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105-107, ‘제4장 기독교 국가를 건설하려는 현대 복음주의자들의 오류’ 중에서 ]
지난 번 레이건 전 대통령은 전국 복음주의자 연합 모임에서 소련에 대해 “약한 제국”이라고 선언하였었는데, 물론 그 전제는 당연히 미국은 기독교 제국 혹은 존 윈스럽의 말을 빌자면, “산 위의 빛나는 도시”라는 것이었다. ‘기독교 국가’라는 것이 가능이나 한 것인가? 하나님 나라와 이 세상 나라들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가?
이 세상에서의 크리스천의 활동과 교회의 활동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이러한 의문들과 다른 많은 의문들은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질문들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 의문들에 답하기 전에는 우리의 공적인 증거에 엄청난 혼란이 있을 것이다.
개신교 개혁자들은 율법과 복음의 혼란 (이것은 다음 장의 주제이다), 이 땅의 것과 하늘의 것 사이의 혼란, 이 세상 나라들과 하나님의 나라 사이의 혼란을 불러왔다고 확신했었다. 이번 장에서, 우리는 이 지혜가 얼마나 적절한 것이며, 얼마나 성경적인가를, 그리고 우리가 이러한 구별을 회복하는 것이 얼마나 필수적인가를 살펴보게 될 것이다.
역사 속에서 흘러가고 있는 두 왕국
역사 속에는 많은 사건들이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다. 초대 교회에 대한 박해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그들이 박해를 받았던 이유가 그들이 입법이나 경제적 압력을 통해서 기독교를 강요하려고 시도했기 때문도 아니었음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로마는 다양한 미신들로 가득 차 있었으며, 만약 그 미신들이 제국의 영광에 기여하고 그 국가의 복지를 추구하기만 한다면, 하나가 덧붙여지는 것도 아주 행복하게 느끼고 있었다.(무엇인가 많이 들어본 소리가 아닌가?)
그러나 기독교의 궁극적인 관심사는 로마가 잘되는 것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독교가 그 점에 대해서 무관심한 것도 아니었다. 초대 교회의 크리스천들은, 자기들을 다스리는 통치자들이 네로의 정원에서 신자들을 살아 있는 촛불이 되게 하려고, 밀납 속에 집어넣어 촛물이 목까지 차오르게 만들고 있었던 시대에, 자기들을 다스리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가르침을 사도들로부터 받았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 가르침을 사도로부터 받았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돌리라”고 가르쳤다. (마 22:21을 보라). 또한,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그들을 다스리는 자들에게 순복하라고 가르쳤으며, 가짜 기적들, 사이비 기적들에 대해 경고하고,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명령한 대로, 조용하게 살기를 힘쓰고, 자기 일에 전념하고, 자기 손으로 일을 하십시오. 그래서 여러분은 바깥 사람들을 대하여 품위가 있게 살아가야 하고, 또 아무에게도 신세를 지는 일이 없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은 핍박들에 대응해서 세상으로부터 피해 버리거나 반대로 세상을 장악하려고 시도해서는 안 되었으며, 오히려 그러한 상황들 가운데서 살아갈 수 있도록 최상의 시민들, 고용인들, 장인들, 부모들, 친구들이 되도록 노력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