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도대체 우리가 무엇 때문에 구원을 받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무엇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계획하셨으며, 예수님께서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피를 흘리셨습니까? 그것은 단순히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지옥에 가지 않고 영원한 천국에서 복을 누리는 것이 일차적인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위대한 구원을 주신 것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우리 몸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구원의 일차적 목적은 우리가 몸으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어드리는 것이며, 그런 삶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적인 평가가 우리 각자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궁금한 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의 기도는 전혀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느냐 하는 점입니다. 우리 속담에 ‘지성이면 감천’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음씨가 착한 사람이 매일 물을 떠놓고 비니까 소원 성취가 되더라는 것이지요. 물론 하나님의 일반 은총이 그런 것까지 모두 다 거부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일반 은총이 그런 것까지 모두 다 거부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양심적이고 착하게 살려고 하는 자들에게 어느 정도 은혜를 주십니다. 때로는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시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는 그런 소원 성취 수준이 아닙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우리의 병을 낫게 해주시거나 이 세상에서 좋은 직장을 주셔서 잘살게 하시는 수준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이 지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게 하시며, 여기서 우리 안에 하나님이 충만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단순하게 소원 성취의 수준에서 기도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6:8)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관심하신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시며, 우리가 구하기도 전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시는 분이십니다.
여기서 우리의 기도에 문제가 생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다 아신다면 우리가 무엇 때문에 기도하느냐 하는 것이지요.
사실 우리의 신분이 바뀌면서 우리의 기도에 어려움이 생깁니다. 그래서 기도를 하지 않는 순간이 있습니다. 노예로 있을 때에는 기도를 많이 했는데, 아들이라는 신분을 얻고 난 후에는 기도가 더 되지 않고 기도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신실한 성도들은 고민을 합니다. 전에 복음을 모르고 노예처럼 신앙 생활할 때에는 교회 봉사도 열심히 했고, 기도도 많이 했으며, 헌금도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듣고 난 후 진정한 영혼의 자유를 얻었습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 보니까 자신이 옛날보다 훨씬 기도를 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 봉사도 그렇고, 헌금도 발표를 하지 않으니까 자꾸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복음 때문에 신앙이 더 후퇴했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것이 정상적인 과정이라고 말씁하십니다. 노예에서 아들로 변하는 과정에서 기도의 공백기 같은 기간이 있습니다. 내가 입을 열지않아도 나의 아버지는 나의 모든 필요를 다 알고 계시는데 굳이 기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선 첫째로, 나의 것을 버리기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무엇인가 나에게 필요한 것을 가지기 위하여 기도했지만, 이제는 욕심을 버리기 위해서 기도하고 나를 하나님앞에서 바꾸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옛날에는 내 생각이나 나의 뜻으로 하나님을 설득하기 위하여 오랜 기도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찾아서 그 뜻에 나를 복종시키고 나를 포기하며 나를 변화시키기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기도하셨습니까?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으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라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 22:42)
이미 하나님께서는 나의 필요를 아십니다. 그러나 나는 그 필요 이상을 가지고 싶고 나의 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절대로 나의 것을 포기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정상적인 기도는 기도함으로써 내가 점점 죽고 망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기도할수록 더 자아가 강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기도하면서 자기 최면을 걸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대답하기 곤란하면 기도해 보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더러 포기하라고 말씀하실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우리가 기도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아들의 자격을 가지지 못한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합니까? 그들은 아직도 잘못된 신관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들의 제사장의 자격으로 그들의 죄를 인하여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이 세상이 그나마 덜 타락하고 일반적인 은혜라도 누릴 수 있으려면 그들의 죄를 사하기 위하여 기도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어야 합니다. 가족들의 죄를 인하여 기도하며, 회사 사람들의 조를 인하여 기도하며, 민족의 죄를 짊어지고 하나님 앞에 통곡하며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를 해보면 내 자신을 위한 기도는 잘 응답이 되지 않는데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는 놀랍게 응답되는 것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신의 문제는 완전히 하나님께 맡겨버리고 다른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는 일에 전무하라는 뜻입니다.
스펄전은 자신의 사역을 위하여 기도해 주는 사람들은 늘 자랑스럽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의 사역은 자기를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들의 기도의 능력에 힘입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가장 잘 도울 수 잇는 길은 그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저희 교회는 수요일을 중보 기도 예배로 드리고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한 일인지 모릅니다.
