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고백인 시편 39편 5-6절을 본문으로 한 설교]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 (셀라)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우리의 인생도 손바닥만 할 뿐이고,
그 손바닥만 한 인생은 하나님 앞에서 없는 것과 같습니다. .
그렇다면 그런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겠습니까?
허무만 씹으면서 염세주의자가 되어야 합니까?
세상으로부터 도피해야 합니까? 아닙니다.
인생 자체를 목표로 삼으면 허사로 끝납니다.
주님을 나의 주님으로 모시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내가 ‘주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죽기까지 하나님께 순종하신 테바의 주님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신 엑소도스의 주님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두 눈으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동시에 보신 에네의 주님이셨습니다.
주님, 지금부터 우리 모두가 주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해주십시오. 그리하여 한 뼘 길이밖에 되지 않는 우리의 인생이 지금부터 영원에 접속한 영원한 삶이 되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내가 주님의 사람이 되면, 인생의 폭풍이 불어도, 인생의 계획이 내 예상과 전혀 다르게 전개되어도, 이 길을 걸으면 저 길을 걷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당해도, 고통스러운 모함을 당한다 해도, 주님께 모든 소망을 걸고서 주님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_18쪽에서
우리가 주님의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인생의 방향, 속도, 멈춤을 철저하게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끌고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끌려가는 것입니다. _21쪽에서
입으로만 영생을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진실로 믿고 죽음에 임하는 순간이 내가 영원과 접속되는 순간임을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아무리 교회에 다닌다 해도 세속적인 가치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_29쪽에서
눈에 보이는 것은 다 사라집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보는 외눈을 가지면, 여러분은 평생 ‘나의 주님’이라 고백하면서 주님을 제한하고 제어하는 사람은 될 수 있을지언정,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폭풍이 몰아치나 주님께 순종하고 지족知足하고 자족自足하는 주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_37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