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새롭게 읽기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가 바로 요한계시록 전체의 핵심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요한계시록은 두려움의 책이라기보다 소망과 위로의 책이다. 무엇보다도 요한계시록은 박해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로하기 위해 기록된 책이다. 이 책은 역사에 대해 비관론적인 시각을 우리에게 제공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영원의 관점, 궁극적 실재 그리고 천상의 관점에서 ‘현재를 보게 하는 책’이다.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계 19:6)
요한계시록과 시한부 종말론
교회의 역사 이래 각 시대마다 어느 날 어느 시에 예수님이 재림한다는 시한부 종말론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다 사라지곤 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요한계시록의 구체적 구절들을 무기 삼아 예언자 행세를 하다가, 자신들이 호언장담하던 그날이 지나면 뭇사람들의 비난 속에 자취를 감춰 버렸다. 하지만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요한계시록을 앞세우고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시한부 종말론은 그야말로 끈질긴 생명력을 지녔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도 어김없이 나타난 자칭 선지자나 재림예수들은 요한계시록의 특정 문구들을 근거로 자신이 그 선지자라고 외쳐대며 수많은 영혼들을 미혹하고 있다. 이처럼 잘못된 시한부 종말론의 영향으로, 이 시대는 오히려 반드시 지녀야 할 종말론적 신앙을 잃어버린 채 현세주의와 물질적 세계관에 몰입하는 세속화의 길로 치닫고 있다. 도대체 요한계시록이 어떠한 책이기에 이리도 많은 이단들이 그 말씀을 악용하는 것일까? 하나님께서 요한계시록을 마치 비밀문서처럼 잘 알아보기 어렵게 주신 이유는 무엇일까?
말씀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대로 말씀을 바르게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택하신 자라도 미혹하기 위해 잘못 해석한 말씀으로 포장하여 접근하는 거짓 선지자들에게 마음과 영혼을 빼앗길 수 있다.
요한계시록은 은혜를 받고 적용하기 어려운 책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는 말씀을 가르치는 목회자뿐 아니라 일반 성도에게도 유익한 안내서이다. 복잡한 내용들을 복음적으로 쉽게 이해하도록 도와주면서, 동시에 본문 주석에 있어서도 성경이 오늘 우리에게 교훈하는 메시지를 학자적인 지성과 목회자적 영성으로 잘 조화를 이루며 써 내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요한계시록은 신약성경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책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래서 목회자들도 요한계시록 설교하기를 가장 주저하며, 성도들도 두렵거나 또는 난해한 책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는 요한계시록이 난해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그 말씀을 이해하고 은혜를 받으며 적용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마라나타의 신앙으로 우리를 인도
저자는 요한계시록에서 모든 심판이 하나님과 어린양의 주권 아래 이루어지는 것을 거듭 강조하고 있음에 주목한다. 그리고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무엇보다 하나님과 어린양의 영광을 더 많이 발견하기를 기대한다. 하나님과 어린양이 바로 왕이요 주권을 가지신 분이시며, 모든 심판의 권세를 가지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과 어린양의 통치가 완성되는 날을 고대하게 되기를 바란다. 저자는 종말이라는 주제가 그리스도인들에게 두려운 일이 아니라 소망과 위로가 됨을 강조하면서, 하나님 나라가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것을 사모하는 마라나타의 신앙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신천지의 잘못된 요한계시록 해석 비판
더불어서 부록으로 신천지의 요한계시록 해석 비판을 통해 성경의 가르침과 명백히 어긋나는 잘못된 해석에 대해 조목조목 밝혀 두었다. 신흥종교들이 창궐하는 이때, 이 책을 통해 성도들이 요한계시록이 가르쳐 주는 말씀 위에 서서 흔들리지 않게 되며, 혹시 미혹된 자들도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는 길을 안내받게 되길 기대한다.
