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현존하는 모든 종교는 고유의 상징을 갖고 있다. 기독교를 대표하는 상징은 단연코 십자가다.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건을 기념하는 상징은 기독교의 고유성, 특이성, 절대성을 함축하는 대표적 상징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통해 실현된 세계 구원의 의미를 함축할 뿐 아니라 십자가의 은택을 입은 사람들 역시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희생과 섬김의 삶을 추구할 것을 요구한다. 따라서 기독교의 십자가는 교리(구원)와 윤리(삶)가 만나는 교차점이다.
영어권에서 전설 같은 설교자인 플레밍 러틀리지의 책이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그것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에 담긴 모든 신학적 이슈를 현대문화와의 연관성 속에서 다루는 책이 말이다. 성공회 사제인 저자는 1,000쪽에 달하는 방대한 책을 쓰기 위해 무려 20년의 세월을 바쳤다. 가히 필생의 역작이라 할 만하다. 본서는 분량과 내용 모든 면에서 아마도 존 스토트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더불어 20-21세기에 탄생한 십자가에 관한 가장 뛰어난 고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플레밍 러틀리지는 먼저 오늘날 현대 사회와 교회 안에 만연한 반 십자가 현상을 예리하게 파헤친다. 그것은 십자가가 종교적 부적이나 장식으로 오용되는 현실과 더불어, 초월자로부터 오는 은총 대신에 자기 노력과 행위로 절대적 경지에 도달하려는 현대의 영지주의적 현상들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폭력과 학대의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유형의 시도들도 포함된다. 저자는 이런 왜곡을 바로잡고, 오해를 교정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그는 다양한 십자가 해석 중에서 특히 “승리자 그리스도 모델”에 강조점을 두면서도 여러 십자가 해석들이 경쟁하거나 서로를 배척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밝히면서, 전통적인 “형벌 대속론”과 “재연(총괄갱신론)”을 포괄하는 심층적인 해석을 시도한다. 또한 출애굽 모티프에 담긴 구속과 해방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실현된 새창조의 은유 안에 담긴 풍성한 구원 교리를 서로 연결시킨다. 이 과정에서 성서신학, 조직신학, 역사신학 제 분야에 걸친 저자의 식견과 학문적 통찰력이 예리하게 빛을 발한다. 특히 형벌 대속론과 승리자 그리스도론을 설명하기 위한 방편으로 “지옥 강하”에 130쪽 이상을 할애하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더 나아가 본서는 고전적인 의미에서 십자가 신학을 설명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이를 현대 사회 및 문화 현상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데까지 논의를 밀고 나감으로써, 결국 십자가 신학이 시대를 초월하는 힘을 갖고 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본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장에서 저자는 십자가가 기독교 복음의 가장 중요한 특징임을 논증하며 교회는 십자가형의 불쾌감(skandalon)을 선포하고 살아내는 고통스런 어려움을 버리고 편리한 성육신의 매력을 넘겨받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장에서 저자는 예수의 죽음뿐만 아니라 죽음의 방식이 중요한데 극심한 고통을 받고 체면이 손상되며 사람들로부터 거절되고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은, 가장 추악한 십자가 위의 죽음을 통해 모든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상상할 수 없는 사랑이 드러난다고 설명한다.
3장에서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진실과 화해 위원회 등의 예를 통해 잘못된 것은 반드시 바로잡혀야 하며 하나님의 정의/공의는 상황과 관계를 바로잡는 하나님의 행동을 의미한다고 설명하면서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공의가 역사하고 있음을 설명한다.
3장 정의 문제와 4장 죄의 중대성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가교 장에서 저자는 하나님과 그분의 피조물 간의 깨어진 관계가 “변제되지 않고 지나갈” 수 없다는 안셀무스의 주장을 설명한다.
