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주의 신자들에게 도움이 될 소중한 영적 유산
베네딕트 수도회를 20년 넘게 경험한
장로교 목사이자 신학자의 체험과 실제적 지침
건강한 영적 습관으로 삶을 가꾸는 수도원 영성의 비밀
이런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 분주함과 소란함 대신 깊고 고요한 영성으로 나아가기 원하는 분
* 수도생활에서 영적 건강에 유익한 영적 습관을 찾고자 하는 분
* 수도생활에 관심은 있지만 다른 종교의 세계 같아서 꺼려지는 분
* 열정과 침묵의 영성이 조화를 이룬 신앙생활을 추구하는 분
말씀을 살아내는
수도원 영성으로
그리스도의 제자답게
진정한 삶을 살라
이 책의 저자 데니스 오크홈은 해박한 지식을 갖춘 목사이자 신학자로서, 수도원이 개신교 신자들을 끌어당기는 요인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내놓는다. 그는 개신교 신자들이 수도원에 매료되는 이런 현상은 기독교 신앙의 원뿌리를 진실하게 되찾고 기독교의 분열 이전의 신앙전통과 생활방식에 다시 접속하려는 시도라는 점을 증명해 보인다. 저자는 이 책의 마지막에 덧붙인 후기(後記)에서 개신교 종교개혁자들이 수도원제도에 반대한 본래의 이유를 살펴보는데, 그 부분이 특별히 귀하다. 이 체험 수기는 부드러운 어조에 종종 익살스럽지만, 적당히 요령을 피우면서 살아가는 개신교 신자들에 대한 도전들로 가득하다. 저자는 소비생활과 연예인에 푹 빠진 요즘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베네딕트 수도회의 삶과 기도에 좋은 영향을 받기를 권하며, 그러면 그들이 진짜 세상에 뛰어들고자 하는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_ 캐슬린 노리스, 서문 중에서
[출판사 서평]
가톨릭 영성 아닌 성경적 영성을 추구하는
복음주의 개신교 신자들을 위한
‘수도원 영성’의 믿을만한 안내자
세상과 교회는 물(세상)과 배(교회)로 비유되곤 한다. 배는 물에서 기능하고 물 위에 떠 있지만, 배로 물이 들어오면 배는 가라앉는다. 그래서 교회는 속세를 등지고 외딴 곳에 홀로 거하는 것도, 세속화되는 것도 경계한다. 한국 교회는 그 어떤 종교보다 구제와 나눔을 많이 하고 사회봉사에도 적극적이지만 종교 신뢰도는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데, 그 원인 중에 교회의 세속화와 교인들의 윤리의식 저하가 있다. 또한 분주하고 소란한 세상 속에서 현대인들은 깊고 고요한 휴식을 원하고 이는 기독교인도 마찬가지이나, 교회는 활발하고 활동력 있는 대신 어떨 때는 세상만큼이나 분주하고 소란하다.
그런 가운데, 금욕과 경건을 강조하는 ‘수도원적 삶’이 대안의 하나로 떠오르기도 했으나, 가톨릭 영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으로 ‘수도원적 영성’에 대한 거부감과 우려도 크다. 교회는 윤리·도덕 교육기관이 아니라 세속의 삶을 뛰어넘는 영성이 흘러야 하는 곳이다. 수도원은 각 종교에서 영성의 발원지 역할을 하는데, 존 칼빈과 마르틴 루터(수도사였던!) 등 종교개혁자들의 반대로 인해 개신교에는 수도원이 없다. 예수원, 동광원, 은성수도원, 충주봉쇄수도원 등 개신교 내 자생적 수도원들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 개신교 내에서 수도원을 경험하는 사람은 드물고, 개신교인들의 영성 추구는 수도원보다는 기도원을 중심으로 개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수도원에서 배우는 영성 훈련>의 저자 데니스 오크홈은 침례교회에서 자라고 장로교회를 섬기던 목회자이자 신학자, 교수이다. 그는 수도원이 가톨릭의 전유물이 아니라 전(全) 기독교의 공유의 유산이라는 점(수도원을 처음 세운 베네딕트는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천 년 전의 사람이다)을 분명히 하고 종교개혁자들이 수도원제도를 반대한 이유를 살핌으로써, 수도원 영성의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의심을 거두기 어려워하는 복음주의 개신교 신자에게 안전한 안내자의 역할을 해준다.
