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에 기고했던 칼럼을 새로 정리하여 출간한 저자의 열 번째 책이다.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가는 기나긴 신앙의 여정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마른 목을 축이는 물 한 잔, 고단한 다리 잠시 앉아 쉬는 작은 의자가 되기를 소망하는 저자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창작의 어려움이 산모들의 출산의 고통만큼이나 힘들다는 비유를 들어 표현을 한다. 저자도 책을 쓴다는 일이 결코 녹록하지 않음을 매번 실감해 본다. 다른 분야의 책을 쓰는 분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하나님과 성경에 관한 기독교 신앙에 대해 영적인 분야의 내용과 의미를 글로 옮긴다는 것은 또 다르지 않을까 싶다.
더구나 저자는 여러 면에 부족하고 미천하여 내 것은 없이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님께서 부어 주시는 내용을 그대로 글로 옮기는 것조차도 여의치 않으니 더욱 그렇다. 그러면 그런 일을 왜 또 하느냐는 질문을 할 수 있다. 어쩌면 그것도 내 생각만 고집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이미 주님께서 피로 값을 주고 사신 자요 주님께 매인 자라고 감히 말한다.
몇 권의 책이 출판되어 이런저런 반응들이 있지만 그것은 내 몫이 아니기에 실망이나 들뜰 필요는 없을 것이다. 혹시라도 조금이나마 어느 부분에 유익이 되고 다시금 골똘히 생각을 하게 되며 도전이 되었다면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일 뿐이다.
– <머리말> 중에서
옛말에 남들이 장에 가니 두엄 지고 따라간다는 말이 있다. 5일에 한 번씩 서는 시골 장날이 되면 동네에 사는 이 사람 저 사람이 시장에 가서 사고팔 물건을 머리에 이고 가든지 지게에 지고 간다. 이를 본 그 누군가가 자기는 팔 물건도 살 물건도 없는데 이웃이 활발하게 움직이니 덩달아 가야만 될 것 같아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거름 더미를 지게에 지고 힘겹게 따라가는 헛수고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 이 땅에서 사는 기간은 길어야 백 년 안팎에 불과하다. 헛된 데 시간을 쓸 만큼 우리네 인생이 한가하지 않다는 말이다. 영원한 삶에 비하면 아침 안개와 같이 짧고 귀한 시간에 가치 없는 일에 매달리고 허둥대며 애를 써서는 안 된다. 무엇을 하다가 주님을 맞을 것이며 영원 세계에 들어갈 것인가 또 어떤 삶을 살다가 하나님 앞에 설 것인가를 민감하게 점검해야 한다.
하나님은 섬세하고 자상하신 분이다. 그런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만물을 통해서도 보여 주시고 또 나침반인 성경을 통해서 하나도 빼놓지 않고 인생이 걸어가야 할 길을 다 알려 주셨다. 인생의 최고의 가치와 의미가 있는 최종 목적지는 하나님의 품이다. 이 방향과 틀 안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은혜 공급하심을 받아 자기에게 주어진 여건과 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정답이다.
이렇게 단정 지을 수밖에 없는 것은 피조물 된 인생의 정해진 길이기 때문이다. 인생에게 주어진 길은 천국과 지옥 단 두 길밖에 없다. 제3의 지대는 없다. 하나님과 함께 사는 천국과 마귀와 그의 사자를 위해 예비된 영영한 불구덩이 지옥 중에 어느 곳으로 가는지는 육신이 살아 있는 지금 이 시간 자신의 선택과 결정에 달려 있다.
지옥은 기간도 출구도 없다. 지옥은 한 번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있는 곳도 아니다. 죽음이 피해 가며 영원히 고통 중에 살아야 하는 곳이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믿지 않은 죄를 회개하고 마귀의 종노릇하던 삶에서 돌이키면 하나님은 다 용서하시고 천국으로 인도해 주신다.
동서고금과 남녀노유를 불문하고 자신이라고 하는 실존에 자기 의견과 주장이 반영되어 이 땅에 존재하게 되고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인생은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과 의도에 따라 보내졌고 주어진 자리에서 제 몫을 감당해야 하는 뜻깊고 귀중한 인격체들이다.
단지 각자에게 인격체로 존재하도록 주어진 기간을 모르고 나에게 남은 시간도 명확하게 알지 못할 뿐이다. 그래서 나에게 허락된 기간이 안개처럼 해가 뜨면 바로 걷힐 수밖에 없는 짧은 시간일 수 있으니 명심하고 긴장하며 세월을 아껴야 한다는 것이다. 하루도 짧고 한 달 일 년이 잠깐인 것 같으면서도 결코 짧지 않고, 긴 것 같으면서도 지나고 나면 순간이었다는 것을 많은 이들이 느낀다.