4장에서 저자는 죄란 한편으로 책임 있는 죄책감으로서 이에 대해 반드시 배상이 이뤄져야 하며, 따라서 십자가형은 죄에 대한 희생제물로 이해된다는 것과 다른 한편으로 무대에서 몰아내야 할 외부의 힘으로서 모든 인간은 이 힘에 사로잡혀 있고 이것보다 더 큰 힘으로 말미암아 해방되어야 하며, 따라서 십자가형은 죄와 사망의 권세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로 이해됨을 설명하고 우리에게 희생제물 개념과 승리자 그리스도 개념 둘 다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5장에서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출애굽 사건을 그것으로부터 메시아이신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이해하는 구약의 특히 탁월한 사건으로 이해했으며, 그 이야기는 가장 초기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랬듯이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동일한 힘을 가질 수 있으며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주장한다. 출애굽 내러티브가 계속해서 생명의 약속을 내밀어서 수백 년 동안 전 세계에서 압제받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서 행동하고 있다는 약속을 붙들게 했듯이 말이다.
6장에서는 근대 주류 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희생제사로 이해하는 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으나 피의 제사라는 모티프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우리의 구원 이야기의 중심이며, 이 주제 없이는 기독교의 선포가 그 힘을 상당히 상실하고 신학적으로 및 윤리적으로 영양실조에 걸리게 되므로 우리에게 피의 이미지가 계속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리스도의 피라는 모티프는 일차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잃어버릴 사람들을 구원하고 보호하고 지탱하기 위한 하나님의 헌신의 깊이를 의미한다.
7장에서 저자는 우리의 구속은 그리스도의 죽음이라는 비용을 들인 구속이며 그것은 죄와 사망이라는 예기치 않았던 변수가 등장하여 새로운 전략이 필요해졌기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아 안에서의 완전한 사랑이라는 본성에 토대를 두고 있음을 설명한다.
8장에서는 세상이 모든 것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개인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우주적인 결산이 요구되는 바 성경에는 심판대에서의 정죄 이미지가 만연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든 것을 바로잡는 능력(공의)으로써 자신의 창조세계에서 올바른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9장은 묵시적 관점에서의 승리자 그리스도를 설명하며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죄와 사망의 권세에 얽매인 우리를 해방시켜 주었다고 말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부터의 구출, 악한 우주적인 영향의 사악한 지배로부터의 구출, 그 요구들로부터 피할 길이 없어 보이는 율법의 짐으로부터 구출, 깨뜨릴 수 없는 악한 습관의 사슬로부터의 구출, 마지막 원수인 사망의 무서운 힘으로부터의 구출-이 모든 것이 구속자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이루어졌다.
지옥 강하를 다루는 10장에서 저자는 지옥에 대한 성경의 배경, 포로기 이후 지옥 개념의 배후에 관한 우주론, 지옥에 관한 성경 텍스트를 제시한 후 그리스도의 지옥 강하의 의미를 고찰한다. 지옥은 외부로부터 기원하는 적극적인 구출이 없다면 거기서 탈출할 수 없는 감옥인데 그리스도는 이 감옥을 지키는 “강한 자”를 결박하여 우리를 거기서 구출했으며 이를 위해 하나님이 없는 영역으로 들어가 멸절의 극한의 한계에 이르기까지 우리와 연대를 맺었다.
11장에서 저자는 대속에 대한 해석사를 개관하고 대속 교리에 반대하는 논거들에 답한 후 예수의 십자가상의 대속적 죽음은 죄와 그 죄의 무기인 율법의 저주로부터 모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삼위 하나님이 한뜻으로, 하나의 목적을 위해 함께 행동한 것으로서 인간의 대표자, 우리의 대속자인 예수는 인간의 의지가 어떻게 하나님의 의지에 맞춰질 수 있는지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성육신한 위격 안에서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게 한다고 주장한다.
12장에서는 로마서에서 바울이 두 아담에 관해 설명하는 대목을 활용하여 그리스도가 인간의 삶을 다시 살고 잘못된 결정 대신 바른 결정을 할 뿐만 아니라 우리를 포로로 삼은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겼다고 주장한다. 예수가 인간의 이야기를 다시 썼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우리의 최악의 자아에 매인 죄수가 아니고, 우리를 파괴하려고 하는 악한 힘들의 죄수도 아니다. 우리의 삶의 어떤 순간에도 하나님은 그것을 바로잡는 또 다른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13장에서 저자는 하나님의 의가 없이는 어느 것도 이 세상의 악에 대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예수가 3일째에 부활한 데서 우리가 믿음으로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하나님의 힘을 본다고 설명한다. 아울러 저자는 이 책의 많은 부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동체적·집단적·우주적인 중요성에 초점을 맞췄고 복음 메시지가 묵시적이고 보편적인 성격을 갖고 있지만 그것은 개별 신자의 신앙과 확신에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주장한다.
