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64~67쪽 ‘제1부 나의 정직 만들기’ 중에서]
잊을 수 없는 사모님
지바(일본에 있는 지명)에 있는 벧엘교회로 가는 도중에 나 목사님 댁을 들르게 되었다. 예고도 없이 가는 도중에 들었으므로 나 목사님은 계시지 않았다. 우리 일행인 공 목사님 내외분과 아드님이랑 그래도 잠깐 쉬어가자고 교회당 앞에서 내렸다. 그곳도 지바였다. 일본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보려고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있노라니 나 목사님의 차가 우리들 옆에 멈췄다. 우리는 온 김에 교회에 잠시 들러서 기도하고 가자고 해서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나 목사님 사모님은 저녁을 준비할 것이니 20분만 기다리라고 하시면서 2층으로 올라가셨다. 우리 일행은 교회 안에서 기도하고 음료수를 들면서 담소를 하고 있는데 가까운데서 계시는 벧엘교회의 정 목사님 내외분이 오셨다.
얼마 뒤 2층의 나 목사님 댁 식탁에는 그야말로 근사한 뷔페가 마련되었다. 사모님은 언제 시장 가실 시간도 없으셨는데 이렇게도 잘 차리셨을까? 사모님은 집에 있는 재료를 가지고 요리를 다양하고 빨리 맛있게 만드는 천재 같으셨다. 나중에 저녁을 들면서 알았는데 사모님은 가정학과를 전공하셨다고 했다. 신학도 하시고 간호학도 전공하셔서 지금 일본에 있는 어느 병원에 나가서 중환자들을 돌보신다고도, 한 주일에 몇 번 나가서 주로 중환자들의 목욕을 시키신다고 했다.
목욕은 두 간호사님이 양쪽에 마주서서 물을 끼얹으면서 씻기는데 팔이 아플 정도로 너무 힘이 든다고 하셨다. 그런데 이 힘든 일을 사모님은 얼마간 혼자서도 하셨다고 한다. 내가 놀라면서 그 이유를 물었더니, 맞은편에서 씻기는 일본인 간호사가 뭐에 틀렸는지 사모님과는 안 한다고 해서 그랬다고 한다. 둘이 해도 힘드는 그 일을 사모님은 얼마 동안 혼자서 해내셨다니!… 그 병원의 많은 간호사 중에 한국인은 사모님 혼자라서 더욱 본이 되어야 한다고.
그 병원에는 임종 직전의 환자들이 오니까 목욕은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목욕인 셈이다. 그 병원에 있는 많은 간호사 중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어서 사모님은 그 병원에 파송된 선교사나 다름이 없었다. 그래서 누가 사모님에게 이유없이 화를 내도 참고 부당한 대우를 해도 참는다고 하셨다. 나는 그런 일을 도저히 감당 못할 것 같아서 사모님에게 물었다.
“그렇게 힘든 일을 어떻게 감당하세요? 더구나 얼마 동안은 그 일을 혼자서 해내셨다니… 정말 어떻게 그런 어려운 일을 할 수 있으세요?”
“…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날 위해서 돌아가신 사랑을 생각하면서 하지요… 목욕시키면서 물을 퍼 올릴 때, 그때가 너무 힘이 들어요. 환자 한 사람 씻길 때 물을 바가지로 한 열다섯 번 스무 번을 떠서 부어야 하니까… 그렇게 하루 열다섯 환자를 씻겨야 해요. 너무 힘이 드니까, 찬송을 늘 부르면서 하지요. 그러면 힘든 줄을 잘 몰라요… 환자가 죽어서 나갈 때 간호사들이 병원 마당에 주욱 서서 보내요. 이때 믿지 않는 일본인들은 얼굴이 굳어져서 부들부들 떨어요. 나는 안 떨지요…”
“나는 안 떨지요.” 그 말씀이 내 가슴을 울렸다. 그렇다. 사망을 이기신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은 영생이 있으니까. 죽음 앞에서 떨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나는 그 사모님의 손을 만져 보았다. 얼마나 위대한 손인가. 수많은 죽음을 만진 손. 그래서 이 손은 이렇게도 따뜻하고 푸근하고 넉넉하게 살아 있는가. 나는 사모님의 얘기를 들으면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에게서 풍기는 거룩한 향기를 느꼈다.
그 뒤 한 20일쯤 지나서 나는 나 목사님 내외분과 음악회에 초대를 받아서 갔다. 방학을 맞아 미국에서 온 목사님의 아드님이랑, 음악회가 끝나고 돌아오는데, 그날은 여름인데도 비가 오고 바람이 세차게 불어서 몹시 추웠다. 목사님이 주차장으로 차를 가지러 간 사이에 나는 사모님 옆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입고 있는 여름옷이 얇아서 무엇으로도 그 추움을 막을 길이 없었다. 계속 떨고 있는데.. 그때 갑자기 옆에 서 계시던 사모님이 나를 뒤로해서 안아주셨다. 내 몸은 갑자기 따뜻한 모포에 감싸이듯이 포근해졌다. 아아, 지금의 내 추위를 녹이는 최선의 방법이구나. 죽은 시체 같은 환자를 늘 사랑으로 만지며 씻기는 사람의 손은 다르구나. 꼭 예수님의 손 같구나. 이렇게 내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시다니… 나를 감싸주시던 사모님의 손. 내 추운 몸을 녹여주시던 사모님의 손을 오래 잊지 못할 것이다. 나는 그 따뜻한 생명의 손을 두고두고 기억하면서 배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