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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토 곤잘레스의 간추린 교회사 (Church History An Essential Guide)

$20.00 $14.00

저자/역자 : 유스토 L. 곤잘레스/주재용  |  출판사 : 은성
발행일 : 2019-02-01  |  (152*225)mm 172p  |  979-11-8992-900-8
이 책은 저자가 수년간 교회사를 가르친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했다. 교회사를 처음 공부하는 학생들의 어려움은 세계적 시각에서 볼 수 없다는 데 있다. 처음 교회사를 대하는 대부분 학생은 역사에 있어서 근본적인 것과 부수적인 것을 구별하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는다. 더욱 어려운 것은 역사적 사실을 외우는 데 시간을 낭비하면서 특정 시기에 어떤 사건이 발생했는지, 또는 그 사건이 그 뒤에 교회사에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이 책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역사를 총체적으로 요약함으로써 교회 역사의 큰 흐름을 파악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보편적인 교회사와는 다르다. 이 책의 내용이 자세히 기술하거나 복합적인 역사관을 제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에 이 책이 하나의 지도나 나침반이 되어서 교회사를 처음 대하는 학생들의 안내자 역할을 함으로써 교회사 공부를 쉽게 할 수 있도록 했다.

[본문 35-39쪽 ‘유스토곤잘레스의 간추린교회사’중에서]

제1장
초대교회

기독교의 시작에서 콘스탄틴이 박해를 끝낼때까지
(밀라노 칙령,313년)

이 시대는 전체 교회사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형성기였다. 왜냐하면오늘날까지 우리는 그 당시에 결정된 것들의 영향을 받으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이미 종교, 문화, 사회 및 정치 구조가 형성되어 있는 세상에서 탄생하였다.

기독교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역시 기독교가 나타난 그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왜내하면 그 상황은 기독교의 생활과 교리를 형성하는데 매우 큰 영향을 두었기 때문이다. 초대 교회의 가장 긴급한 상황은 유대교-처음에는 팔레스틴 유대교 그리고 그 후에는 성지(the Holy Land)에서 벗어난 지역에 산재해 있던 유대교이었다.
팔레스틴 유대교는 구약성서의 마지막 책이 기록된 이후 발전해왔다. 그리스도가 탄생하기 300년 전에 알렉산더 대왕이 그리스에서 이집트까지 이르는 광범위한 영토에 대제국을 세웠으며, 인도까지도 세력을 펼쳐나갔다. 따라서 팔레스틴은 그 한 부분이었다.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이 끼친 영향 중 하나는 “헬레니즘”(Hellenism)이었다. 즉, 그것은 알렉산더와 그의 추종자들이 가져온 그리스 문화와 그가 정복한 여러 나라들에 오랫동안 존속해 온 고대 문화들의 결합체이다.

