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의 사회사’라는 역사학의 새 영역을 개척한 책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에 영향
‘감각의 역사’라는 주제에 관한 역사인류학의 대표적인 성과로 꼽히는 저작이다. 1982년 처음 출간된 뒤로 지금까지 12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알랭 코르뱅(Alain Corbin)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주었다. 아울러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자 영화로도 제작된, 파트리크 쥐스킨트(Patrick Suskind)의 《향수》(1986)라는 소설의 탄생에 영향을 끼친 책으로도 알려져 있다.
한국어로는 처음 번역되었는데, 한국어판은 2016년에 새로 개정된 판본을 기초로 하고 있다. 원래의 제목을 그대로 한국어로 옮기면 《독기와 황수선 : 후각과 18-19세기의 사회적 상상》이다. 그러나 ‘독기(Miasme)’는 ‘악취’라는 의미로도 쓰이고, ‘황수선(Jonquille)’은 책 안에서 새로운 후각적 감수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등장하므로, 한국어판에서는 제목을 ‘악취와 향기’로 하였다.
후각으로 본 근대 사회의 역사
이 책에서 알랭 코르뱅은 ‘후각’의 영역에서 나타난 감각의 혁명이 근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과학과 의학의 역사ㆍ도시계획ㆍ공중위생ㆍ예절규범ㆍ건축양식ㆍ향수의 유행 등과 같은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제시한다.
후각은 오랫동안 감각의 위계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놓여 있었다. 시각과 청각, 촉각이 객관적인 감각으로 중시되었던 것에 반해, 후각은 주관적인 감각으로 외부 대상의 인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후각은 “욕망과 욕구, 본능의 감각”으로, 그것이 예민한 것은 문명화가 덜 되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여겨졌다. 다시 말해 “킁킁거리는 것은 동물과 같은 짓이었다.”
그러나 18세기 중반 이후 서양사회에서는 이러한 감각의 위계에 큰 변화가 나타났다. 후각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감각으로 떠오른 것이다. 사람들은 냄새에 민감해졌고, 악취의 허용한계도 엄격해졌다. 그래서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어렵거나 우습게 보이기까지 하는 독특한 모습들마저 나타났다.
냄새가 제거된 현대의 생활환경은 어떻게 탄생되었을까
이렇듯 사람들이 냄새에 민감해진 것은 그 시대에 유독 악취가 강해졌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콜레라와 같은 유행병의 전염에 관한 과학과 의학 이론의 영향 때문이었다. 18세기에는 기체학과 식물학이 점차 발달하면서 공기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었다. 아울러 물질이 부패하면서 발생한 독기 때문에 질병이 자연적으로 발생한다고 보는 ‘독기론(miasmatism)’이 의학적 사고를 여전히 지배하고 있었다. 따라서 공기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졌으며, 냄새를 통해서 공기 안에 포함된 부패한 독기의 존재를 감지해내는 후각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이러한 공기에 대한 경계심은 냄새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낳았다. 사람들은 배설물이나 오물이 가까이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하게 되었으며, 분뇨구덩이ㆍ도축장ㆍ변소ㆍ무덤ㆍ하수구 등의 악취가 사람들의 불안감과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지배계층은 자연과 산지의 순수한 공기를 예찬하며 도시와 빈민의 악취로부터 벗어나려 했으며, 선박ㆍ병원ㆍ군대ㆍ학교 등에서는 악취를 제거하기 위한 새로운 신체위생의 규율들이 실험되었다.
후각은 사회적 위계를 세분화하는 데에도 사용되었다. 인간 집단은 냄새가 제거된 부르주아와 악취를 풍기는 민중으로 구분되었으며, 도시의 공간도 그에 따라 새롭게 해석되고 계획되었다. 아울러 타인의 체취에 대한 불쾌감이 커지면서 ‘개인’이라는 관념이 고양되었다. 그래서 개인들이 독립된 공간과 침대에서 살아가는 현대의 생활양식이 등장했으며, 은은하고 수줍은 식물성 향기를 선호하는 새로운 성적 전략도 탄생되었다.
이처럼 알랭 코르뱅은 배설물ㆍ짐승의 사체ㆍ늪ㆍ무덤ㆍ감옥ㆍ병원ㆍ빈민의 주거 등에서 풍기는 다양한 악취들에 관한 이야기들을 통해 18~19세기의 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독기론과 감염론, 플로지스톤설과 근대 기체화학 등과 같은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감각적 태도들이 근대의 삶의 양식들과 감수성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를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