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요한 기자는 두 상황을 하나로 통합해서 나타낸다. 요한 공동체의 교회가 1세기 말에 대적자인 바리새파 유대인들과 갈등한 것은, 요한 기자의 관점에서는 1세기 상반기에 예수가 바리새인들과 갈등한 것과 같은 것이다. 만약 요한이 역사적 상황의 차이를 알았다면, 그것은 요한과는 무관하거나 또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p. 56
신약성서의 그 어느 문서보다 요한복음은 모든 세기 독자들이 전적으로 그들 자신의 용어로 그것을 해석하도록 끊임없이 초대하는 것 같다. 공관복음에는 “외적인 사실들”(external facts)이 나타나 있는데, 이러한 사실들은 공관복음이 기록된 시대와 확실히 연관되어 있다. 그곳에서 우리는 우리와 멀리 떨어진 1세기 팔레스타인 유대인을 만난다. 그가 아무리 인상적이어도, 그는 자신의 시간과 공간에 굳건하게 서 있다.
p. 68
우리는 두 가지 이유로 요한복음 9장에서 시작한다. 이 내러티브는 분명히 기독교 전승에 근거한 것이다.1 그리고 전승된 자료와 요한복음 기자 자신의 자료를 구별하기를 원하는 섬세한 독자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끄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p. 78
공식적인 드라마로 공연하고자 배우들을 출현시켜 두 상황의 무대(two-level stage)를 설정했지만, 각각의 배우들은 두 개의 역할을 동시에 연기하는 한 쌍의 배우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요한복음 9장의 일부 내용은 요한 공동체가 실제로 경험한 것을 반영했다는 강한 인상을 준다.
요한복음 9장은 인위적으로 꾸며진 것도 아니며, 또한 추상적인 신학적 관점을 극화하기 위해서 작성된 것도 아니다.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회당과 요한의 교회 사이에 있었던 극적인 상호작용에 대한 경험을 반영한 것이다. 이렇게 반영된 것을 관찰하기 위해 우리는 오직 두 상황의 무대를 인지하기만 하면 된다.
p. 98
요한복음 5장과 7장의 일부에서는 요한복음 9장과 비슷한 동시적 두 상황의 드라마를 갖고 있음이 분명하다. 요한 도시의 장로회는 회당의 구성원들을 세밀하게 검열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맹인을) 출교했다. 또한, 그들은 유대 기독교 전도자들을 사기꾼으로 바라보았고, 그런 신원에 근거해서 관련자를 법적으로 고소할 수 있었다.
p. 1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