십자가의 도는 바울 사도가 말했듯이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이 책은 오늘날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고 십자가의 능력으로 고통과 죄로 얼룩진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승리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본서는 단언컨대 현대의 고전으로 불리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다.
십자가형은 기독교와 “종교”를 본질적으로 구분한다. 베커의 저술에서 정의된 종교는 조직적인 신앙 체계이거나 인간의 필요와 희망에서 투영된 견해들과 관행들의 느슨한 모음이다. 어떤 인간도 개별적으로든 집단적으로든 그들의 소망, 희망, 염원, 필요를 십자가에 못박힌 인간에게 투영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십자가는 “비종교적이다.” “그리스도인들”(The Chrstians, 1981)이라는 PBS 텔레비전 시리즈에서, 매우 공평한 해설자가 이렇게 말했다. “기독교는 자기들의 하나님의 고난과 불명예에 초점을 맞추는 유일한 주요 종교다. 십자가형이 우리에게 너무 친숙하고 감동적이어서 그것이 하나님의 이미지로서 얼마나 특이한 것인지 깨닫기가 어렵다”(강조는 덧붙인 것임). 십자가를 “감동적”이라고 묘사하는 것은 주목할 만하지만, 그것이 요점은 아니다. 우리는 십자가형이 믿음의 대상으로서 심히 부적절하다는 해설자(또는 대본 작가)의 인식에 초점을 맞춘다. 그는 처형 방법으로서 십자가형의 혐오스럽고 비종교적인 성격뿐만 아니라 그것이 사람들의 종교적 상상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것을 많은 그리스도인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_2장. 십자가의 비종교성
반복하자면 이 장에서 살펴본 모든 내용의 배후에는 우리의 세상에서는 무언가가 심각하게 잘못되었고 그것이 반드시 바로잡혀야 한다는 기본 가정이 깔려 있다. 만약 불의를 보았는데도 우리의 피가 어느 지점에서 끓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직 하나님의 깊이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무엇이 우리를 화나게 하는가에 달려 있다. 자기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만을 위해 분개하는 것은 인간적이긴 하지만 그리스도께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해 분개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다.
_3장. 정의 문제
그리고 여기서 안셀무스는 보소의 입을 통해 그리스도의 업적에 관한 거의 최고의 요약을 제공한다. “그는 우리를 우리의 죄, 자신의 진노, 지옥, 그가 멸하기 위해서 온 마귀의 권세에서 해방시켰다. 이는 우리가
그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우리에게 천국을 사 주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행함으로써 그는 우리를 향한 자기의 위대한 사랑을 보여주었다”
안셀무스의 이 짧은 요약은 여러 면에서 본서가 의도하는 바와 일치한다. 그의 요약은 놀라울 정도로 포괄적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학문적 공식이 아닌 내러티브 형태와 케리그마의 형태를 갖고 있다. 여기서 명시적으로든 암묵적으로든 간에 핵심이 되는 많은 성경적·교리적 주제들이 적시되어 있다.
_가교 장. 우리 시대를 위한 안셀무스 재고찰
죄가 예수의 이야기에 나오는 바리새인처럼 자신을 타인보다 호의적으로 비교함으로써 정의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
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눅 18:11). 그 바리새인은 죄가 한 사람을 다른 사람과 비교함으로써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개인적으로 사악한 세상에 얼마나 깊숙이 휘말려 있는지를 파악함으로써 정의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죄는 인간의 보편적인 상태지만, 만약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하나님으로 가득 차고, 하나님께 푹 빠져 있지 않다면 우리는 이것을 충분히 명확하게 인식할 수 없다. 죄는 인류학적 개념이 아니라 신학적 개념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신을 알려줄 때, 우리는 우리가 단지 “‘죄악된 세상’의 고립된 희생자가 아니라 그 세상에 정착한 거주자이자 그 세상의 거짓 신들을 섬기는 가신으로서 그 죄악된 세상의 방식과 수단에 적극적으로 길들어 있음”을 깨닫는다.
