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오래전에 현자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고 설파하였다. 그때 제자 하나가 스승에게 물었다. 그러면 스승님은 자기 자신을 아십니까? 소크라테스는 그 제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도 나 자신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을 모른다는 사실을 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이 왜 유명한 말인가?
우리 모든 인생(사람)은 자기 자신을 모르는 존재라는 것을 소크라테스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모든 인생(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모른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 준 말이라는 점에서 위대한 발견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 우리 모든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모른다. 자기 자신을 모를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모르고 있다는 것조차 모른다.
이것이 인생의 한계요, 사람의 위치다. 그런데 지금 세상은 어떠한가? 과학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발달하였고 꿈에 그리던 달나라에 사람이 다녀온 지도 오래되었다. 이제 곧 화성에 다녀올 날도 머지않았다.
뿐만 아니다. 컴퓨터와 인공지능의 개발로 상상을 초월하는 세상이 되었으며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발전하였다. 그런데 이에 비하여 우리들의 삶은 어떠한가? 이전보다 더 행복해졌는가? 더 평안한가?
결코 그렇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무엇인가 더 불안하고 두렵고 우울하 고 갈수록 더 포악해지고 복잡한 세상이 되었다. 오늘날 뉴스를 보라! 나는 옳 고 너는 틀렸다고 서로 삿대질하며 싸우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세상이 왜 이렇게 되었는가? 사람들은 나름대로 이래서 그렇다 저래서 그 렇다고 말은 하고 있지만, 그것은 이론일 뿐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나 자신 을 모르는 인생이 세상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여기에 인생의 고민이 있다. 그렇다면 나 자신이 누구인지?
세상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인가?
다행히도 그 길은 있다. 분명히 길이 있다. 그런데 사람의 머리 로는 알 수가 없다.
왜 그런가? 사람은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피조물이 어떻게 창조주의 마음을 알 수 있겠는가? 알 수가 없는 것이 당연하다. 사람은 피조물 이다. 피조물인 사람이 창조주의 생각을 알 수 있는 길은 창조주 그분이 우리 에게 알려 주시는 그 말씀 안에서 알 수가 있다. 이것만이 나 자신을 알고 세 상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오직 이길 밖에 없다.
사람이 그것을 인정하든 안 하든 오직 이길 밖에 없다. 사람은 피조물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 은 창조주의 말씀을 들을 수가 없다.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고 결과가 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그 근본을 알아야 한다. 가지만 붙잡고 판단해서는 답이 없다. 나의 근본을 알면 세상의 근본도 알게 된다. 그 근본부터 확실하게 알고 나면 어떻게 길이 보이지 않겠는가?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어떤 이론이나 이념 을 그리고 단순한 지식을 전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 실제가 된 말씀을 증 거하는 것이며 내가 직접 체험한 것을 중심으로 이 글을 쓰게 된 것이다. 이 말 씀을 머리로만 알아듣는 지식에 그치지 말고 먹는 말씀이 되기를 바란다. 이 말씀을 먹어서 말씀과 내가 하나가 되면 옛 나는 끝이 나고 새로운 나로 탄생게 된다.
말씀으로 거듭난 사람은 새로운 피조물이며 새사람이 될 것을 확신한다.
이 글을 묵상하면서 읽기를 바란다. 이 말씀을 확실하게 먹은 사람은 새로운 인생이 시작될 것이다. 나의 깊은 곳에서 기쁨이 솟아나고 새 소망이 보이며 그동안 경험해 보지 못한 평안과 안식이 찾아올 것이다. 전혀 부족함이 없는 삶이 찾아올 것을 확신한다
뿐만 아니라 우울증에 빠져 있을 사람은 여기에서 해방되고 기쁨이 찾아올 것을 확신한다.
소망이 없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소망이 샘솟을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마음속으로 음미하면서 천천히 읽기 바란다.
어두움에서 광명이 찾아오고 감사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솟아날 것이다. 분명히 그렇다.
나의 경험에서 볼 때 다른 길은 없다.
오직 이 길뿐이다. 영생의 길이 여기 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로 복된 삶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