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교회 강단마다 교회마다 너무 현실적으로 아부하는 하나냐 같은 그런 선지자들이 많이 있어요. 교회마다 너무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이 욕구 불만에 아부하고 많은 사람들의 기호에 아부를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세속적으로 해석하고 믿음을 현실적으로 타락시키는 오늘 그와 같은 일들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 많습니다. (1978년 9월 10일 주일 낮 예배 설교 중)
달리 말해 복음과 예언자적 외침이라는 옥한흠 설교의 골격은 이미 그가 사랑의교회를 개척한 1978년에 거의 완벽하게 잡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면에서 그의 사역 초창기인 1978년과 1979년의 설교는 그의 사역 중후반의 설교와 비교할 때 이미 완성된 그의 설교적 골격 위에 그의 거침없는 내면까지 가감없이 드러내는 매우 귀중하고 희귀한 자료입니다.
무엇보다 이 설교집의 가장 큰 특징은 ‘무삭제’입니다. 달리 말해 보통 설교집을 만들 때 필요한 내용적, 구성적 편집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말 그대로 마치 나의 귀에 바로 들리는 듯한 옥한흠 목사의 구어체를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옥한흠 목사는 자신만의 특유의 구어체가 있습니다. 최대한 그의 어투를 살렸습니다. 그것이 문법적으로 조금은 안 맞을수도 있지만 편집부는 문법보다 더 중요한 것은 메시지라고 판단했습니다. 그것이 더 생생하게 옥한흠 목사의 설교 속 의도가 독자에게 전해지는 길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손에 쥔 독자들은 1978년에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이 2016년 현재에도 여전히 살아 숨쉬며 역사한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금요일 제가 우리 교회 나오지 아니하는 어떤 형제와 앉아서 성경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형제입니다. 외국 선박을 타는 분이기 때문에 그들이 정말 하트heart가 바로 열리고 정말 새로워지면 그들이 배안에 들어가서 할 일이 너무 태산입니다. 그래서 제가 시간을 좀 내서 그 형제와 만나는 겁니다. 교회를 거의 10여 년을 다녔다고 하는데도 어쩌면 그렇게 답답할까요? 여러분, 어떻게 그렇게 답답해요?
그 친구와 금요일 만났을 때는 죄 문제가 주제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적으로 죄 문제를 놓고 하나하나 서로 찾아 가면서 인간의 죄에 대한 성격과 인간이 죄에 대해서 얼마나 불가능하며 얼마나 무능력하다는 것을 서로가 이야기하고 있는데 손님 하나가 찾아왔어요. 우리 집이 아닙니다. 그 형제 집입니다. 처고모 되시는 분이라는데 전화 좀 쓰겠다고 찾아들어 왔어요. 한 50대 되는 부인입니다. 전화를 돌리는데 전화가 계속 통화 중이라 잘 안되니까 그냥 가만히 앉아 있더군요. 그래서 우리는 성경 공부를 다시 또 계속 했습니다.
성경 공부하는데 갑자기 그 분이 “금방 뭐라고 그랬습니까?”하고 나옵니다.
“예, 아주머니 우리가 지금 죄 문제를 논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 앞에 다 죄인이라고 그래서 이 죄 문제를 인간이 해결하지 아니하면 우리에게 소망이 없다는 것을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주머니 예수 믿으시나요?”
“예, 저는 예수 믿습니다. 주일학교 때부터 다녔습니다. 지금 시내 모 교회에 다닙니다.”
“예, 그럼 반갑습니다. 아주머니는 어떻게 자신이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좀 심각하게 예수 믿으면서 한번 생각해 본일이 있습니까? 성경은 아주머니를 죄인이라고 그러는데요.”
“아니,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내가 왜 죄인이요? 내가 왜 죄인이요? 말을 그렇게 함부로 하시면 안되어요. 사람 봐 가면서 그런 말을 해야지. 사람을 보고 무조건 죄인이라고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그다음부터 목사 인신공격이 나오는데 그날 저 혼자 가득히 당했습니다.
“요사이 목사들은 뭐 전부 다 교양을 더 받아야 돼. 교육을 좀 더 받아야 돼. 예비 고사 떨어지면 전부 신학교로 간다더니.”
아니, 이거 젊은 목사를 앉혀 놓고는 이거 막 그냥 나오는 게 한이 없습니다. 그냥 막 쏟아져 나와요.
“나는 지옥이니 천당이니 그런 거 관심이 없어요. 나는 세상에서 내가 어떻게 선하게 사느냐 그게 문제입니다.”
그래서, 제가 속으로 들으면서 ‘선하게 산다고 하는 작자가 저 모양이냐? 목사 앞에다 앉혀놓고 저렇게 인신공격을 하고’ 말이죠. 그래, 그 분 다닌다는 교회를 알아보니까 그야말로 자유주의 신학에 물이 들어있는 기가 막힌 교회입니다. 그래서 제가 마지막으로 그랬어요.
