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는 이스라엘의 전 역사를 통해 가장 놀라운 현상과 마주하게 된다. 여호와 신앙이 급격하게 훼손되고 거의 붕괴 직전에 이르렀을 무렵, 놀랍게도 그것은 예언자들의 메시지를 통해 마치 화산의 폭발과도 같은 힘을 갖고서 다시 솟아올랐다.
(p.16)
아모스가 상류층 사람들을 향해 문제를 제기한 이유는 그들의 마음과 정신 상태 때문이었다. 분명히 그는 어느 특정한 계명의 위반을 문제시했던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화려하게 장식한 침대에 눕거나 몸에 값비싼 기름을 바르는 것을 금하는 계명은 물론이고 사람들에게 “요셉의 환난”에 대해 슬퍼하라고 명령하는 계명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모스가 문제시했던 것은 어떤 일반적인 태도, 즉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방식과 그들이 함께 그리고 개별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당하는 고통에 동참하는 것 등이었다.
(p.184)
예언자들의 신학의 가장 흥미로운 측면들 중 하나는 그들이 세상의 크고 작은 모든 나라들을 포괄하는 정치적 소용돌이를 여호와의 행위와 관계시켰다는 데 있다. 우리는 위에서 언급했던 아모스서의 몇 구절들(암4:6ff.)만 흘끗 살피더라도 예언자들이 역사를 얼마나 완벽하게 이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보았는지 알 수 있다.
그 역사는 본질적으로 여호와에 의해 초래된 역사였다. 왜냐하면 가뭄, 기근, 그리고 역병 같은 재앙은 비록 다른 의미에서이기는 하나 여호와의 행위였기 때문이다.
(p.259)
구속사에 관한 에스겔의 이해는 그런 것이었다. 즉 여호와께서는 계속해서 성공하지 못하는 행위를 하시고,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일에 실패한다. 그 모든 이야기를 지속시키는 유일한 요소는 계속되는 하나님의 “지조 없음 inconsistency”, 그리고 열방 가운데서 자기의 이름을 높이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이다.
(p.3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