 속에서 믿음과 소망으로 살면서 복음을 전한다고 해서 기존 세상이 하나님 나라로 변혁되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천국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성령 충만, 그리스도의 법(복음) 충만, 은혜 충만, 그리고 영생 충만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남은 자들을 통하여 반드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신다.
(116쪽)

복음이 공공성을 가지는 또 다른 이유는 천국 복음을 증언하신 예수님께서 만유(萬有)의 창조주와 통치자이시기 때문이다(참고: 단7:13-14, 골1:16-20). 예수님께서는 세속적인 가이사의 나라와 주님의 종교적-영적 나라를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소위 ‘두 왕국론’을 지지하셨는가? 만약 주님께서 두 왕국론을 지지하셨다면, 세금 납부 문제를 통해 국가와 교회의 관계를 물었던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님의 설명을 듣고 왜 ‘놀랐는지’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눅20:25-26). 참고로 열심당은 천국이 가이사의 나라와 양립할 수 없다고 믿었다. 만유이신 예수님의 나라는 가이사의 나라를 포괄하며, 그것 위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만유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엡4:6).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유를 제대로 위치시키는 통일 사역이 구심적(centripetal)이라면, 교회가 만유 안에 흩어져 그리스도의 통치를 충만하게 하는 사역은 원심적(centrifugal)이다. 그리스도 안에 모인 교회는 만유가 예수님의 다스림 아래 있도록 잘 흩어져야 한다.
(122쪽)

예수님께서는 어린양이시자 대제사장이시다. 그분께서는 자신의 목숨값을 치르심으로써 교회를 사셨다(히3:1, 9:12-14, 9:26, 벧전1:19, 계1:5). 예수님께서는 아버지로부터 모든 권세를 위임받으셨는데, 성부께 영광을 돌리는 방식으로 온 세상에 왕권을 시행하셨으며, 결국 성부에 의해 승귀되셨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신격화하는 세상 통치자와 다르다(겔28:2, 28:9, 살후2:3-12). 승천은 예수님께서 만왕의 왕으로 오르신 결정적인 사건인데, 그 후로 천 년, 곧 그분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전체 기간 동안 다스리신다(계20:4). 승천하신 예수님께서는 만유의 머리로서 다스리시고, 만유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고, 만유와 화목하기를 기뻐하신다(골1:16-20).
(131쪽)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통치를 특정 국가(예를 들어, 히틀러의 나치)나 정파(보수, 진보)의 아젠다에 종속시키지 말아야 하며, 그럴듯한 기독교 수사법(예를 들어, ‘God bless America’)으로 하나님의 보좌를 오용하지도 말아야 한다. 하나님 나라가 그리스도인 개인의 머리에만 혹은 교회당 첨탑 꼭대기에만 있는 것처럼 개인의 영적-경건화 혹은 ‘주일 오전 11시의 교회당화’를 추구한다면, 하늘과 땅에 충만하신 하나님을 주변화(marginalization)하고 말 것이다. 세상은 하나님의 통치가 천국 제자들을 통하여 드러나는 장(場)과 같다. 세상 광장과 일상에서 하나님 나라가 주변화된다면, 그 공간은 중립화되기보다 더 나쁜 이념들을 끌어들이는 블랙홀이 될 것이다.
(145쪽)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들이 힘들여 이루어 놓은 정의와 민주주의의 열매를 그냥 따 먹으려 무임승차하는 존재가 아니다. 교회의 구주시요 삶의 모델이신 어린양 예수님께서는 살해당하심으로써 유다 지파의 사자가 되셨다(계5:5). 마찬가지로 성도는 어린양의 피와 복음 증언과 순교적 각오로 사탄과 악의 세력이 지배하는 불의한 시스템을 거부하고 이겨야 한다(행7:54-60, 12:1-2, 19:21, 계12:11). 그리스도인은 황제숭배 강요와 같은 불의한 종교-정치-경제 체제에 저항해야 한다. 교회는 ‘비폭력적인 증언’의 방식으로써 세상 나라를 하나님 나라로 변혁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계11:15, 12:11). 세상에서 차별받는 교회야말로 차별받는 난민과 같은 약자를 사랑과 복음으로 섬겨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소유의 많음이 아니라 천국을 위해서 포기하는 것으로 규정할 수 있으므로, 증언하는 삶을 통한 불복종에 동반되는 손해를 믿음으로 감수하고, 특히 번영복음을 거부해야 한다.
(166쪽)

교회가 천국 윤리를 확립하려면, 개인의 결단과 도덕적인 변화를 넘어선 공동체 윤리를 정착시켜야 한다. 다시 말해 교회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구현하려면, 신앙공동체는 구성원 개개인이 관점을 공유하고 연대감을 가지고 실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목사가 천국 윤리를 설교할 때는 성도의 윤리적 수준과 사회적 분위기를 파악하고, 개인적-공동체적으로 윤리를 실천할 수 있도록 구원의 은혜를 강조하고, 마지막으로 천국 윤리를 지속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목회적 돌봄이 이어져야 한다.
(177쪽)

겸손하고 참되면서도 건설적인 방식으로 세상을 치유하고 돕는 공공신학을 논의할 때 유념할 사항들이 있다. 그것은 변함없이 기독교 유일 신앙과 삼위일체론을 견지하고, 범신론과 보편구원론을 배제하고, 인간의 능력으로 변화가 가능하다는 낙관론을 경계하며, 기독교의 독특한 목소리를 내며, 타학문의 통찰력을 비평적으로 활용하며, 무엇보다 하나님 나라를 증언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의 유언과도 같은 디모데후서 2장 3, 4절에 비추어 보면, 공공성 운동에 참여한 이들은 ‘그리스도를 위한 군사(Soldier for Christ)’와 같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무릅쓰고 선한 싸움을 수행하는 이들이다(행20:24, 살전5:8, 딤후2:3-4, 4:7, 참고: 계12:11). 그들은 중세의 ‘십자군’이나 나치 이데올로기에 충성한 젊은 ‘그리스도의 돌격대(Sturmabteilung)’가 사용한 무력 정복과는 다른 방식으로 전투를 치러야 한다.
(207~208쪽)

