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시대에 한국 교회를 어떻게 세울 것인가?’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어떤 세상이 될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염려가 가득한 마음으로 기도할 때, 주님께서 주시는 책망이 있었습니다.
“왜 두려워만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듣는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지요! 주님을 바라보게 되니 마음이 바뀌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현재 상황이 아무리 어렵고 앞이 캄캄할지라도 ‘어떻게 하면 주님이 기뻐하실까?’ 하는 생각만 하며 살면 충분하다는 것이 깨달아졌습니다. 그것이 깨달아지자 일어나서 춤을 추며 소리 높여 기도했습니다.
앞으로 별의별 일이 많겠지만 무슨 일을 만나든지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시게 할까?’ 그 생각만 하며 사는 것이 우리가 살 길입니다. 그 길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면 주님이 책임져 주시고 인도하실 것이 아니겠습니까?
<프롤로그>에서
잘못된 길에 있음을 깨달았으나 어떻게 돌이킬지 몰라 절망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때도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나의 힘으로 돌이키는 것이 아닙니다. 마귀가 원하는 것은 뒷걸음질입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절망하고 의심하고 안 된다고 생각하고 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믿음의 뒷걸음질입니다. 절대로 믿음의 뒷걸음질을 해서는 안 됩니다. 정말 안 될 것 같아도 우리가 할 일은 뒷걸음질하지 않고 한 걸음이라도 예수님께로 더 가까이 가려고 발걸음을 옮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면 주님은 우리를 향하여 달려오십니다. 주님이 우리를 붙들어주실 것입니다.
<이기지 못할 시련은 없다>에서
주님이 함께 계신 것이 믿어지지 않으니 문제 앞에서 마음이 흔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혹 중환자실에 가게 될 일이 생기더라도, 파산 직전이라 하더라도, 심지어 순교할 상황이 닥쳤다 하더라도 주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것을 믿으면 하나님은 그 상황 안에서 나를 놀랍게 이끄십니다. 그 일은 두고두고 나에게 간증이 됩니다. 그러나 주님과 동행하지 않는 사람은 두려움 때문에 무너지는 것입니다.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에서
주님과 온전히 연합하여 사는 삶이란 늘 주님을 의식하고 주님을 바라보며, 순종하는 삶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 깨닫고,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가 항상 주 예수님을 바라보고, 주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이 몸살을 앓는 것처럼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지금 주님과 친밀함이 없는 사람은 주님 앞에 절대로 담대히 설 수 없습니다. 지금부터 주님과 친밀히 동행해야 주님 앞에 설 담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믿음이 흔들릴 때 주님을 바라보라>에서
성경은 우리에게 구원받은 자는 반드시 이기는 자라고 말씀하면서도 이기는 자가 되기 위해 우리에게 노력하라고 말씀하지는 않습니다. 성경은 이에 대해 놀라운 말씀을 하는데, 이김을 하나님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은혜로 받은 것처럼 이기는 것도 은혜로 받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악한 자의 유혹을 이길 수 있습니까? 요한일서 5장 18절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지켜주셔서 악한 자가 우리를 만지지 못함으로 우리가 범죄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이기는 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