“아주머니 본인이 죄인이라고 생각 안하면 아주머니는 예수님하고 관계없는 분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그랬습니다. 죄인일 때 예수님하고 접촉이 되는거지 아주머니가 속으로 그렇게 의인이라고 생각하면 이거는 전혀 예수님하고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를 믿으려면 다시 그 문제를 좀 제대로 재검토하고 믿으시던가 아니면은 포기를 하시던지 둘 중에 한 가지만 하십시오.”
아이구!그렇게 했더니 제2차 공격이 들어옵니다. 그건 제가 차마 입에 안 담겠어요. 그래서 한 30분을 또 그저 뭐 난타를 당했죠. 그리고는 그분이 떠났습니다. 떠날 때 저는 인사도 안 했습니다. 뭐 완전히 낙아웃knock out이 되어 버렸는데 인사가 뭡니까? 어떻게 목사들이 잘못한 게 그렇게 많습니까? 세상 목사들이 그 사람 앞에서만 전부 무슨 잘못을 그렇게들 많이 했는지, 하여튼 뭐 목사들이 지은 죄가 나오는데 이거는 뭐 도무지, 이거는 아예 감당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 저도 목사의 한 사람으로서 고스란히 당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러니 제가 “하나님 앞에 당신이 죄인이라고 그럽니다” 하는 말을 했다가 그만 우리 모든 목사가 그 여자 앞에 완전히 죄인으로 낙찰이 되어버린 겁니다.
여러분 죄에 대해서 왜 그렇게 인간들이 마음이 열리지 않습니까? 죄에 대해서 인간의 마음이 열리지 아니했다는 말은 예수님의 은혜에 대해서 전혀 감각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죄가 많은 곳에 뭐가 많아요? 죄가 많은 곳에 뭐가 많아요? 은혜가 많다.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이 죄 문제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기 스스로 해결책을 찾았습니다.
– 78. 9. 17. 주일 낮 설교 아브라함의 의(롬 4 : 1-9) 중에서
편집자 노트 1.
무삭제 설교 1978.9.10. ~ 1978. 12. 31
편집자 노트 2.
목사님의 설교집을 읽어보면 다양한 주석은 물론 종종 원어 연구를 위해 ‘킷텔신학사전’까지 참조한 흔적이 엿보입니다. 과연 전세계를 통틀어 주로 학자들이 사용하는 킷텔신학사전을 통해 설교 본문을 연구하는 설교가가 몇이나 될까 궁금합니다.
박정근 목사 (영안교회)
옥한흠 목사님의 설교에는 특징이 있다. 본문과 주제를 선택하시는데 있어서 일정한 흐름을 유지하면서 균형있게 설교하셨다. 또한 목사님의 설교는 그 형식에 있어서 다양했다. 주제설교, 강해설교 등과 같은 어떤 틀에 메이지 않았다. 설교의 내용을 드러내는데 있어서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면 과감하게 변화를 시도하셨다.
김만형 목사(친구들교회)
옥 목사님의 설교는 늘 하나님의 발씀에 비추어 보는 부정적인 우리의 현실을 들추어내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화장하지 않은우리의 민낯을 드러내어 마주하게 만든다. 설교의 마무리에 가면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에 우리 자신의 연약한 부분들을 내어맡기며 변화될 것을 소망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예배를 드리고 나가는 사람들마다 힘을 얻고 환한 얼굴로 다시 세상 속에 삶의 예배를 드리러 나가도록 만들었다.
김명호 목사(일산 대림교회)
옥한흠 목사님의 설교를 처음 들은 것은 미국에서 이민 생활하던 20대 후반이었습니다. 이후에 이민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하여 신학교로 들어갔을 때, 종종 옥목사님께서 시무하시던 사랑의교회로 찾아가서 예배를 드리곤 했습니다. 신학생이었던 당시에 저는 단순히 은혜 받고자 하는 열망을 넘어 설교자가 가져야 하는 중심을 배우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찬수 목사(분당우리교회)
최고 순도의 강철이 목소리가 된다면 그럴 것 같은, 명확하고 단단한 발음, 듣는 사람을 각성하게 하는 약간 높은 톤. 천부天賦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그 음성으로 목사님은 예수님을 전하셨다. 도덕이 아니라, 인생이 아니라, 관조觀照가 아니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전하셨다. 설교자 본인이 그 십자가의 도에 압도되어 견딜 수 없는 감격 속에서 전하는 놀라운 소식. 설교의 주제가 무엇이든 듣는 나에게 남는 것은 놀라운 십자가의 소식과 그 소식이 요구하는 결단이었다.
이명헌 교수 (인천대학교 경제학과)
목사님의 설교는 깊은 묵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미 영감있는 베테랑 설교자로 교계에서 인정 받으셨음에도 불구하고, 목사님은 단에 서기 전 마지막 순간까지 말씀과 씨름하셨습니다.
김건우 목사 (좋은씨앗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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