_4장. 죄의 중대성
이 이야기는 가장 초기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랬듯이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동일한 힘을 가질 수 있으며, 마땅히 그래야 한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출애굽 사건을 그것으로부터 메시아이신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이해하는 구약의 특히 탁월한 사건으로 이해했다. 그들의 예배에서는 주의 만찬이 새로운 유월절이고 부활이 새로운 출애굽이라고 설명될 필요가 없었다. 그 예배 공동체는 설명을 듣지 않고도 예수가 죽음을 통과하여 생명으로 나아간 것이 이스라엘 백성이 속박에서 자유로 나아간 것의 종말론적 의의를 밝혀준다는 것을 이미 이해했다.
_5장. 유월절과 출애굽
하나님은 자신을 대항하여 나뉘지 않는다. 우리는 예수를 볼 때, 아버지를 본다(요 14:7). 아버지가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보고 갑자기 마음을 바꾼 것이 아니다. 속죄의 목적은 반역한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태
도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는 언제나 동일했다. 하나님의 자비는 죄에 대한 심판보다 앞서며, 그것과 동행하고, 그것을 뒤따른다. 하나님이 우리를 대적한 때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진노할 때조차 우리를 위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진노 없이 우리를 위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세상을 완전하게 만드는 데 적대적인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것이 그의 뜻이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역설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승리하는 사랑을 보여주는 동시에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보여준다.
_6장. 피의 제사
우리는 결코 “속량에 관한 말씀”에서 예수 자신이 우리의 구속을 위한 대가라고 우리에게 전달된 내용의 의미를 상실하지 않아야 한다. 교회는 예수의 죽음이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제공한 것이라는 사도적 진
리를 들을 필요가 있다. 이것이 대속과 구속에서 기본적인 사상이다. 단지 어떤 구출이 아니라 비용을 들인 구출이다. 좀 더 일반적인 의미와 좀 더 문자적인 의미의 균형을 유지하는 한 우리는 두 의미를 동시에 유지할 수 있다. 구속은 매우 광범위한 의미에서 “풀어줌” 또는 “자유롭게 함”을 의미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만일 매우 특별한 십자가형의 참상을 감안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대가 개념을 유지해야 한다.
_7장. 대속과 구속
성경의 독자가 “의롭게 하다”로 번역된 동사와 “칭의”, “공의”, “정의”로 번역된 명사들이 같은 단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 독자의 이해에 큰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에른스트 케제만은 21세기에도 계속해서 결실을 맺고 있는, 전통적으로 “칭의”로 번역되는 용어인 디카이오시스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장을 열었다. 획기적 논문인 “바울 서신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로움”(The Righteousness of God in Paul)에서 케제만은 하나님의 디카이오쉬네가 속성이 아니라 힘, 즉 “구원을 이루는 힘”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의로움”은 도덕적인 완벽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본받거나 모방하려고 노력해야 할, 멀리 있는 하나님의 무서운 성품이 아니다. 거기에 좋은 소식은 없다. 대신에 하나님의 의로움(공의)은 이 세상의 잘못을 바로잡는 하나님의 능력 있는 활동이다. 우리가 구약성경이나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이 의롭다는 내용을 읽을 때, 우리는 하나님이 그의 창조세계에서 올바른 일을 하시고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은 악을 정복하고, 압제 받는 사람들을 구출하며, 가난한 자들을 먼지에서 일으키고, 자신을 옹호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이 무시당하고 있는 희생자들을 신원한다.
