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가 그 슬픔과 비탄과 아픔이 아무리 크더라도 그것 때문에 하나님을 향해 불평하거나 원망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죄입니다. 슬퍼하고 탄식하고 아파하는 것과 하나님께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성질이 다릅니다. 하나님을 향한 분명한 신앙을 가진 신자라도 곤경과 역경을 맞닥뜨리면 아파하고 슬퍼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게 되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불평과 원망은 실제로 이렇게 말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고난 뒤의 가해자이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만드신 것이니 하나님은 나쁘십니다. 어떻게 제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을 판단하는 일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판단하는 것은 그분을 정죄하고 비판하는 것이기에 죄가 됩니다.
<33-34쪽 중에서>
만군의 여호와라는 말은 그 어떤 것도 하나님보다 능력이 있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능력의 하나님, 그것을 보존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그것을 자기의 뜻대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분이 하시고자 하는 그 뜻을 누가 꺾으며, 그분이 만든 삼라만상을 누가 다 알 수 있을까요? 만군의 여호와란, 험한 상황에서든 아니면 대적하고 있는 상황에서든 모든 전쟁에 능하신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서 45장 12절에서 자신의 권위와 능력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내 손으로 하늘을 펴고 하늘의 모든 군대에게 명령하였노라.” 그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102쪽 중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분의 뜻을 단번에 말씀하실 수도 있고 그렇게 하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 그 뜻을 가르쳐주시는 경우도 있고, 그렇게 죄를 깨닫게도 하십니다. 작품이 난해할수록 이해하기 어려운 것처럼, 사람이 직면하는 문제가 심오할수록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지혜로운 손길을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더 걸립니다.
<118-119쪽 중에서>
한 가지 기억할 것은 “고난은 당신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즉, 당신이 지금껏 무엇을 믿고 살아왔는가를 아주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고난 당하는 사람이 다 똑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이는 고난을 당하면 하나님께 불평과 원망을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의 손길을 잘못 사용하는 것이죠. 이는 미련한 일입니다. 한편, 어떤 이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고난 가운데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선하시다고 증거하는 반응을 보입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고난을 바르게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179쪽 중에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비참함을 아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집니다. 우선 그것을 알 만한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으로 자신의 죄의 비참함을 알고 그리스도 앞으로 나올 수 있을까요? 바로 성경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없으면, 우리는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말씀이 우리를 비춰줍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지식만큼 자기 자신에 대해 알게 됩니다.
<255쪽 중에서>
만일 여러분이 부당하게 받는 고난이 있더라도, 하나님이 자기를 외면하셔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내게 왜 이런 일을 당하게 하셨나’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복음과 그리스도의 의를 위하여 핍박받을 때도, 죄를 짓고 징계를 받아 고난을 당할 때도, 불 시험으로 애매한 고난을 당할 때도, 하나님이 우리를 외면하지 않고 그분의 사랑 안에서 이끌어 가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선하신 뜻을 위해 성도가 당하는 가장 아름다운 영광의 환난, 수치스러운 환난, 애매한 환난을 다스려 가십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은 ‘성도가 하나님을 더욱더 알아가는 일’에 있습니다.
<298-299쪽 중에서>
사실상 많은 사람들은 인생 중에 슬픔과 아픔을 당하거나 개인적인 허물이 있거나 곤란과 궁핍을 있을 때 그것들을 구실 삼아 하나님을 떠나곤 합니다. 그러나 참된 성도는 그런 일이 있을지라도, 예수님이 약속하신 말씀을 붙잡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을 발견합니다.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겪는 세상의 모든 슬픔과 아픔이 우리의 마지막이요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377쪽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