많은 사람이 요한계시록을 무서운 ‘심판의 책’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요한계시록에서 심판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 적지 않다. 그럼에도 심판 그 자체가 과연 요한계시록의 목적이며 가장 중요한 사상이라고 단순하게 말하기 어려운 이유는, 요한계시록은 모든 심판이 하나님과 어린양의 주권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거듭해서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모든 심판의 종착역이 어디인가? 바로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가 모든 심판의 종착역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의 선하신 통치의 완성이 심판의 목표로 계시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심판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왕 되심을 보여 주는 심판인 동시에 하나님의 주권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이다. 심판의 결과 하나님의 선하신 통치가 완성되어 간다. – ‘1장_ 요한계시록을 여는 일곱 가지 열쇠’ 중에서 –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하여 주님은 거룩하고 진실하시며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로 나타난다. 예수께서 여시면 닫을 사람이 없고 예수께서 닫으시면 아무도 열 수가 없다. 주님은 하나님과 같이 절대 주권을 가지신 분이다. 요한계시록 6:10에 보면 하나님께서 거룩하고 진실하신 분으로 불린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름이 여기서 예수께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이러한 어법은 요한계시록에서 여러 차례 나타난다. 하나님께 돌려지는 이름들, 하나님만이 하시는 일들, 하나님의 속성들이 예수께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요한은 이러한 방식으로 예수께서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임을 나타내고 있다. – ‘2장_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요한계시록 2-3장’ 중에서 –
요한계시록 4-5장은 일명 천상의 경배라 불리고 있다. 요한계시록 4장에서는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가 찬미와 경배를 드리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고, 요한계시록 5장에는 어린양 그리스도께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 그리고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천사가 경배를 드리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요한계시록 4-5장은 그 전체가 천상의 예배 광경을 묘사하고 있으며, 아마 요한계시록 전체에서도 가장 장엄한 예배 광경을 묘사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모습을 상상해 보라. 이 장면보다 더 장엄한 예배 광경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 ‘제3장_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양: 요한계시록 4-5장’ 중에서 –
무엇보다도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심판의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요한계시록의 가장 중요한 이슈 중의 하나이면서 동시에 가장 난해한 문제임이 틀림없다. 소위 일곱 심판 시리즈라고 불리는 심판들은 요한계시록의 전체 몸통을 이루고 있으며, 이들의 관계를 규정하는 것은 그 해석과 직접 관계되기 때문이다. 일곱 심판 시리즈는 연대기적인가? 혹은 일곱 심판 시리즈는 연대기적인 사건이 아니고 반복재현 되는 것인가? – ‘제4장_ 일곱 심판 시리즈: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중에서 –
막간을 다루는 요한의 마음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교회가 아닐까? 요한계시록 2-3장에서 우리는 교회를 향하여 애끓는 마음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의 마음을 읽었다. 이미 우리는 교회라는 주제가 다양한 모습으로 반복되고 있는 것을 살펴보았다. 요한계시록은 교회로 시작해서 교회로 끝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 ‘제5장_ 막간 시리즈’ 중에서 –
