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빛이 보이지 않던 시간, 나는 기도했다. 무엇을 해달라거나 무엇을 하겠다는 기도가 아니었다. ‘하나님, 이런 나를 사용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사용해보세요.’
나는 오랫동안 이렇게 기도했다. 내게는 연약함이 너무 많았다. 불확실한 내일의 두려움 앞에 내 존재는 지나치게 유약했고, 실제로도 가진 것 하나 없었다. 여전히 답을 알지 못하는 긴 시간을 통과하는 동안 나는 역설적으로 일하시는 주님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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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누구신가? 문제가 내게 두려움을 갖게 만들지만 하나님은 어떤 문제보다 크신 분이다. 그분이 얼마나 크신 분인가를 상상할 수 있다면, 내가 가진 두려움은 그보다 크신 분 앞에서 무력해진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이 문제보다 크신 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무엇을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p.28
하나님은 내게 사진을 찍으며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 사진을 찍든,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기도하며 하라고 하셨다. 이는 비단 내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에게도 말해주었다.
“사진을 찍으며 기도하고, 찍은 사진을 보며 기도해야 합니다.”
티베트에서 고작 한 사람에게 말해줄 뿐이지만, 그 한 사람을 통해 만나게 될 더 큰 세상을 상상하며 기도했다. 돌아온 후 한참이 지났을 때 한국에서 선교사님을 다시 만났다. 티베트 승려였던 그가 내게 꼭 전해달라는 말이 있다고 했다.
“내가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가르쳐준 대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는 돌을 맞으면서도 마을에 들어가 기도하며 사진을 찍고, 아픈 이들을 찾아가 사진 찍으며 병이 낫기를 기도하고, 찍은 사진을 책상에 붙여두고는 ‘기도하고’ 있다고 했다. 하나님은 지극히 작은 한 사람을 통해 그분의 나라를 이루어가신다고 나는 믿는다. p.71,72
하나님은 내가 의도한 대로 움직여야 하는 분이 아니시다. 나는 그분의 뜻과 계획을 알지 못하기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p.90
언젠가 한 후배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를 두고 고민하느라 며칠 동안 힘들었다고 말했다. 나는 그런 고민은 모른 채 그 옆을 지나가며 말했다.
“그냥 웃어도 충분해.”
이 말 때문에 후배는 자신의 존재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고 했다.
‘대단한 일을 하거나 어떤 일을 한다고 빛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웃는 것만으로도 내 존재는 충분하구나.’
물론 현실적인 문제를 풀기에는 웃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하지만 주님이 만드시고 “보기 좋았더라”라고 환호하신 내 존재 가치의 회복이 나를 용서하는 시작점이다.
예수님은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이 나를 그렇게 용서하셨기에 나도 아버지의 마음을 따라서 마땅히 용서해야 한다.
그런데 혹시 용서할 대상에서 나를 제외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나를 용서하고 있는가? 내게 또 한 번의 기회를 주고 있는가? 주님이 그렇게 하셨기에 스스로도 용서해야만 한다. 주님의 은혜의 빛이 비치면, 오늘은 어제와 전혀 다른 새로운 아침이 된다. p.134,135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이런 보상에 대한 질문은 주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일을 실제로 알지 못하여 떠오르는 생각들이다. 사단은 우리와 정면승부하려 들지 않는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돌아서지 않으면 당장 죽어야 할 거야’라고 대번 우리를 위협하지는 않는다.
다만 하와에게 접근했던 것처럼 역사 속에서 그가 계속 사용했던 방법대로 우리 마음이 주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든다. 그분의 마음을 오해하게 만들고, 내 마음이 높아지게 한다. p.180
가진 재능이 많을수록 더 현명하고 유리한 판단을 하기 위해 기다리고 기다리느라 정작 작은 일을 간과할 때가 있다. 하지만 내 경험을 돌아보면 대부분의 기회들은 작은 일에 충성했을 때 또 다른 일로 연결되거나, 그 일을 통해 만난 사람과 생각지도 못했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협동조합의 일을 다 마친 후에 담당자가 새로운 프로젝트를 함께하자며 제안한 것처럼 말이다. p.189
오늘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궁금할 때, 이 일을 하는 이유가 궁금할 때,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또는 너무 많은 일을 할 때, 기쁠 때, 아플 때, 절망하여 눈물을 쏟을 때 주님께 묻는다.
내게 필요한 답은 논리적으로 그럴듯한 답이나 보다 정돈되고 합리적인 답이 아니다. 기도를 통해 주님을 만나 그분의 마음이 부어지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정답이나 방향을 알게 된다. 우리를 지으신 분이 우리를 살게 하시기 때문이다. p.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