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다시 오실 예수’(Jesus to come again)라고 부르는 것이 본서의 전편적인 재림 신앙의 표현인 것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그렇다고 종말의 징조가 보일 때에 재림 직전도 될 것을 무시하지는 않는 것이다. 그날은 하나님만 아시기 때문이다. 이단들은 재림의 징조를 보고 모두 재림 직전으로만 생각하기에 성경적인 재림 신앙(파루시아)과 다르게 되어 실패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단 재림 신앙(?)은 넘쳐나고, 기성 교단은 재림 신앙을 잃어가고 있는 아이러니컬한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p.15
예수님은 “시대를 분별하라”고 하셨다. 그것이 현재성이다. 미래만(세상 끝) 징조가 아니라 현재도 미래에 대한 징조가 현실에 나타나고 있는 것을 분별하라는 것이다(눅 12:56). 그러므로 파루시아는 자유주의 종말론신학자들처럼 미래나 현재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와 현재가 함께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언급하면 예루살렘의 멸망과 주의 임하심을 함께 말씀하신 예수의 대답이 바로 그것이다.
-p.35
악인(惡人)에게는 비참(悲慘)한 최후의 순간이 될 것이고, 의인(義人)에게는 행복하고 영원한 축복의 세계가 열릴 것이다. 그러므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그날을 준비해야 한다. 영원한 절망과 영원한 행복이 믿는 자 앞에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하여 자기 고집과 지식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원대하신 능력에 도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되고 만다. 인간의 지식은 해변의 한 알의 모래알 같은 것에 불과하다 했다. 거짓에 사로잡히지 말고 진실의 길을 붙잡아야 한다.
-p.73
오늘 우리 한국 사회와 국가 현실의 시대를 통찰(insight)한다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물질문명(物質文明)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상이념(思想理念)으로 위기를 볼 수 있다. 특히 사상이념인 좌경 사상(적그리스도)이 교계까지 들어오는 데도 알지 못하고 또 지역적으로도 들어오는 데도 알지 못하고 결국 파루시아의 바른 신앙관을 붙잡기를 꺼려하는 형편에 놓여 있다. 사실 예수를 따를 자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따르라 했다. 물론 십자가도 지고 따르라고 했다. 파루시아가 어디 딴 곳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예수 십자가 보혈 흘린 분이 부활하셔서 그분이 구원의 완성을 이루고자 다시 오시는 일인 것이다.
-p.96
신앙을 지키려면 신앙을 버리라는 말이다. 앞에 신앙과 뒤에 신앙은 완전히 다르다. 사람은 쓸데없는 것을 신앙으로 삼고 구원을 방해하고 있다. 성경을 억지로 풀어 재림의 날짜를 정하여 사람을 유혹할 때 그것을 옳다고 생각하는 마음, 또한 우상적인 요소가 가득한 것을 믿는 마음, 학문이라고 하면서 쓰레기를 만들어 신앙이라고 하는 것, 모두 버려야 할 존재들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했다.
만국의 모든 신은 헛것이나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도다(대상 16:26).
-p.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