추천사 7

1장. 공공신학에 대한 서론적 논의 11

2장. 예수님의 설교와 복음의 공공성 31
1. 예수님의 산상설교에 나타난 복음의 공공성 33
2. 예수님의 제자파송설교에 나타난 복음의 공공성 56

3장. 세상 안의 하나님 나라, 하나님 나라 안의 세상 73
1. 성령님의 현재적 다스림 82
2. 복음 진리로 다스림 93
3. 은혜와 새 언약으로 다스림 100
4. 부활의 영생으로 다스림 111
5. 요약: 하나님의 종말론적 통치 113

4장. 세상 안 교회의 공공성 117
1. 만유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천년왕국 122
2.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로 만유를 충만케 하는 교회 131
(1) 만인(모든 신자) 왕 133
(2) 만인(모든 신자) 제사장 150
(3) 만인(모든 신자) 선지자 159
3. 요약: 교회가 견지해야 할 하나님 나라 에토스 172

5장. 결론적 논의와 적용 181

참고 문헌 219

이스라엘 백성들이 ‘복의 통로’ 즉 ‘만민을 위한 선민’으로 부름 받았음을 알지 못한 채 배타적 민족주의 안에 갇혀 길을 잃어버린 것처럼, 한국교회도 내세화, 사사화, 심리화, 교회화의 틀 안에 갇혀 교회의 소명을 상실하고 말았다. 때마침 교회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공공신학, 선교적 교회와 같은 담론이 활발해지고 있다. 하지만 교회가 세상 속에서의 자기 존재 의미를 바로 깨닫고 오랜 잠에서 일어나려면 이런 담론의 북소리는 더 크게 들려야 한다. 이 책은 교회를 깨우는 큰 북소리 중의 하나다. 공공신학을 쉽게 잘 정리해 주고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을 한국적 상황에 적용하여 교회가 가야 하는 길을 모색함으로써 공공신학 분야에 매우 의미 있는 기여를 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공공신학 논의가 더 활발해지고 한국교회가 새롭게 되는 구체적 결과가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 정현구 목사(서울영동교회 담임)

본서는 정통보수 신약학자가 저술한 최초의 공공신학에 대한 저술이라는 가치를 갖는다. 그러나 그 가치는 단순히 본서의 주제가 공공신학이라는 사실에 있지 않다. 신약성경 본문에서 드러나는 기독교 신학의 가치가 본문의 의미, 곧 진리를 ‘찾아내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선포와 대화의 방식으로 ‘나타내는 것’에까지 확장되어야 한다는 점을 철저한 주석 및 해석학적 관점에서 잘 드러냈다는 점이 가치가 있다. 100여 편의 신약학 소논문과 10여 권의 전문서적을 저술한 저자는 특별히 남아프리카공화국 유학 시절 접했던 공공신학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21세기 한국사회에서의 기독교 진리의 가치를 신약학의 주제로 명쾌히 제시한다. 공공신학에 입문하려는 이들, 그리고 이 주제와 관련된 신약학의 근거와 한국 사회에서의 기독교 진리의 가치를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 본서를 강력히 추천한다.
– 김주한 교수(총신대학교 신약학)

공공신학은 개인의 경건뿐만 아니라 사회의 개혁, 정의, 봉사를 염두에 두고 교회당과 세상 모두를 품는 신학이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이시며 만물의 으뜸이 되시기 때문이다. 이 책은 거류민이자 나그네인 그리스도인이 세상에 속하지 않으면서도 세상 곳곳에서 하나님 나라를 현시하는 성경적 원리와 방법을 이론적이면서도 실제적으로 제시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개혁신학의 보고인 남아프리카공화국과 한국교회의 역사적 사례도 활용하고 있다.
– 배종열 교수(개신대학원대학교 신약학)

이 책은 하나님의 통치를 성도 개인과 주변뿐만 아니라, 인류의 모든 영역으로 확장하도록 생각의 지평을 넓혀 준다. 특히 제2장에서 송영목 교수는 산상수훈의 해석을 통하여 하나님의 통치를 이 땅에서 구현해야 할 하나님 백성들의 사명을 고취하고 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진 것 같이 땅에서 이루어 드리는 삶”의 결단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대에 저자의 책은 도전과 용기를 불어넣는다.
– 이석호 목사(부산 대청교회 담임)

송영목

저자 송영목 교수는 고신대학교 신학과(B.A.)와 고신대 대학원(M.Div.)을 졸업하고 남아공 포쳅스트룸대학교에서 누가복음을 연구했으며(Th.M.), 요하네스버그대학교에서 요한계시록을 공부했다(Ph.D.). 현재 고신대학교 신학과에서 신약학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저술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약과 구약의 대화』(2010), 『요한계시록과 구약의 대화』(2014), 『간본문적 신약 읽기』(2017), 『다차원적 신약 읽기』(2018, 이상 CLC), 『문법적, 역사적, 성경신학적 관점에서 본 신약주석』(2011, 쿰란출판사), 『요한계시록』(2013, SFC), 『예수님과 구약의 대화』(2020, 더워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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