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83-84쪽 ‘차에다 향수 뿌리는 장로님’중에서]
샌디애고의 한 권사님 댁에서 쉬고 있을 때, 가까운 ‘씨 월드(sea world)’에 한번 가보지 않겠느냐는 주위의 권유가 있었다. 나는 관광은 싫어하지만 ‘씨 월드’에는 갖가지 종류의 희귀한 어족들이 많다고 해서, 견학 차원에서 가기로 했다.
그날 우리 일행을 태우고 가실 분은 운전을 잘하신다는 이웃마을에 사시는 박규숙 집사님.
약속 시간이 되자, 박 집사님이 들어 오시는데 색색의 국화와 아이리스로 만든 꽃다발을 가슴에 안고 계셨다.
국화!‥‥ 나는 내 나라에서 보던 그리운 논들을 받아 들자, 미국에 와서 시들어졌던 내 생명이 다시 살아나는 듯한 기쁨을 맛보았다.
“좀 늦었지요? 우리 장로님이 차에다 향수를 잔뜩 뿌려놓아서 냄새를 빼느라고‥‥ 오늘 그 차에 기 집사님이 타신다고‥‥‥
“어머나! 장로님이 어떻게 저를 아셔요?”
“아시지요. 제가 집사님 책을 좋아해서 읽을 때, 같이
읽었거든요. ”
나는 속으로 ‘오늘 이 박 집사님 앞에서 언행을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하면서 금방 견학의 호기심마저 반감되는 기분이었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감명 받은 작가가 타고 가는 차에다 향수를 듬뿍 뿌리는 장로님의 천진성에 감동되는 내 마음을 어떻게 막을 길이 없었다.
그날 ‘씨 월드’ 견학을 마치고 박 집사님은 우리 일행에게 태평양이 바라다보이는 유명한 라호야비치에서 가장 맛이 좋다는 아이스크림집에 들어가서 아이스크림도 사주셨다.
바닷가에는 6월 중순이라 해수욕하는 남자가 꼭 한 사람 있었다. 내게는 얼마나 추울까? 하는 생각밖에 없었고. 아이스크림 집에서는 젊은 아가씨처럼 아주 멋을 부린 노인 할머니를 보았다. 옷차림과 화장에 쏟았을 그의 정열과 시간을 생각하자, 내게는 측은지심과 함께 갑자기 피곤이 몰려왔다.
그날 내가 견학한 ‘씨 월드’보다 라호야비치의 아이스크림 맛보다 더 내 마음을 끌어가던 박규숙 집사님. 그 분의 활동적이고 편안하면서도 소박한 옷차림, 그리고 얘기하실 때마다 풍겨나는 그분의 진실함 겸허함은 내게는 어떤 명소나 절경, 아이스크림 맛보다 더 신선한 경이로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