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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은혜의 발걸음’을 기억하는 64인의 이야기
故 은보(恩步) 옥한흠 목사 추모집, 『옥한흠 은혜의 발걸음』.
2010년 9월 2일 아침, “한국교회의 큰별이 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한국 교회의 영적 멘토, 제자훈련 목회의 대명사, 한국 교회의 갱신과 일치 운동의 선구자”라는 거창한 수식어보다 “작은 예수” 이 한마디가 더 잘 어울리는 옥한흠 목사.
이 책은 그분을‘사랑하고 존경하는’ 각계각층의 지인 64명의 증언을 담아냈다.
‘그 존재만으로도 행복하고 위로가 되었던’ 그분을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함이다.
제자훈련으로 만나 동고동락했던 평신도와 목회자 들은 물론이고, 교회 갱신과 연합을 위해 교단을 초월하여 뜻을 모았던 동역자들, 그리고 그의 세심한 배려와 관심, 사랑의 은혜를 입은 각계각층의 지인들이 각자 자신이 만나고 경험한 그분의 진솔한 면면을 꺼내 보인다.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지는 법이 없었던 분, “왜 그랬냐고, 그리해선 안 된다”고 호되게 야단치던 분, 그러다 조용히 등에 손을 얹고 토닥여주던 분, 어떤 일에도 적당히 얼버무리지 못하고 입장 표명을 분명히 하던 분, 자신의 대외적 이미지에는 별로 관심이 없던 분, 멀리서 온 나그네에게 당회장실 안에 있는 개인 방을 선뜻 내어주던 분, 성령충만을 위해 안수기도를 부탁하며 무릎 꿇던 분, “참 미안하다. 내 대신 선교사들이 고생한다. 모든 선교사를 존경한다” 하시던 분. ‘열심히 구하면 세상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숱한 설교와 간증의 홍수에 빠진 성도들에게 ‘공의의 하나님’을 되찾아 주신 분….
생전에 워낙 자기과시를 경계하며 자신을 낮추었던 분이었기에, 행여 가신 분의 뜻을 거스를까 조심스러워하는 이도 있다. 그래서 이들의 증언이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옥한흠 목사의 전도사 시절부터 마지막 설교인 2009년 사랑의교회 송구영신예배까지, 그분의 모습을 담은 기록사진 60여 장도 함께 실었다. 또한 14,000여 편의 설교와 50여 종의 저서, 다수의 인터뷰에서 발췌한 어록도 만날 수 있다.
“예수를 만나 행복했고, 그 예수 닮고자 몸부림쳤으며, 함께 ‘예수의 제자’가 되자고 독려하던 그의 아름다운 발자취를 따라가노라면, 우리 사이를 거닐던 ‘작은 예수’를 가슴 깊이 만나게 될 것이다.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히브리서 11장 4절)
* 이 책의 수익금 전액은 故 은보(恩步) 옥한흠 목사 기념사업에 사용됩니다.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코리아 김은홍 편집장 서평>
64인이 증언하는 옥한흠
스스로를 “한없이 흠이 많다” 이르던 이였다. 한국 교회 대부흥 100주년을 기념하는 대회에서는 설교하면서 “이놈이 죄인”이라 통회한 이였다. 수사가 난무하는 시대이니 의심해볼 만도 하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옥한흠의 자기고백의 진정성을.
64인이 옥한흠을 이야기한다. 사랑의교회 개척 시절부터 줄곧 그와 동역한 이들도 있고, 그의 사역의 반경이 넓어지면서 그의 곁에 모여든 다양한 영역의 사람들도 있다. 앞의 사람들이 주로 목회자라면, 뒤의 사람들은 선교사와 전문인 사역자, NGO 활동가, 학자, 언론인, 기업인, 연예인, 정치인 들이다.
각양각색 적지 않은 입들을 모아놓았으니, 어긋맞은 증언도 더러 있을 법하다. 한데, 없다. 64인이 털어놓는 옥한흠은 동일하다.