_8장 최후의 심판
신약성경에서 승리자 그리스도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주제다. 그 주제는 성경과 전통에 깊이 뿌리박혀 있으며, 악에게 정해진 기한을 부여하므로 오늘날 새로운 힘과 적실성을 지닌다. 이 주제는 마귀의 권세들의 극악무도한 지능, 멸망시키는 힘, 파괴적인 분노를 강조한다. 현대의 세상에서 우리는 이런 종류의 악을 너무도 많이 알고 있다. 21세기가 계속해서 드러내는 뉴스를 따라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우리의 세계에는 참으로 참을 수 없는 사악함이 거주하고 있으며 우리는 이 사악함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알 것이다. 그 느낌은 “느슨하고 세상의 심장을 두드리는” 어떤 것이다. 이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앞에 놓인 두 이미지-하나는 완전한 공포와 명백한 패배의 장면인 십자가형이고, 다른 하나는 면류관을 썼으며 승리했고 부활한, 장차 임할(ho erchomenos) 왕이신 그리스도(Christus Rex)다-를 가지고 살며 증언한다. 이것들은 나란히 놓여 있는 별개의 이미지들이 아니다. 이것들은 서로 동화된다.
_9장. 묵시적 전쟁: 승리자 그리스도
토마스는 그리스도가 어떻게 그의 지옥 강하에서 “주관적인 무게”로서 죄에 대한 속죄와 “객관적인 해악”으로서 마귀의 정복자가 되는 길 모두를 발견했는지를 보여준다. 토마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리스도가
실제로 죄인들의 운명에 완전히 참여하기를 “원했고”(voluit), 따라서 죽었을 뿐만 아니라 정죄와 처벌의 장소로 내려가기도 했다는 것을 강조한다(여기서도 두 모티프가 전면에 부각된다). 토마스는 그리스도의 지옥 강하가 자발적이었다는 것도 강조한다. 그리스도는 “자유인으로서” 지하 세계에 간 반면에 죄인들은 “부득이하게, 그리고 마치 폭력적으로 끌려가듯이” 갔다. 폭력적 불가피성(violent necessity)이라는 이 언급은 성경이 하나님의 진노를 선포하는 것과 잘 조화되며, 이 문제와 관련해서 예수가 여러 차례 죄인들이 바깥 어두운 데 던져져 거기서 울며 이를 갈 것이라고 한 말들과도 일치한다. 우리는 성경에 등장하는 이 구절들로부터 움츠러들지 않아야 한다. 죄인들을 내쫓는 데서 암시된 폭력은 구원 이야기에서 하나님의 심판이 차지하는 위치를 강조한다. 인간들을 정죄 상태로 몰아넣는 하나님은 바로 그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 폭력적인 사망에 자신을 내어주는 바로 그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롬 11:32).
_10장 지옥 강하
우리는 이 장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 대속 주제는 유기적인 전체의 일부로서, 다양한 맥락에서 등장하는 성경의 내러티브에서 적절하게 나온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의 의미를 선포하기 위해 그리스어 휘페르(hyper, 위하여)와 페리(peri, ~ 때문에)가 사용될 때마다 하나의 주제로 등장한다.
– 대속 주제는 전반적인 성경의 내러티브와 분리되어 이해되거나 다른 모티프들과 경쟁하는 방식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주제를 뒷받침하고 주제의 의미를 밝혀주며 그것들에 의해 의미가 밝혀지는, 근저의 모티프로 이해되는 것이 가장 좋다.
– 대속 주제는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한 전체 생애, 처음부터 십자가로 가는 길로 나아간 생애의 맥락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 우리의 문화가 아무리 이 불쾌한 진리를 피하길 원할지라도 대속 주제는 다른 어떤 모티프보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편재하는 성경의 가르침과 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 대속 주제는 복음주의 진영에서만 아니라 “가톨릭적” 성공회에서도(예로 사용되었다) 강해 설교에서 “피”와 더불어 의식되지 않은 채로 존재했다.
– 대속 주제는 본서를 마무리하는 장의 주제인 경건치 않은 자의 칭의 선포에 특히 적합하다.
