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셔서 주신 이 날,
모든 상황을 역전시키는 비밀의 시간이 시작된다.
풍요로움과 휴식, 재생산을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복된 날
코로나19로 인해 함께 모여서 드리는 예배의 의미는 물론이고, 주일 자체에 대한 거룩성과 중요성도 함께 퇴색되어 가고 있다. 세상은 예배하는 자들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한두 번 정도 주일 성수를 하지 않아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믿음이 약한 자들은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는 시점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세태 속에서 저자는 강력하게 선포한다.
“주일성수는 믿음을 보여 주는 척도가 된다. 주일을 지킨다는 것은 우리의 노력을 의지하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해서 일하며 안식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일을 무시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위이다.”
주일을 지키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떠나는 것과 같다. 하나님을 떠난 자의 말로(末路)는 어떠한가? 우리는 성경을 통해 그러한 자들을 수없이 지켜보았다.
“이 날은 여호와께서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시 118:24)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이 날을 주셨다. 인간의 생체리듬을 잘 아는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위해 쉼을 주시고 휴식과 평안을 선물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안식’이라는 선물을 누릴 마땅한 자격이 있는 자들이다. ‘안식’과 주일에 대해 더 자세히 살펴보고, 하나님 안에서 참된 의미의 안식을 누리자.
[출판사 서평]
성도의 정체성, 주일 성수가 믿음의 척도다!
“성도는 매일을 예배자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모든 날이 예배여야 한다는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말이 전파됨과 동시에 ‘주일’의 의미와 중요성이 희미해져 갔다. 주일이 여느 날과 같은 날이 되어버려 주일(主日)을 주님의 날, 특별한 날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우리 삶을 뒤덮은 코로나19와 대면 예배의 중지는 이러한 풍토를 더욱 가속화했다. 주일 성수가 되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배를 제대로 드리지 못할 것이며, 그 결과는 영적인 침체로 이어져 죄에 무감각한 상태가 된다.
무신론자였던 프랑스의 작가 볼테르(Voltaire)는 “그리스도인을 없애려면 먼저 주일부터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짧은 한마디는 성도들에게 주일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주일에서 나온다. 주일을 지키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가슴에 손을 얹고 “나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입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이러한 시대의 한 가운데서 저자는 강력하게 주일의 중요성을 성토한다. 성경적인 근거를 들면서도 어렵지 않게, 그리고 실제로 주일을 지켜내었던 믿음의 선조들을 소개하며 다시 한번 주일의 중요성을 강력하게 외친다.
“우리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도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해방시켜주신 주님의 크신 사랑에 감사하는 신앙고백이다. 구원의 은혜를 아는 자라면 즐겁게 주일을 지키며 안식의 복을 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