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우리나라의 자주적 근대화의 토대를 다지는 한편 근대적 시민 의식의 각성에도 큰 역할을 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는 선교사들과 함께 많은 우리 선각자와 민초(民草)들의 역할이 컸다. 저자는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기독교 유적들을 통해 구한말 기독교 전래 이후 일제강점기와 6·25 등 역사의 격변기를 거쳐오면서 우리 민족의 참 살 길을 위해 헌신한 이들의 삶과 행적을 돌아본다.
구한말 조선에 복음을 전하러 온 의사, 교육자 등 선교사들과, 이후 복음을 통해 크리스천이 되고 민족의 독립과 자주적 근대화의 디딤돌이 되기 위해 헌신한 한국인들이 있다. 그들의 삶과 행적은 문헌과 자료 등으로 알려진 경우도 있지만, 그리 알려지지 않았거나 세인들의 관심 밖에서 거의 잊혀져가는 경우도 많다.
저자는 2017년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 각지에 있는 기독교 관련 유적들을 틈틈이 답사하고, 자료 조사 및 관련자 인터뷰 등을 통해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그들의 희생과 헌신의 자취를 꼼꼼하게 짚으며 글과 사진으로 담아냈다. 그 결과물은 <국민일보>에 격주 연재 중인 “한국기독역사여행” 시리즈로 이어지는데, 이 책에서는 그 가운데 31꼭지를 추려서 지역별로 나눈 다음 대략의 동선에 따라 순서를 정하고, 글과 사진을 보완했다.
해당 인물 생전의 일상과 활동의 자취가 스민 건물이나, 행적을 기념하기 위해 후대에 지은 건물, 조형물과 유물 등을 통해 저자는 그들의 삶의 중심축이 되었던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 온갖 아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으려 했던지, 그들의 삶이 오늘날 우리에게 말해주고 일깨워주는 것이 무엇인지 짚어보게 한다.
유적들의 옛 모습과 달라진 모습 가운데 한 세기가 넘는 시간의 간극에 아로새겨진 자취들은 우리 현대사의 단면을 생생하게 말해주며, 한국 교회의 민낯을 아울러 증언한다.
최병헌은 말년 교권을 쥔 탁사(託事, 교회에 딸린 토지 건물·비품 따위의 보관이나 수리에 관한 일을 맡아보는 교직)로 재정 관리에 따른 구설을 낳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것이 개화운동가와 신학자로서의 공을 가릴 만큼 위중하다고 보긴 어렵다.
박달재 고개 정상의 “울고 넘는 박달재” 노래비 옆에 의미 있는 안내판 하나가 서 있다. 이 노래 작사가 반야월의 일제하 협력행위를 알리는 내용이다. 탁사의 한국 교회 헌신과 인간적 실족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있는 그대로 알리면 된다. 지방자치단체가 탁사의 독립운동을 기리기 위해 애쓰는 마당에 한국 교회가 특정 교파 사람 또는 실족 등을 이유로 묻어 버리는 것은 제대로 된 역사 서술이 아니다.
_“한국신학 기초 세운 최병헌 목사와 충북 제천·보은”에서
근·현대 한국 사회를 움직인 수많은 인재들이 기독교인이다. 마땅히 신앙의 모범으로 받들거나 공과(功過)를 평가받아야 할 인물들이다. 크리스천 인물을 탐사하며 느끼는 소회는 한국 교회가 무심해도 너무 무심하다는 것이다. 교권에는 민감하면서 선대의 유업은 등한시한다. 목치숙 · 목일신 부자의 삶을 좇는 과정에서도 그런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이런 한국 교회가 각종 교과서에서 기독교를 홀대했다고 주장한다면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원사료가 부족한데 교과서 필진이 어떻게 반영한단 말인가.
_“독립운동가 목치숙 목사·동요 작사가 목일신 부자와 전남 고흥읍교회”에서
…2014년 동만주 열두 교회 개척자 남자현이 감옥에서 곡 기를 끊고 별세한 후 그가 묻힌 하얼빈 옛 외국인 공동묘지 내 남자현 묘지터를 찾아낸 인물이다. “독립은 먹고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에 있다”는 남자현의 기도를 좇아 거기까지 간 것이다. 비신앙인인 그가 세상의 기독교인들에게 말했다.
“왜 한국 교회는 갇히고 매 맞아 가며 동포의 정신을 일깨 우고 열두 교회를 세워 해방을 염원했던 남자현 같은 신앙인을 알려고 하지 않나요. 왜 ‘유관순’ 한 분만 있다고 생각하나요.”
_“독립운동가 남자현과 경북 영양”에서
당시 제주의 성도에게 도인권은 요셉과 같은 중앙의 거목이었다. 하지만 도인권은 독립운동가라는 계관을 버리고 성도들, 특히 청년들에게 “광음을 아끼라, 때가 악하느니라”라고 외쳤다. 자신이 77년을 살았으나 정작 하나님을 위해 제대로 복음을 전한 시간은 16년에 불과했고 그것도 매년 60일에 지나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는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전도했다.
