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1인 출판이라는 틀이 아니더라도, 출판업이란 자신이 모든 일을 장악하는 대신 그 일을 장악한 사람들을 매끄럽게 이어 주고 조립하는 역할에 가까울 것이다. 윤활유가 잘 발라지고 촘촘히 맞물린 볼트와 너트처럼.
_〈홀로 출판사를 꾸려 간다는 것〉 p. 28
〈어라운드〉를 만들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주변을 둘러보며 무언가를 찾아오기 시작했어요. 아주 특별한 건 아니었어요. 이미 우리 주변에 있었지만 미처 알지 못했던 아주 작은 부분이었죠. 우리끼리 신이 났고 즐겁게 책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혼을 바친 책이 마무리되고 인쇄소로 넘어가고 나니 이 책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번뜩이더라고요. 아무리 열심히 만든 책도 독자가 없다면 의미가 없으니까요. 저는 열심히 만든 책이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읽히기를 바랐어요. 우리랑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을 찾고 싶었죠. 분명 같이 좋아해 줄 사람이 있다고 믿었거든요.
_〈어라운드에서 만들어 가는 취향〉 p. 55
중요한 것은 작가가 쓰고 편집자가 의도한 텍스트에는 저마다의 고유한 파동, 고유한 파장이 있다는 것입니다. (파동이나 파장을 의미나 메시지라고 해석하면 이해하기 쉬울까요?) 그리고 북디자이너는 그 파장을 ‘문자’라는 입자들의 배열로 시각화하는 역할을 담당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북디자이너는 컴퓨터로 문서를 디자인하기에 앞서 자신에게 주어진 텍스트의 파장을 세심하게 분석하고 거기에 걸맞는 형태를 (때로는 의도적으로 걸맞지 않은 형태를) 찾아 문자의 배열로 표현해야 합니다.
_〈입자와 파동〉 p. 106
북디자이너로 불리는 것도 아니고 어떤 ‘디자이너’로 불리기 원하는 것이 아닌, 나는 그냥 ‘이미지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순수하게 이미지를 위한 열정. 주제를 던져 주면 그걸 잘 표현하고 싶은 욕망. 그리고 보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싶었다.
_〈작은 캔버스, 그래픽을 만나다〉 p. 118
시대를 대표하는 본문 활자는 있지만 대물림할 만큼의 한글 활자는 아직 없다. 지금 당장 뛰어들어도 여유치 않다. 종이책의 시대가, 연필 자국이 손에 패일 때까지 필기하던 향수를 지닌 독자가, 어려서 붓과 먹과 손글씨에 익숙한 환경에서 자란 세대가 모여서 당대의 감수성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있다.
_〈“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를 엿듣는 병아리의 마음〉 p. 185
현재 저희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종이책을 내고 있는데요. 한 가지 형태만을 고집하지는 않습니다. 콘텐츠가 내용물이라면, 그걸 담는 그릇인 컨테이너를 최대한 다양하게 가져가려고 합니다. 〈Mono.Kultur〉라는 독일의 인터뷰 매거진이 있습니다. 호마다 판형이 다른데요. 어떤 것은 손바닥만 하고, 어떤 것은 책을 넘기는 부분이 봉해져 있고, 어떤 것은 펼치면 전지 사이즈가 됩니다. 저희 역시 콘텐츠에 최적인 컨테이너를 찾고자 합니다. 그 컨테이너는 종이책이 될 수도 있고, 브로슈어가 될 수도 있고, 타블로이드가 될 수도 있고, 엽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디지털 역시 콘텐츠를 담는 좋은 그릇 중 하나라는 생각입니다.
_〈깊이와 시의성을 담은 콘텐츠〉 pp. 22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