물론 여기 글을 쓴 64인은 어떤 식으로든 그에게서 은혜를 입은 이들이다. 그러니 그에 대하여 ‘좋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하지만 64인 각자의 증언에는 더 깊이 들여다 볼 대목이 있다. 그들 각자가 그에게서 은혜를 입게 되는 계기와 과정이 특별하다. 옥한흠과 64인 각자의 만남은 ‘주고받음’의 관계가 아니었다. ‘한 사람’에 대한 그의 세심한 관심과 사랑이 만남의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 만남이 변하지 않고 이어진 것 역시 ‘한 사람’에 대한 그의 변함없는 관심과 사랑이었다. (‣옥한흠의 ‘한 사람’ 철학에 대한 이찬수 목사의 증언을 볼 것)
본질의 고수…그러나 지평의 확장
그는 변했다. 그의 변화는 그치지 않았다. 드러나는 변화는, 그의 행동반경이 갈수록 넓어졌다는 것이다. 처음 그는 어쩌면 전형적인 보수 교회의 목회자였다. 그러던 그가 어느덧 목회자의 목회자가 되었고, 사회의 지도자가 되었다. 제자훈련과 <교회갱신을위한목회자협의회>,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와 관련하여 그를 증언하는 이들에게서 그의 변화의 면모와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그의 변화는 행동에만 그친 것이 아니었다. 행동의 변화는 생각의 변화 또는 전환을 전제한다. 그는 사고가 열려있는 이였다. 유연하게 사고했기 때문에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품을 수 있었고 폭넓게 활동할 수 있었다. 그만큼 자신에게 솔직했던 것이고, 그래서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 귀를 열어두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본질’을 고수한 이였다. 아니, ‘그렇지만’이 아니라. 본질을 고수했기 ‘ 때문에’ 그의 행동은 더욱 유연했던 것이다. 그는 ‘보수’의 신학을 그대로 간직하고서(그리고 간직했기 때문에) “평신도를 깨워” 제자로 만들었고, ‘진보’의 신학을 만났고(예. 김원배 목사), ‘진보’의 사회 활동가를 만났고(예. 박원수 변호사), 사람(교인)을 교회의 울타리에 가둬두지 않았고(예. 박성수 회장), 교회 개혁을 부르짖는 이들의 쓴 소리도 경청했다(예. 이만열, 손봉호 교수).
“겉으로 드러나고 아름답게 치장된 모습이 아니라, 흐트러지고 방심한 순간에 엿보인 옥한흠 목사님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고 싶었습니다. 격의 없이 삶을 나누었던 친구들에게서 목사님과 수십 년간 동역하면서 남들이 볼 수 없었던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의 지인들께 그런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부탁해서 받은 원고들을 정리했습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목사님, 힘내세요! 모든 성도들이 기도하고 있어요”라고 말씀드리면 이렇게 대답하셨다.
“하나님이 가장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실 거야. 아직도 내게 남겨진 사명이 있다면 살려 주실 것이고, 사명이 끝났다면 이제 그만 쉬어라 하시면서 데려가시면 그것도 감사하고….” 삶과 죽음에 초연하셨던 목사님을 뵈면서 바울의 고백을 생각했었다. …
눈을 감고 계신 목사님을 사모님과 함께 흔들어 깨우면서 “목사님, 무슨 생각 하고 계세요?”라고 물으면 언제나 목사님은 “내 사랑하는 예수님 보고 싶다”고 대답하셨다. 고통의 순간에도 목사님에게는 예수님밖에 없으셨나 보다.
– 강명옥 전도사 · 사랑의교회
“워낙 자기과시를 경계하며 겸손한 분이셨기에, 생전에 성도들이 공유하지 못했던 목사님의 진면목이 소천하신 후에야 곳곳에서 드러나는 것이 안타깝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이 진정 목사님다운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목사님의 진면목은 여전히 대부분 ‘한 사람 철학’에서 드러났습니다.”
– 권영준 소장 ․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의연구소 소장
그날 아침, 습관처럼 집어든 스마트폰에서 접한 첫 번째 소식입니다. “옥한흠 목사님께서 소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곳저곳에서 추모하는 글들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은퇴하신 지 꽤 되셨으니 어찌 보면 교계의 원로로 잊혀 가는 분인데,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면서 많이 놀라고 감사했습니다. 젊은이들에게 목사님의 자리가 이렇게 큰 것이었다는 사실이 경이롭기까지 했습니다. 한국 교회에도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존경받는 목사님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김병삼 목사 ․ 만나교회
“오늘날 한국 교회가 모두 깨끗하고 신뢰받는 것이 아닌 상황에서 당신의 아름다운 퇴장은 많은 신자와 국민을 감동시켰습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당신은 겸손해했지만 그러나 그것이 당연하지 않은 것은 우리 시대의 절망 때문입니다. 그것은 더운 무더위를 식혀주는 한줄기 소나기와 같은 사건이었습니다.”