_11장. 대속
오늘날 우리는 우리 자신의 행위-특히 우리 자신의 종교적 행위-에 대해서는 많이 듣고 있지만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해서는 충분히 듣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복음의 메시지는 마치 우리가 하도급자나 심지어
자유로운 행위자인 것처럼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는 것에 관한 메시지가 아니다. 신약성경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우리를 위한 그리고 우리를 대신한 그의 자기희생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일하심에 참여할 수 있다. 우리의 신앙의 중심에 놓여 있는 것은 우리의 영적 여정이 아니다. 그것은 바르트가 누가복음 15:13에 등장하는 예수의 비유 속의 표현에 대해 주장하듯이 “하나님의 아들이 먼 나라로 간 여행”이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성육신한 분의 여정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부지런해지라고 요구될 때마다 이 이야기가 들려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 이상 복음을 듣고 있는 것이 아니다.
_12장. 재연
하나님의 의(dikaiosyne theou)가 없이는 어느 것도 이 세상의 악에 대해 아무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3일째에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한 데서 믿음으로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하나님의 힘을 본다. 하나님이 죽은 자를 일으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게 하는 분이 아니라면 최악의 악(대규모 살해, 고문, 연쇄 살인 등)이나 작은 악(결혼을 실패로 돌아가게 하고, 우정이 끝장나게 하고, 기업이 망하게 하고, 고요한 불행을 수백만 명의 공통적인 운명이 되게 하는, 우리 인간에 대한 일상적인 공격)에 대한 용서를 진지하게 얘기할 수 없다. “어느 것도 죄를 속죄하지 못합니다. 당신이 구원하셔야 합니다. 당신 혼자만이.” 이것이 골고다에서 일어난 일이다. 풍부하고, 복잡하고, 깊이 있는 성경의 모든 이미지들은 한결같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아들의 “보혈”이 완벽한 속죄제다. 포로를 해방시키기 위한 보석금이 지불된다. 지옥의 문들이 습격받는다. 홍해가 건너지고 원수가 익사한다. 하나님의 심판이 죄에 대해 집행되었다. 아담의 불순종이 그리스도의 순종에서 재연된다. 새 피조물이 존재하게 된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그의 생명 안으로 통합된다. “이 악한 세대”의 왕국들은 사라지고 약속된 하나님의 왕국이 승리주의자의 십자군에서가 아니라 교회의 십자가에 대한 증언에서 나타난다. 성육신한 아들이 “아담의” (곧 우리의) 육신 안으로부터 우리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를 대신해서 사탄과 싸워 그를 이겼다. 오직 이 힘, 하나님의 아들에 의해 얻어진 초월적인 이 승리만이 세상(kosmos)을 그것의 정당한 창조주께 방향을 재정립시킬 수 있다. 하나님의 의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이것을 이루었고, 성령의 힘으로 말미암아 지금 이루고 있으며, 그리스도 예수의 날에 완성시킬 것이다.
_결론 구속받을 운명임: 경건치 않은 자를 바르게 함
1부 십자가형
1장 십자가의 수위성
2장 십자가의 비종교성
3장 정의 문제
가교 장 우리 시대를 위한 안셀무스 재고찰
4장 죄의 중대성
2부 성경의 모티프
서론 십자가형의 모티프
5장 유월절과 출애굽
6장 피의 제사
7장 대속과 구속
8장 최후의 심판
9장 묵시적 전쟁: 승리자 그리스도
10장 지옥 강하
11장 대속
12장 재연
결론 구속받을 운명임: 경건치 않은 자를 바르게 함
참고 문헌
성구 및 기타 고대 문헌 색인
본서는 저자가 평생 씨름한 결실을 정리한 역작으로서 퍼스펙티브를 넓힘과 동시에 더 넓히라고 도전한다.
– 유해무. 고려신학대학원 교의학 교수 (은퇴)
저자는 일천 페이지에 달하는 엄청난 분량에 포함된 십자가와 관련된 모든 이론과 주장을 섭렵함으로써 예수가 유일한 구원자임을 밝히는 근거를 제공한다.