백범은 도인권에 대해 정기가 바른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한국 교회가 도인권의 예수 정신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데 소홀했다는 감을 지울 수 없었다.
_“독립운동가 도인권 목사와 제주중앙교회”에서
서울 지역
“매국적신 이완용, 내가 꽂는 십자가를 받아라!”
-기독 청년 이재명 의사와 서울 명동성당
기생쯤으로 여김받은 교회 자매, 무대서는 늘 찬송 불렀다
-우리나라 최초 성악가 윤심덕과 서울 YMCA
역적이 된 이단아, 기독교 유입 물꼬 트다
-‘대역부도’ 김옥균과 서울 양화진 성지
흥남의 크리스마스 기적 … 9만 2천 명 살리다
-의사 현봉학과 서울역 옛 세브란스의전 터
왜 나를 살리셨을까 … 전도하는 농부 되다
-전도인 원경선과 서울 북한산
숯장사·조선 사대부 ‘신앙 동지’ 되다
-독립운동가 전덕기·이회영과 서울 남대문시장
“나리, 예수 믿으소서”… 마부가 왕손을 전도하다
-마부 영수 엄귀현과 서울 봉화산
경기 지역
“조국이여 안심허라”… 젖과 꿀 흐르는 이상촌 꿈꾸다
-가나안농군학교 김용기 장로와 경기 남양주 봉안이상촌
‘훈맹정음’ 만들어 ‘맹인’ 인도한 예수의 종
-송암 박두성 선생과 인천 강화군 교동교회
하나님 영광 위해 빈들에서 땅을 일구다
-기독교농촌계몽운동가 최용신과 경기 안산 샘골교회
“목사 되려 했던 사람, 독립운동 건국 준비하느라 그대로 떠나고 말았다”
-독립운동가 여운형과 경기 양평 생가
강원·충청 지역
“나는 하나님께 얼마나 많은 기도를 했는지요”
-화가 박수근 아내 김복순 전도사와 강원 양구 박수근미술관
“기도로 깰지어다”… 기도원운동 불붙이다
-전도사 전진과 강원 철원 대한수도원
뼛속까지 유교 숭배자, 예수를 따르다
-한국신학 기초 세운 최병헌 목사와 충북 제천·보은
말씀 접한 ‘도쿄 난민’…고국 민중 일깨우는 데 헌신
독립운동가 서재필과 충남 논산
감옥에서 예수 만난 나이 쉰셋 ‘초심자’, 교회 세우다
-독립운동가 이상재와 충남 서천 종지교회
호남 지역
“천황도 예수의 심판 받을 것입니다”
-박연세 목사와 전북 군산 3·1운동역사공원
독립선언서 품은 기독학생, 호남 만세운동 불씨 놓다
-독립운동가 김병수 장로와 전북 김제·익산
걸인·빈민 구제 애끓더니 스물넷에 스러지다
-조선의 성자 방애인과 전북 전주
교회에서 성장한 혁명음악 작곡가, 중국의 별 되다
-음악가 정율성과 전남 광주 정율성로
죽창에 스러진 ‘믿음의 어머니’
-순교자 문준경 전도사와 전남 신안 증도
조선총독부 관리 딸이 사랑한 ‘거지 대장’ 전도사
-공생원 설립자 윤치호·윤학자와 전남 목포
순회목회 나선 아버지의 자전거, 동요가 되다
-독립운동가 목치숙 목사·동요 작사가 목일신 부자와 전남 고흥읍교회
영남 지역
전도사, 의열단원으로 일어서다… “포로된 자 해방시켜 주시는 이가 예수”
-전도사 박문희와 부산 동래복음전도관
“병든 자 돌보라”… 낙동강 물난리 이재민 구호 말씀 실천하다
-한국 외과학의 선구자 고명우 장로와 부산 구포
북녘 향한 옥탑방 사부곡(思婦曲)… “기도 속에서 늘 당신을 만납니다”
-성자가 된 의사 장기려와 부산 송도
“일경(日警) 겁박에 정신이 더 맑아졌다 … 성령이 주신 용기”
-한국 기독여성계 대모 공덕귀 전도사와 경남 통영
내 땅 팔아 신학교 지어라 … ‘사람 낚는 어부’ 예비하다
-장신대 설립 ‘초석’ 신용우 장로와 경남 거제 하청교회
“조선총독 가슴에 방아쇠를” … 일제가 전율한 ‘여자 안중근’
-독립운동가 남자현과 경북 영양
제주 지역
섬 소년 가슴에 심어준 ‘일사각오’ 신앙
-순교자 방계성 목사와 추자도
“우상에는 절하지 않는다” … 옥중에서도 신앙 절개 지켜
-독립운동가 도인권 목사와 제주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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