다른 사람을 위히여 기도하려면 일단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보다 더 자신의 문제를 잘 내놓는 사람들은 없을 것입니다. 저는 어느 부부 모임에서, 성도들이 자신의 문제를 스스럼없이 내놓은 것이 퍽 인상적이었노라고 고백하는 초신자 부부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사실 나의 문제를 내놓은 것 자체가 벌써 기도입니다. 그래서 신앙 생활이 제대로 되려면 소그룹을 찾아서 거기서 내 문제를 내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부터 기도는 시작됩니다.
주님은 기도하는 대상을 제한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를 들어서 전혀 축복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축복 기도를 하면 자기에게 돌아오게 되니까 그런 걱정은 하지 말고 모든 자를 위하여 복을 빌어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 번째로.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죄를 토하여 내며 하나님의 성령으로 채워지기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성령의 은혜는 지속적이지 않습니다. 얼마 가지 않으면 고갈됩니다. 우리에게 은혜가 고갈되면 바로 사탄이 틈을 타고 육체의 정욕으로 우리를 지배합니다. 마치 우리 영혼은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과 같습니다. 강물이 많으면 바닷물이 밀려나가지만, 강물이 고갈되면 바닷물이 강 안으로 밀고 들어와서 곡식이나 다른 것들을 죽이게 됩니다.
우리가 성려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벌써 상태가 좋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에 예민해지고, 자꾸 짜증을 내며,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화를 내게 됩니다. 그리고 죄 짓는 데 빨라 집니다. 우리는 오느 순간에 죄에 빠질지 모릅니다. 아이들 중에서는 한순간에 찻길로 뛰어들거나 뜨거운 물을 만지려고 해서 부모를 놀라게 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사실은 우리들이 그렇습니다. 어느 한순간에 죄에 빠지게 될지 모릅니다. 그런데 죄에 빠지면 성령의 기쁨을 다 잃어버리고 구원 받지도 못한 사람 같은 느낌이 우리를 지배하게 됩니다. 그럴 때 조용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연약하여 넘어졌으며 또 부끄러운 죄에 빠졌다는 것을 고백하면 다시 성령의 은혜가 회복됩니다. 그때 우리는 더욱더 하나님의 능력으로 채움 받고 싶고, 더 성장하고 싶고, 하나님과 더 가까이 교제하기를 원해서 기도하게 됩니다.
우리는 신앙 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더 잘 들어주시는 줄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보면 결코 그렇지 않으며 누구나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도 많이 하시는 권사님이나 목사님에게 기도를 받으러 가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미신적으로 믿는 것입니다. 나도 얼마든지 기도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업을 시작할 때 담임 목사님이 와서 기도해야 사업이 잘될 줄 아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합니다.
그러면 실제로 기도는 하고 싶은데 기도가 잘 안되는 것은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느끼는 어려움이고 나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저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면서 기도하는 것이 한 방편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과거의 은혜들을 하나님의 얼굴로 생각하고 기도한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신 말씀이 하나님의 얼굴입니다.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기도할 때 보다 쉽게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기도에 장소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또 시간을 길게 해야 들어주시는 것도 아닙니다. 반드시 기도원에 가거나 교회에서 기도해야 들어주시는 것도 아니고, 사십 일이나 백일이나 시간을 정해서 기도한다고 들어주시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함께 모여서 기도하는 것은 대단한 힘을 가집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그리스도인들이 모여서 기도할 때 큰 역사들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사도들도 기도 시간을 기억하고 함께 모였다가 큰 성령의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우리들도 함께 모여서 기도하기를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통하여 나를 죽이고 하나님을 나타내도록 합시다.
기도하면서 처음부터 흥분되지 않는다고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거부하셨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그런 흥분은 자기 스스로의 최면으로도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가장 다급한 문제가 있다면 하나님께 말씀드린 후 잠시 접어놓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기 시작하십시다. 그러면 어느 순간에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으셨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영원한 요구 5:17-20
2. 미워하지 말라 5:21-26
3. 성, 축복인가 재앙인가 5:27-32
4. 인간의 의자와 하나님의 뜻 5:33-37
5. 나의 것과 하나님의 은혜 5:38-42
6. 나의 이웃과 원수 5:43-48
7. 모든 것을 보시는 하나님 6:1-4
8.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 6:5-8
9.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6:9,10
10.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6:11-13
11. 하나님 앞의 겸손 6:14-18
12. 땅에 쌓은 보물과 하늘에 쌓은 보물 6:19-24
13. 염려하지 말라 6:25-34
14. 비판하지 말라 7:1-6
15. 찾고 두드리는 사람들 7:7-12
16.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7:13-20
17. 천국 백성의 심판 7: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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