– 윤철원.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신약학 교수
이 책은 모든 기독교인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깊이 이해하고 그 십자가를 살아가는 데 소중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 차재승. 뉴브런즈윅 신학교 조직신학 교수
이 책은 십자가 사건과 관련된 전통적 주제는 물론 이와 연관된 주요 개념들, 가령 속죄, 구속, 심판, 용서, 화해, 피의 제사, 출애굽과 유월절 어린 양, 묵시적 전쟁, 지옥 강하, 대속 등 다채로운 인접 개념들을 폭넓게 다룬다. 서늘한 계몽과 각성의 일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차정식. 한일장신대학교 신약학 교수, 한국신약학회 회장
예수의 십자가 사건과 의미를 이렇게 종합적이면서도 치밀하게 연구하고 성찰한 “한 권의 책”이 또 있을까 싶다. 저자 러틀리지의 말대로 20년을 넘어 한평생 공들였다는 고백이 자랑이나 과장이 아님을 단번에 느낄 수 있다.
– 허주.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신약학 교수, 한국복음주의신약학회 회장
놀랍고 매혹적인 연구다.
– 「프레스비테리안 아웃룩」(Presbyterian Outlook)
놀랍고 복잡하지만 명확한 이 책에서 플레밍 러틀리지는 가려고 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 보이는 길을 능숙하게 간다.
– 스캇 맥나이트. 『예수 신경』 저자
이 책은 십자가 중심 설교와 십자가의 제자도가 진정으로 회복되기를 기도하는 우리 모두에게 귀한 선물이다!
– 리차드 마우. 풀러 신학교
이 책은 교회의 최고의 설교자 중 한 사람의 용기, 지성, 충실성에 대한 감동적인 증언이다.
– 캐서린 손데레거. 버지니아 신학교
폭넓은 독서, 예리한 관찰, 명확한 사고와 충실한 설교에 대한 열정적인 관심을 보여주는 이 책은 읽기 벅차지만 그런 노력을 기울일 가치가 있다.
– 래리 W. 허타도. 에딘버러 대학교
러틀리지는 목사들이 회중에게 십자가를 설교하도록 자극하는 정보와 관찰로 가득 찬, 바울 서신 같은 책을 우리에게 주었다.
– 매릴린 매코드 애덤스. 럿거스 대학교
이 책을 마음에 두는 설교자들은 교회를 소생시킬 수 있을 것이다.
– 조지 헌싱어. 프린스턴 신학교
기독교 신앙의 중심적인 신비에 대한 깊은 탐구이자 많은 것을 환기시키는 탐험이다.
– 존 D. 윗블리에트. 칼뱅 기독교 신앙 연구소
나는 우리 시대에 이 책보다 더 필요한 책을 생각할 수 없다.
– 마크 갈리.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편집인
이 책은 유창하고 은혜롭게 교훈을 전달한다. 나는 이 책을 거듭 읽을 것이다.
– 니콜라스. 월터스토프 예일 대학교
그녀의 저술에서 우리는 고결한 드라마와 눈길을 끄는 교리가 합류하는 것을 만나는데, 그것들은 협력해서 설교자를 강하게 해주고 회중을 건강하게 만들어줄 고단백 식사를 제공한다.
– J. 루이스 마틴. 유니온 신학교
이 책은 또한 모든 독자로 하여금 구원의 신비에 관해 주의 깊게 성찰하도록 초대한다.
– 스티븐 웨스트홈. 맥매스터 대학교
생각을 자극하고 종종 감동적인 이 책은 하나의 주제에 관해 더 이상 새로운 것이 나올 수 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참으로 새로운 접근법을 제공한다.
– 데이비드 B. 하트. 『무한한 것의 아름다움』과 『무신론자들의 망상』 저자
모든 사제, 설교자, 교수들이여! 당신이 교회 및 역사에서 교회의 사명에 관해 관심이 있거든 이 책을 읽으라!
– 더글라스 하링크. 캐나다 더 킹스 대학교
뛰어난 주해, 신학, 목회적 민감성을 특징으로 하는 이 책은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과 생각하는 불신자들을 위한 책이다.
– 조지프 망기나. 토론토 대학교
이 책은 위대한 책이다.
– 아르네 라스무손. 스웨덴 예테보리 대학교
Weight | 5 lb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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