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56-58, ‘3.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보여 주는 표적’ 중에서 ]
‘록키’는 한 평범한 남자가 권투의 세계에 뛰어들어 무명 신세를 벗고 유명해진다는 내용의 일종의 출세 영화입니다. 미국사회에는 하루하루 평범하게 살면서도 마음속으로는 한순간의 출세를 꿈꾸는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이런 것을 ‘뉴 신데렐리즘’ 의 환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영화가 그토록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은 평범한 삶에서 탈출해서 유명지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욕망을 채워 주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 나오는 젊은이는 시합을 할 때 자기 애인이 함께 있어 주어야 힘을 냅니다. 그는 첫 경기에서 아주 힘겨운 상대를 만나 연방 얻어맞으면서도 관중석에 자기 애인이 어디 있는가 찾아 보려고 두리번거립니다.
그러다가 상대방 선수에게 결정타를 맞고 쓰러 지지요. 이 영화는 주인공이 거의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퉁퉁 부은 얼굴로 애인의 이름을 부르는 장면으로 끝이 납니다. 사실 수 많은 관중들 속에서 자기 애인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혹시 그 애인이 “나 여기 있어요!”하고 소리를 친다 해도, 사람들의 환호성에 가려 그 선수한테까지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이 영화에 나오는 무명의 젊은이와 아주 비슷합니다. 우리는 신데레리즘에 빠져 있는 사람입니다. ‘내가 지금은 별 볼일 없이 하루하루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하나님이 한번 역사하시기만 하면 한순간에 얼마든지 성공하고 출세할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눈앞에 있는 현실은 록키와 맞붙었던 선수처럼 아주 막강합니다. 생각 같아서는 쉽게 이길 수 있을 것 같은데 막상 붙어보면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에요. 그래서 매일 연방 엄청나게 얻어터지면서 관중석에서 하나님을 찾습니다.
일주일 내내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얻어맞다가 주일이 되면 교회에 와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우리들의 형편 아닙니까? 그러나 관중석 틈에서 하나님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 세상의 살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입니다. 권투 선수로 치자면 프로급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이제 처음 글러브를 끼어본 아마추어나 다름없습니다.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도저히 배겨 낼 도리가 없습니다. 이때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고 계시며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기뻐하신다는 확신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런 확신을 얻을 수 있습니까?
사사기 6장 후반부에서 기드온은 자기 성읍에 있는 우상을 훼파한 죄로 죽임을 당할 뻔합니다. 그는 미디안과 싸워 보기도 전에 동족에게 맞아 죽을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생각지도 못한 도움으로 그를 지켜 주셨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은 알지 못하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그와 함께 하심을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전쟁을 치르기 전에 기드온에게 준비되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