요한계시록 17-18장은 결론 부분에 해당하는 장들이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17-18장에 기록된 음녀 바벨론에 대한 심판은 전혀 새로운 사건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일곱 심판 시리즈가 끝나고 나서 또 다른 심판을 전개하는 것도 아니다. 음녀 바벨론에 대한 심판은 이미 14:8에 예견되었다. 또한 음녀 바벨론에 대한 심판은 16:19에 다시 기록되고 있다. 따라서 요한계시록 17-18장의 사건은 16:19을 확장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요한계시록 17장이 바벨론 심판의 원인과 당위성을 설명하는 장이라면, 18-19:5은 멸망의 결과와 그 영향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 ‘제6장_ 음녀 바벨론 심판: 요한계시록 17-18장’ 중에서 –
신흥종교들이 창궐하는 이때 성도들이 요한계시록이 가르쳐 주는 말씀 위에 서서 흔들리지 않기를 기도한다. 신흥종교에 미혹된 자들도 이 책을 진지하게 읽고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기를 소망한다. 저들은 거짓 영에 붙들려 자기들의 교주를 재림한 예수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어둠의 영, 미혹의 영이 떠나가고 진리의 영이 오셔서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보좌를 올바로 볼 수 있기를 바란다. – ‘에필로그’ 중에서 –
제1장_ 요한계시록을 여는 일곱 가지 열쇠 _21
제2장_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요한계시록 2-3장 _83
제3장_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양 _135
1.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 요한계시록 4장 _148
2. 보좌에 앉으신 어린양: 요한계시록 5장 _162
제4장_ 일곱 심판 시리즈: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_193
1. 일곱 인 심판: 요한계시록 6:1-17과 8:1-5 _211
2. 일곱 나팔 심판: 요한계시록 8-9장 _222
3. 일곱 대접 심판: 요한계시록 15-16장 _228
제5장_ 막간 시리즈 _239
1. 제1막간. 십사만 사천은 누구인가?: 요한계시록 7장과 14장 _247
2. 제2막간. 두 증인: 요한계시록 11장 _264
3. 제3막간. 영적 전쟁, 적그리스도, 두 짐승: 요한계시록 12-13장 _281
제6장_ 음녀 바벨론 심판: 요한계시록 17-18장 _309
제7장_ 새 하늘과 새 땅: 요한계시록 21-22장 _329
에필로그 _355
부록: 신천지의 요한계시록 해석 비판 _358
주 _368
참고문헌 _378
김추성 교수가 금번에 집필한 이 책은 우리 성도들에게 요한계시록을 통해 우리가 믿는 복음의 매우 중요한 한 요소, 너무나 중요해서 잃어버려서는 절대로 안 되는 요소를 전해 주고 있다. 곧 마라타나의 신앙이다. 많은 성도가 요한계시록을 어려워한다. 그런데 목회자들 역시 요한계시록으로 설교하는 것을 꺼린다. 오히려 이단들은 늘 요한계시록을 가지고 보수 그리스도인들의 부족함을 공략한다. 우리에게 있어서 주님의 다시 오심과 이때에 일어날 일들을 제대로 아는 것, 그래서 우리의 시대에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단지 지식적으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라나타’를 염원하며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 우리 신앙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먼저, 당대의 문화적 맥락에서 묵시문학적 장르로 쓰여 오늘날 이해하기가 어려운 요한 요한계시록을 우리 성도들이 잘 소화할 수 있도록 쓰인 귀한 책이다. 둘째, 이천 년의 시간적 공백과 시대 상황 그리고 오늘날의 삶이라는 상황적 거리를 뛰어넘어 우리로 하여금 교회를 향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한다. 셋째, 살아있는 동안 하나님 나라를 살아내며, 완벽하게 임하게 하실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게 한다. 마지막으로 그 나라의 중심이신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우리의 시선을 고정하게 도와준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 책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회복하게 해주는 책’이라 확신하며 추천한다.
_김형국 목사│나들목교회 대표 목사, 신학박사
요한계시록은 신약뿐 아니라 구약 계시, 성경 계시의 절정이다. 삼위 하나님의 구속 역사가 어떻게 최종적으로 하늘과 또한 땅에서 이루어지는지를 장엄하고도 아름답게 그려 보여 준다. 그래서 또한 이렇게 풍성하고 복잡한 요한계시록을 바로 해석한다는 것은, 성경에 대한 충분한 연구와 성경해석에 대한 검증된 훈련의 과정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본문에 관한 저자의 설명은 간결하지만, 결코 학문적인 숙고들을 간과하지 않는다. 또한 저자의 해석은 종종 현재 요한계시록 해석에서 우려되는 불균형들을 적절하게 보완한다. 요한계시록 4~5장에 나타난 하나님과 어린양의 주권을 강조하는 점이나, 종말의 하나님 나라에 관한 장소적 개념을 강조하는 부분도 요한계시록 해석에서 주목할 만한 기여일 것이다.
