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부 하나님의 고통스런 결심과 결의, 또 그 결정에 대한 성자 하나님의 적극적인 순종, 우리는 여기에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를 볼 수 있지요. 그렇습니다. 십자가란 참으로 ‘고통스러운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보여주신 참으로 진지하게 고통스러운 사랑! 그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본문 중에서
우리는 그분을 힘입어 “살고”, 그분을 힘입어 “움직이며”, 그분을 힘입어 “존재”합니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쳐주고 있는 ‘창조하신 아버지’께서 여전히 세상을 ‘섭리하고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해가 뜨고 지는 것, 너울이 일고 바람이 부는 것, 산새들의 지저귐과 폭포수의 요동치는 물소리까지, 그분을 통해 ‘존재하지/유지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고, 존재하는 이들”입니다. 우리의 생명도, 우리의 움직임도, 우리의 존재도, 모두 ‘그분 안에’, ‘그분께 힘입어’ 있습니다. 생(生)과 사(死) 모두가, 정(靜)과 동(動) 모두가, 우리 존재의 유(有)와 무(無) 모두가 다 그분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내던져지지 않았습니다!
(p.30)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 곧 이 땅에 오심이란, 그분의 한량없는 은혜로 된 것이나, 이 나라는 육을 부인한 사람들을 통해서만 얻어집니다. ‘성령의 덮으심’은 하나님의 한없는 품으심, 곧 그분의 날개 아래로 들어오라는 요청이나, 이 나라는 ‘육체의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들어오지 못하는’ 그런 나라입니다. 이것이 ‘성령 잉태’와 ‘동정녀 탄생’에 대한 사도신경의 고백, 곧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고백입니다.
(p.65)
그러나 세계의 멸망 속에서, 두 눈에 기대감을 가득 품고 기다리고 있는 기이한 자들이 있습니다. 세상의 심판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여시는 하나님을 알고 있기 때문에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고 “새 하늘과 새 땅을 눈을 들어 바라보는” 이들이 있는 것입니다. 이들이 바로 우리, 신자들입니다.
(p.140)
우리는 저마다 다 하나님께 ‘살아갈 날 만큼의 분깃’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땅에서 그것을 제 나름의 방식대로 잘 꾸려가면서 살아가고, 그것은 최후의 날에 하나님께 평가를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코스모스 꽃 향기가 너무 좋아서, 비석치기와 팽이 놀이에 넋을 팔려서 마이클을 놓치기도 합니다. 궁극적으로 해야 할 일과 잠깐 즐거워해야 할 일을 혼동하는 것입니다. 삶은 우리에게 기쁨도 주고, 살아갈 힘이 되는 많은 요소들이 우리 주변에는 있습니다. 하지만 목표를 잃어버리지는 않으셨나요? 마이클이 오고 있는데 너무 내 시선은 얼마 남지 않은 땅따먹기에 팔려 버리지는 않았나요?
삶에의 중심은 ‘묵상’에서 옵니다. 우리는 ‘영원을 바라보는 법’과 ‘일상을 멋지게 살아가는 법’ 사이의 균형을 ‘묵상’을 통해 이뤄냅니다. “삶이 너무 바빠요!” 하는 사람이 너무 많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원에 투자하고 계신가요?
-에필로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