– 박원순 변호사 ·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하나님께서 부르셨어도 가슴 시린 건 마찬가지입니다. … 제가 이런 글을 이렇게 빨리 써야 한다는 게 야속하기만 합니다. 목사님께서 주일날 교회 마당에서 인사드리던 제 손을 붙잡고 “건강 조심해라”고 되레 저를 걱정하시던 게 반년도 안 지난 올봄이었기에 말입니다. 목사님이 많이 편찮으시다는 소식에도 “하나님께서 지금 목사님을 부르신다면 손해가 크실 것”이라고 허튼소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목사님이 이곳에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실 일이 아직도 너무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해서였습니다. “
– 백화종 부사장 · 국민일보
“그는 조금이라도 떳떳하지 못한 것은 용납하지 못했습니다. 그와 관련해서 나는 목사님을 괴롭힌 것이 하나 있습니다. 내가 기독교윤리실천운동에서 ‘작은 차 타기 운동’을 한 것입니다. 그 운동으로 나는 나보다 몇 배 더 훌륭한 신앙과 인품을 가진 분들의 양심을 많이 건드렸고 그 때문에 매우 미안했습니다. … 옥한흠 목사님도 나에게 한번은 ”크레도스 정도는 괜찮겠지?“ 한 일이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대답했는지는 기억이 없으나 ”그 정도는 괜찮지요“ 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 후 그는 한동안 크레도스란 자동차를 타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그는 아마 그보다 더 큰 차를 탔을 것이고, 그것이 완벽주의자인 목사님을 많이 괴롭혔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 그렇다고 하여 그런 운동을 중단할 수도 없고 많은 분의 양심을 건드려서 정말 미안했습니다. 이 일에 대해서는 하나님 나라에 가서 그의 이해를 구하겠습니다.”
– 손봉호 장로 ·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신 지 벌써 30년이 훌쩍 지나서였을까, 가끔 아버지가 보고 싶어질 때 목사님을 뵈면 아버지를 만난 느낌이 들었다. 아버지의 목소리, 아버지의 냄새, 아버지의 몸짓을 만난 것 같아 기대고 싶어지고 나의 어리석고 못된 실수들에 대해 꾸중 듣고 싶어지고 ”왜 그랬냐고, 그리해선 안 된다“고 호되게 야단맞고 싶어지는 그분, 그러다 내 등에 손을 얹고 조용히 등 두드려 주는 내 아버지가 느껴졌다.”
– 윤형주 장로 · 온누리교회, 방송인
“한국 교회가 낳은 몇 안 되는 훌륭한 목사님. 그러나 매우 까칠한 목사님. 그는 흔히 훌륭한 목사님이라고 부를 때에 연상되는 ‘인자한 목사님’이나 ‘부드러운 목사님’과는 거리가 있는 분이었다. 그렇다고 소위 성공한 목사님들처럼 콧대가 높은 분도 아니었다. 그는 간결했다. 어떤 일에든 적당히 얼버무리지 못하였고 입장 표명을 분명히 하였다. 자신의 대외 이미지에는 별로 관심이 없으셨다. 한마디로 자신을 포함하여 누구에게든 별로 후한 점수를 주지 못하는 매우 인색한 분이었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적어도 지난 10여 년간 약간은 멀리서 경험한 옥한흠 목사님은 그랬다.”
– 이성구 목사 · 구포제일교회
“우리가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구하면 주시는 하나님이시므로 열심히 구하면 세상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숱한 설교와 간증의 홍수에 빠져 있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신성을 닮아가기 위한 우리의 노력과 절제는 점점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세상의 성공을 가져다 줄 요술방망이 정도로 전락시키기 일보 직전이었다.
‘공의의 하나님’은 뒷전으로 하고 ‘사랑의 하나님’만 찾고 있던 내게 ‘공의의 하나님’을 되찾아 주신 분이 바로 옥한흠 목사님이었다.”