알랙산더 대왕이 죽자, 그의 후계자가 시리아와 팔레스틴을 계속 통치했다. 막카비를 지도자로 한 유대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후 로마제국이 기원전 63년 다시 정복할 때까지 팔레스틴은 잠시 동안 독립을 했다. 따라서 예수가 태어났을 당시 팔레스틴은 로마제국의 속해 있었다.
팔레스틴의 유대교는 여러 당파와 종교단체들로 구상되어 있었다. 그중 중요한 것들로서 젤롯당, 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세네파가 있었다. 이 종파들은 하나님을 숭배하는 방법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이 로마제국을 대하는 태도와 방법에서도 서로 달랐다. 그들 모두가 합의 했던 것은 오직 한 분의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하나님의 백성들은 특정한 행동규범을 따라야 한다는 것과 언젠가는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팔레스틴 이외의 지역인 이집트, 아시아, 소아시아, 로마, 북아프리카 등에도 많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다. 심지어는 일찍이 바빌론 제국이 지배했던 동쪽의 나라 들에도 유대인들은 있었다. 팔레스틴의 경계를 넘어서 이렇게 방대한 지역에 흩어져 있는 불확정한 유대인들을 “디아스포라” 또는 분산(Dispersion) 유대인이라고 한다. 디아스포라 유대교는 다양한 주변 문화들을 만들어 냈다. 로마제국의 영역 안에서는 히브리어나 아람어-바빌론때 동쪽으로 흩어졌던 디아스포라 지역에서의 공통 언어-보다는, 그리스어-헬레니즘 세계에서 가장 공통으로 사용하는 언어-를 더 많이 사용했다.따라서 이집트에 있던 디아스포라에서 구약은 그리스어로 번역되었다. “70인역”으로 알려진 이 번역본을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기독교인들이 가장 오랫동안 사용하여 왔다. 이집트에는 또한 헬러니즘화된 유대교 철학자인 알레산드리아출신의 필로(Philo of Alexandria)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유대교와 그리스 철학을 결합하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기독교 신앙에 관해서도 비슷한 길을 따르려는 많은 기독교 신학자들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러나 시초부터 기독교회는 유대교의 한계를 뛰어넘어 이방인에게 전달될 정도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 당시의 정치 문화적 환경에 관한 것들을 알 필요가 있다.
정치적으로 지중해의 전역은 통일된 로마제국의 영토였다. 이러한 정치적통일은 기독교의 확장에 기여했다. 그러나 반면에 그러한 통일은 종교 혼합주의에 근거를 두고 있어서, 다양한 종교적 전통들의 혼합은 곧 초기 기독교에 가장 커다란 위협이 되었다. 게다가 정치적 통일의 지지 기반으로 황제 숭배가 있었는데 이것은 기독교 박해의 한 원인이 되었다.

이러한구조 속에서, 새로운 신앙은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면서 나아갔다.

철학에서 플라톤과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의 사상은 지배적이었다. 그들은 현재의 과도기적인 “현상”의 세계보다는 훨씬 더 완전하고 영원한 세계 즉, 눈에 보이지 않고 순수한 이성의 세계(rational world)와 영혼의 불멸성에 관하여 이야기했다. 그리고 높은 도덕적가치들을 추구하는 철학적 교리인 스토아 철학을 많은 사람들이 따랐다. 결국 많은 기독교인들을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기독교 교리를 영혼의 불멸성에 대한 플라톤주의의 개념으로 이해했고, 하나님의 통치의 선포를 플라톤의 이데아 세계에 대한 긍정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스토아의 도덕주의가 기독교 윤리의 발전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초기 기독교의 첫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과제는 유대교 전통과 기독교의 특징이 다르다는 것을 입증해 보이는 일이었다. 신약성서에서 보듯이 자신을 입증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정황은 이방인에 대한 선교였다.
이 이야기는 신약성서를 통해서 잘 알려져 있다. 특히 바울 서신과 사도행전에서 처음 몇 십년 동안 교회는 가장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했음을 알 수 있다. 기독교는 유대교의 새로운 한 종파인가? 기독교가 이방인들에게 개방될 것인가? 기독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이 유대교를 어느 정도 받아들여 따를 것인가? 이것들은 교회가 초기 몇 십년 동안에 씨름 해야만 했던 가장 중요하고도 긴급한 질문들이었다.

목차 / 7

서론 / 9

개관 / 15

제1장: 초대교회 / 33

제2장: 기독교 제국 / 49

제3장: 중세의 초기 / 63

제4장: 중세의 절정기 / 77

제5장: 중세의 후기 / 91

제6장: 정복과 종교개혁 / 105

제7장: 17세기와 18세기 / 123

제8장: 19세기 / 135

제9장: 20세기와 근대성의 종말 / 147

역자 후기 / 159

역자 소개 / 163

색인 / 165

유스토 L. 곤잘레스

쿠바출신의 감리교목사이다. 그는 미국 예일(Yale)대학교 대학원에서 M.A와 Ph.D 학위를 받았으며, 애틀랜타(Atlanta), 에모리(Emory), 국제신학센터(Internatioal Theological Center)등에서 다년간 교수생활을 하였고, W.C C.C.의 신앙과 직제 위원을 역임하였다. 현재는 Interdenominationl Theological Center에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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