무엇보다 저자의 본문 해석은 지금 이 땅의 교회들을 향한 사랑과 하나님에 대한 신실한 경배와 충성스런 신앙에 다시 불을 붙인다. 온갖 이단들이 거짓 가르침을 독버섯처럼 퍼뜨리는 중에도 ‘잘 되는 나’의 세속적 복음 속에 갇힌 초라한 하나님밖에 모르는 교회들. 저자는 이들을 천상의 보좌에 앉으신 지극히 거룩하시고,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전능하신 주권자이며, 심판의 진노를 쏟으시는 공의로운 초월자 하나님의 엄위와 권능 앞에 불러 세운다. 독자들을 그 엄위하고 놀라운 어린양의 보좌 앞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 보좌 앞에서 온전히 엎드려, 이 만왕의 왕, 만주의 주께 경배하는 종말의 신앙을 회복해야 함을 효과적으로 역설한다. 진지한 일독을 권한다.
_채영삼 교수│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신약학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김추성 교수의 삶과 이 책이 다르다고 느낀 적이 없다. 저자는 다가올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신학자이다. 또한, 저자는 독자로 하여금 무겁고 투박한 이론적 기둥을 언어의 예술과 진솔한 붓으로 그려놓은 한 폭의 풍경화처럼 따듯하게 다가오게 한다. 이 책은 다가올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으로 가득 차 있으며,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강렬한 사랑이 있다. 요한계시록을 둘러싼 수많은 신학적 논의들을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그러나 너무 장황해서 그 흐름을 놓치지 않도록 풀어 간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다가올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기 위해서 힘써야 한다. 그러나 그 나라는 이 땅에서 실현되는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는 다가올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만이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인 되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종말이라는 주제가 그리스도인들에게 두려움이 아니라 소망과 위로가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 나라가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것이고, 따라서 성도들은 그 역사를 완성으로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끝으로 이 책은 그리스도인의 소망의 근거가 보좌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오늘날 논의되는 종말론의 근본적인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종말론은 철저하게 기독론과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저자의 말처럼 요한계시록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에 관한 책이다. 바라기는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하여 하나님과 역사 그리고 자신에 대해 올바른 성경적인 이해를 했으면 한다.
_라영환 교수│총신대학교 조직신학, 꿈누리교회 담임목사
김추성 교수는 총신대학(B.M)과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하였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간절한 사모함이 있어 도미하여 필라델피아에 있는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에서 Vern S. Poythress 박사의 지도로 신약학(Th.M.)을 전공한 후, 시카고에 있는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에서 세계적인 신약학자이며 복음주의 지도자로 손꼽히는 D. A. Carson 박사의 지도 아래 요한계시록에 관한 논문을 써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은 기독교의 가장 핵심적이며 본질적인 문제, 즉 유대유일신 사상과 기독론의 상관관계를 요한계시록 4-5장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으며 논문 제목은 <Revelation 4-5 and the Jewish Antecedents to the Portrait of God and of Messiah in the Old Testament and Apocalytic Literature>이다.
현재는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신약학 교수로 섬기고 있다. 저자는 요한계시록에 관련된 여러 논문들을 집필해 왔으며 오래 전부터 요한계시록에 대한 안내서의 필요성을 느껴, 목회자와 신학생 그리고 성경을 진지하게 연구하고자 하는 성도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본서를 출간하게 되었다.
저자는 요한계시록과 더불어 성경전반에 걸쳐 폭넓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본문에 대한 분석적이면서도 성경신학적인 통합적 접근을 선호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저자는 메마른 지성을 추구하는 학자가 아니라 기도하는 신학자이다. 진리의 불을 토해 내는 설교자이며 영혼을 사랑하는 목회자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음악과 예술을 사랑하는 따뜻한 감성은 그의 신학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주 예수께서 주시는 마르지 않는 은혜의 샘물이 그를 통해 흐르기를 기대해 본다.
저서로는 『요한계시록 4-5장 연구: 구약과 묵시문학에 비추어』(예영커뮤니케이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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