‘수도사’를 ‘그리스도인’으로 바꾸어 읽으면 베네딕트의 권계는 바로 내 얘기가 된다
침묵과 경청, 청빈과 나눔, 복종과 겸손, 환대와 착실한 머묾, 일상 속에 하나님의 임재를 놓치지 않으려는 균형. 베네딕트 수도회의 일곱 가지 수도원 정신을 하나씩 살피다 보면 분명히 성경이 강조하고 있는데 교회가 놓치고 있는 부분들이 보인다. 특별한 수사복을 입지 않았어도, 베네딕트의 가르침에서 ‘수도사’를 ‘그리스도인’으로 바꾸어 읽으면 그의 권면과 경계는 바로 내 얘기가 되고 성경의 진리를 따라 살려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이야기가 된다.
저자는 채식주의자의 접시에 두부를 올려 각 재료의 풍미를 살리듯, 신앙생활에 이러한 수도원 정신을 더해보라고 권한다. 부르짖는 기도에 말씀 묵상을, 뜨거운 열정과 믿음의 돌파에 잠잠함과 경청을, 개별적인 신앙의 골방에 공동체의 섬김과 겸손을 더한다면 경건한 신앙의 삶은 깊이 뿌리 내리고 풍성한 열매를 맺을 것이다.
내가 처음 현대 베네딕트회 수도생활의 뿌리를 샅샅이 조사하기 시작했을 때, 어떤 의미에서 베네딕트가 개신교에 속해있지 않듯이 로마 가톨릭에도 속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베네딕트는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1천 년 전에 살았던 사람이다. 따라서 어거스틴을 존경하고 그에게 배우는 개신교 신자들은 그와 마찬가지로 당당하게, 죄책감 없이 베네딕트에게 배워도 된다. p.38
우리는 언제나 주변 세상을 소음으로 가득 채운다. 심지어 성찬식도 소리로 가득 채워야 직성이 풀린다. … 우리가 주변 세상을 소음으로 가득 채우는 이유는 침묵 자체가 두렵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우리가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기를 정말로 두려워하기 때문일 것이다. p.69
우리는 듣도록 훈련받은 소리를 듣는다. 따라서 만약에 우리가 소유욕이 강한 소비자로 살도록 훈련받았다면,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나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도록 훈련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다른 사람을 섬기는 능력을 잃었을 것이다. p.86
불평을 멈출 때, 들을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 그리고 사실 경청의 목적은 복종에 있다(흥미로운 사실로, 라틴어 ‘오보에디오’[oboedio]는 ‘복종하다’의 뜻도 있고 ‘경청하다’의 뜻도 있다). 나는 형제자매들에게 필요한 것을 듣거나 혹은 그리스도인 형제자매들을 통해 하나님의 명령을 들을 때, 순종으로 응답한다. p.105
“교수님은 통제하기를 좋아하시죠?” 그 말은 이런 뜻이다. “당신은 겸손하지 않아요.” 겸손은 우리의 이기적인 환상, 통제 욕구, 남들과 다른 예외적 인물이 되려는 욕구를 무너뜨린다. 우리는 겸손할 때 우리가 예외적인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한다. p.125
이는 교회에서 사람을 차별하는 태도에 대한 야고보서의 경고(약 2:1-13)와 매우 비슷하다. 반면 예배당에 얼굴을 내미는 성공한 인물이나 유명 인사에게 대하는 태도는 우리가 종종 보이는 세속적인 열광과는 부끄러울 만큼 다르다. p.150
그런 수도사들에 대한 베네딕트의 지적은 현대의 어떤 그리스도인들을 정확히 겨냥한 경고처럼 들린다. “그들은 언제나 옮겨 다니기 때문에 정착하는 법이 없다. 그들은 자신의 뜻과 천박한 성향의 노예들이다”(베네딕트 규칙서 제1장 11절). p.171
이처럼 하루를 살아가는 동안 정해진 시간마다 의도적으로 기도로 돌아가는 삶의 요점 중 하나는, 바로 자신의 영적인 삶에 주의를 기울이려는 마음가짐이다. p.189
이보다 더 의미심장한 것은, 영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베네딕트회 수도사들은 인생의 어떤 영역도 하나님의 임재와 구별하여 다루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그런 태도를 배우면 일을 수단으로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사랑할 수 있다. p.193
Chapter 1
착한 개신교 아이가 수도원에서 대체 뭐 하는 거지?
Chapter 2
베네딕트회 영성이 왜 개신교 신자에게 적합한가?
Chapter 3
경청 듣는 법 배우기
Chapter 4
청빈 서로의 물건 나누기
Chapter 5
복종 하나님의 뜻을 구체적으로 행하기
Chapter 6
겸손 가면 벗기
Chapter 7
환대 손님으로서의 그리스도
Chapter 8
착실함 어딘가에 이르려고 그 자리에 머무르기
Chapter 9
균형 모든 것 안에 계신 하나님
Chapter 10
세상을 바꾸기 위해
역사에 관한 후기·개신교 종교개혁자들이 수도원제도에 반대한 이유
베네딕트회의 영성을 실천하기 위한 제안
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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