– 이혜훈 국회의원 · 한나라당
“목사님을 생각할 때마다 잊을 수 없는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부산에서 목회하는 제가 어느 날 사랑의교회를 방문하였는데, 목사님께서 너무 반가워하며 맞아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당회장실에 있는 목사님의 개인 방을 내어주시며 쉬라고 해서 얼마 동안 목사님 침대에 누워 쉬었습니다. 사실 그런 개인 공간은 아무에게나 개방하지 않는데, 멀리서 온 나그네를 위해 선뜻 방을 내어주시며 쉬라고 하시는 목사님의 사랑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 (목사님은) 언제나 말과 행실이 반듯하지만, 그러면서도 모든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고 편하게 해주는 분이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목사님의 정직함과 따뜻함 때문에 목사님 주변에는 항상 목사님을 닮아 보려는 사람이 많이 모여들었다고 생각합니다.”
– 정필도 목사 · 수영로교회
“제가 옥한흠 목사님을 처음 만난 것은 오래전에 목사님께서 제게 안수기도를 받으러 오셨을 때입니다. 당시 목사님은 성령충만을 위해서 저에게 안수를 받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목사님을 적극 만류하며 오히려 저에게 안수해 주시기를 원한다고 간청했습니다.
결국, 저와 옥한흠 목사님은 무릎 꿇고 얼싸안으며 서로를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목사님은 그토록 주님을 향한 열망이 가득하시고 겸손하시며 진실하셨습니다.”
– 조용기 목사 ·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
프롤로그 | 김명호 8
감사의 글 | 오정현 10
강명옥 전도사·사랑의교회 14
고명진 목사·수원중앙침례교회 20
고직한 선교사·YOUNG2080 대표 22
권성수 목사·대구동신교회 26
권영준 교수·경희대학교 32
김경원 목사·서현교회 38
김덕룡 특보·대통령실 44
김병삼 목사·만나교회 48
김원배 목사·예원교회 54
김장환 목사·극동방송 이사장 60
김정영 선교사·캄보디아 62
김진경 총장·연변과학기술대학 70
말콤 맥그리거 총재·SIM 국제선교회 74
박광석 선교사·시에라리온 80
박성규 목사·부전교회 84
박성수 회장·이랜드그룹 90
박용규 교수·총신대학교신학대학원 94
박원순 변호사·희망제작소 상임이사 98
박은조 목사·샘물교회 100
박응규 교수·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104
박정근 목사·영안교회 108
박정식 목사·은혜의교회 112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118
박진석 목사·포항기쁨의교회 120
반기성 목사·꿈이있는교회 124
방선기 목사·직장사역연구소 대표 128
방지일 목사·영등포교회 원로 134
배창돈 목사·평택대광교회 136
백성호 기자·중앙일보 140
백화종 부사장·국민일보 146
손봉호 장로·서울대학교 명예교수 152
손인웅 목사·덕수교회 158
송태근 목사·강남교회 162
신재원 목사·새춘천교회 168
오덕교 목사·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전 총장 172
오정호 목사·대전새로남교회 174
요한 루카시 목사·ECMI 회장 176
용첸파 주교·호주 성공회 184
윤형주 장로·온누리교회 188
이동원 목사·지구촌교회 194
이만열 장로·전 국사편찬위원장 200
이선민 기자·조선일보 문화부장 208
이성구 목사·구포제일교회 212
이찬수 목사·분당우리교회 218
이태웅 목사·글로벌리더십연구원 원장 224
이한의 목사·은항교회 230
이혜훈 의원·한나라당 236
이화숙 교수·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240
정제순 선교사·아시아문화연구소 소장 248
정필도 목사·수영로교회 254
조용기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 258
조지 버워 박사·국제OM선교회 설립자 260
조현삼 목사·광염교회 264
주철기 사무총장·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268
지형은 목사·성락성결교회 272
최종상 선교사·전 둘로스 선교선 단장 278
최홍준 목사·호산나교회 286
하용조 목사·온누리교회 290
한명수 목사·창훈대교회 원로 292
한완상 장로·전 부총리 296
한태수 목사·은평성결교회 300
허원구 목사·산성교회 304
홍정길 목사·남서울은혜교회 306
황병구 편집위원장·월간 <복음과상황> 312
에필로그 | 이상화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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