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최고의 강해설교자 마틴 로이드존스의
요한일서 강해 1-3장
출판사 서평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세상과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가?
세상 안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어떻게 해야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가?
요한일서에는 전체에 걸쳐 3개의 주요 구절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세 구절에서 사도 요한의 마음에 가장 중요하게 간직된 이 서신의 목적을 볼 수 있다.
첫 번째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안에 처한 것이며” 요일5:19
두 번째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일5:15
세 번째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다”요일1:4
요한일서의 주제는 ‘세상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이 되심은 우리 같은 사람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기 위함이었다. 바로 그런 그분의 엄청난 사랑의 행위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었으며 지금 현재도 하나님의 자녀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본문에서…
저는 요한일서에 관한 일련의 강해 설교를 본문인 5:19절 말씀으로 시작하려 합니다. 왜냐하면 이 구절이 요한일서에 기록된 모든 가르침에 대한 배경과 기록될 당시의 상황을 제공해 주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요한일서는 여러 면에서 독자들로 하여금 이해하는 데에 다소 당황스러움과 어려움을 느끼게 합니다. 이유인즉슨 이 서신의 말씀은 본질적으로 매우 단순하지만 저자인 사도 요한(저는 이 서신의 저자가 사도 요한이라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저자에 관한 토론은 생략하고자 합니다)의 가르침의 중요한 원리들을 확실히 이해하고 조심스럽게 견지하여 읽지 않으면 그의 문체나 그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스타일로 인하여 이 서신을 이해함에 어느 정도의 혼란을 초래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나무를 보느라 큰 숲을 보지 못하는 위험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 요한일서보다 더 위험한 서신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도 요한의 스타일이나 기록 방식을 표현할 때에 마치 나선형 같다고 합니다. 즉 사도 요한은 말하고자 하는 궁극적 진리와 말씀의 핵심에 도달하기까지 빙빙 돌리면서 접근하며, 또한 매번 돌릴 때마다 다른 방식으로 표현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그의 방식을 염두에 두고 사도 바울의 접근 방식과 사도 요한의 방식을 비교하여 볼 때 아주 대조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된 차이점을 말하자면 사도 요한은 논리 전개에 약하며, 말씀 전달 방법에서도 정확하게 맺고 끊는 면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내용면에서는 사도 바울이 전달한 말씀의 내용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단지 같은 내용의 말씀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했을 뿐입니다.
때로는 요한이 바울보다 더 신비적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표현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이나 사도 요한이나 둘 다 기독교적 신비주의자들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진리에 대해 설명할 때, 요한의 스타일이 직접적이며 논리적인 사도 바울에 비해 훨씬 더 간접적일 따름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와 같이 대조되는 두 종류의 스타일을 함께 대할 수 있다는 데 놀라운 이점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러한 차이점들을 볼 때 사도 베드로가 그의 서신인 베드로전서 4:10에서 “하나님의 각양 은혜”로 표현한 말씀을 상기해 볼 수 있습니다.
진리의 빛은 자연의 빛과 같은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자연의 빛이 프리즘에 의해 여러 종류의 색깔로 나뉘어지면서도 하나의 완벽한 빛으로 형성되는 원리와 마찬가지로, 성경 말씀도 이와 같이 설명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즉 모든 말씀이 한분 하나님으로부터 나오고, 한분 성령님에 의하여 감동되어지고 완전하게 영감되어졌으면서도 동시에 여러 면에서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어짐으로, 영광스럽고 궁극적인 진리를 다른 여러 각도에서 반영시킨 것이라는 말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통일성을 설명하여 주는 것입니다.
이 요한서신을 이해하는 또 다른 어려움은, 이 서신이 기록될 당시에 사도 요한은 매우 연로한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요한일서가 주후 80년에서 90년 사이에 기록되었다는 데에는 대부분의 신학자들이 동의하는데-비교적 정확한 기록 연대로 주후 85년을 생각하셔도 될 것입니다-어쨌든 그 당시의 요한은 꽤나 연로한 상태였음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여러 부분에서 입증할 수 있는데, 그 중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사도 요한은 “자녀들아”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으며 아주 다정스러운 어조로 이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 서신을 이해하는 데 어려운 점은 사도 요한이 어느 한 가지에 대해 설명을 할 때, 이것이 다른 생각을 불러일으키면 지체하지 않고 그 생각을 즉시로 표현하고 나서 다시 처음 시작한 부분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사도 요한의 요한일서를 읽고 이해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핵심 원리들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된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서신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에 근본적인 배경을 제시하는 말씀인 5:19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라는 말씀을 갖고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서신의 주제는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위치에 대한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요한일서 전체에 걸쳐 3개의 주요 구절이 있는데 그 첫번째가 이 5:19입니다. 그리고 두번째가 5:13의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는 말씀이며, 세번째는 1:4의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라”는 말씀입니다.
20세기 최고의 강해 설교자, 로이드 존스는 어렸을 때부터 의사가 되기를 바랐고 우수한 성적으로 의과대학에 들어갔으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바라시는 것은 육신의 질병을 고치는 의사가 아니라 영혼의 질병을 고치는 목회자의 길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27살때 장래가 촉망되던 의사 직업을 버리고 아베나본에서 목회를 시작하였다. 남웨일즈에 있는 이 도시에서의 사역은 놀라운 것이었고 그 교회에 부흥을 가져왔다. 그후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채플로 옮겨 30년간 사역하였다. 그는 영혼을 일깨우는 깊이 있는 설교로 전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저서로는 생명의말씀사에서 출판한 `구약을 사용한 복음설교`, `권위`,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의학과 치유`, `로이드존스의 부흥`, `하나님 앞에 사는 즐거움`, `항상 기뻐하라`, `항상 평안하라`, `요한일서 강해 시리즈` 등이 있다.
영국의 남웨일즈에서 출생하였고, 런던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는 성 바돌로매 병원에서 의학을 수련한 후 외과의사로서 실무에 종사하였다. 그러나 1927년에 그는 의학계를 떠나 남웨일즈 에버라본 시 웰쉬 장로교회의 목사가 되었다.
그는 런던 웨스트민스터 교회에서 유명한 복음 설교가인 캠벨 몰간의 후임 목사로 지명되어 1968년 8월 은퇴하기까지 30년간을 목회하면서 많은 강해설교들을 하였다. 그의 글들은 평이하면서도 반복되는 것이 특징이다. 그는 이러한 그의 천부적인 언어로 많은 독자들을 매혹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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