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는 묵묵히 그 일을 했다. 그런 면에서 마리아는 유대 전통을 지켰다. 이런 잔치에서 여자가 남자들이 나누는 대화의 흐름을 깨는 일은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마리아의 행동은 백 마디 말보다 더 큰 파장을 일으켰다. 마리아는 전통과 관습에 구속받는 사람이 아니었다. 마리아는 전통적인 일을 완전히 전통을 깨는 파격적인 방식으로 실천했다.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낭비 행위라는 사회 통념을 깨는 방식으로 표현되었다. 마리아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그에 걸맞는 무엇인가를 해야만 했다. 예수님은 바로 그 점을 보셨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행위를 소중히 여기고 칭찬하신다. 그리고 온 천하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마리아가 한 일이 그녀가 남긴 어떤 말보다 사람들에게 더 오래 기억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마리아가 예수님께 표현한 것은 무엇일까? 물론 예수님을 향한 사랑과 감사의 마음, 그 이상이다. 마리아는 그 자리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아니 아마도 누구보다 더 깊이 예수님이 직면한 죽음의 그림자를 느끼고 있었다. 마리아는 기쁨과 불길한 예감, 즐거우면서도 괴로운 그날의 분위기를 나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향한 자신의 헌신된 마음을 최대한 화려하게 표현한다. 그것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예수님께 드린 마지막 사랑의 낭비였다.
<기억해야 할 여자 베다니 마리아> 중에서
“십자가는 우리가 가진 환상을 산산조각낸다. 우리 자신에 대한 환상, 예수님에 대한 환상, 그리고 세상에 대한 환상을. 아무리 좋아 보이더라도 예수님은 우리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계신 분이 아님을 우리는 알게 된다. 아무리 매력적으로 보여도 예수님은 세상적인 열망에 순응하지 않으신다. 자신이 원하는 모습, 남들이 생각해주길 바라며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모습에 예수님은 부합하지 않으신다. 삶에 대한 우리의 모든 기대와 욕망을 긍정하고 성취하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순탄한 길은 없다. 십자가의 길만이 있을 뿐이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기대를 거스르며 남들에게 보여 주기 원하는 모습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우리 자신을 보게 한다. 그리고 우리가 전에 보지 못한 낯설고 새로운 풍경으로 세상을 드러낸다. 오직 실패한 자만이 성공할 수 있는 역설적인 경기장으로서의 세상을 말이다.”
<실패자 베드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