사람이 살면서 느끼는 시간은 어제는 지나간 과거이고 오늘은 현재이며 내일은 다가올 미래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간은 하나님께서 변함이 없으신 것처럼 변함없이 항상 지금이고 오늘이며 현재만 있을 뿐이다.
(42~44쪽)
원수 마귀는 귀신들과 함께 인생들이 하나님께 회귀하려는 것을 온갖 수단과 방법으로 방해하고 가로막는다. 귀신들은 귀신이기에 귀신같이 개인의 사정과 약점을 알아서 공격하고 유혹한다. 재물을 탐하면 재물에 집착하게 해서 그것에 머물게 하고, 이성(異性)에 약하면 음란으로 유혹하여 생명의 길을 못 가게 한다. 건강에 이상을 일으켜 육신에 붙잡히게도 하고 사고나 사건에 매이게도 한다. 자존심과 명예욕에 잡혀 시선을 하나님께 향하지 못하게 하거나 위를 바라보지 못하게도 한다.
여러 것들에 매몰되어 내가 선 곳과 갈 곳과 할 것 등을 모른 채 지금이 좋고 여기가 있을 만하므로 육신의 것에 탐닉하고 본성이 이끄는 대로 충실히 살면서 나는 세상을 잘 살고 있다는 자기만족에 젖어 있게 한다. 자기의 모습을 못 보고 자신의 실상을 모르기에 영의 눈도 멀고 귀도 막히며 감각이 없어 생명과 진리의 하나님과는 멀어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런 모습과 상태를 보면서 원수들은 쾌재를 부르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애가 타고 기가 막히는 상황인 것이다.
예수께서 요한계시록 3장에서 라오디게아 교인들을 향해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한다고 책망하신다. 금융업이 발달한 라오디게아 지방은 물질은 풍요했으나 세상 향락에 젖어 있어 영적으로 빈곤한 것 등 자신의 실상을 전혀 바로 보지 못했다.
이처럼 우리는 육신의 눈만 뜰 것이 아니라 영의 눈을 떠야 하고 마음의 눈을 떠야 한다. 영의 눈을 뜨려면 우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한 분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바로 알아야 한다(히 12:2).
(96~97쪽)
현대인은 음식도 맵고 짜고 더 자극적인 화끈한 맛을 선호하는 것처럼 신앙도 성경에 근거한 정상적인 신앙의 모습은 미지근한 것 같고 양이 차지 않아 한다. 미혹의 영에 이끌리는 것이겠지만 이미 주신 말씀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이단에 빠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상태에까지 가지는 않았을지라도 혹자는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무언가 색다른 것을 듣고 보여 주시기를 바라는 이들도 있다.
필자도 이렇게 주님께 아뢴 일이 있었다. “성경에 나오는 그 많은 주의 종들이 생명과 구원의 근원이신 주님을 보았고 만났으며 말씀을 들었고 이상을 보았습니다. 저도 주님의 생명 받아 거듭난 주의 자녀이니 주님께서 저에게도 무언가 보여 주시며 어떤 말씀을 들려주십시오”라고 말씀드렸던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언젠가 새벽 기도 시간에 환상처럼 보게 된 내용과 마음속에 들려지는 무언의 음성을 들은 적이 있다. 보게 된 내용과 들려진 무언의 음성은 이렇다. 예전 뒷간 큰항아리의 모습과 그 안에 있는 무수한 구더기들을 보여 주셨다.
우리나라도 이렇게 문화나 문명이 발달하기 반세기 전인 1970년대까지도 시골은 물론이요 지방 소도시 단독 주택에서는 수세식 화장실이 널리 보급되지 않았었다. 예전 시골에서 사용했던 뒷간의 배설물을 담는 큰항아리가 묻혀 있고 그 안에 있는 배설물과 그 위에 있는 구더기들의 우글거리는 모습의 영상이었다.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고 싫고 좋지 않은 모습이 한참 떠올라 머리를 흔들며 지우려 하는 그때에 내면의 음성이 들려졌다. 이 모습의 실상이 인간의 내면의 모습이며 상태라는 마음의 소리였다. 이렇게 보이고 들려지는 영상과 음성 때문에 한참 동안 마음이 먹먹하고 낯이 뜨뜻해지며 혼란스러웠었다.
마귀가 왕 노릇 하는 어둡고 더러운 뒷간 같은 이 세상에서 구더기 같은 내가 넝마를 뒤집어쓰고 있는 모습으로도 보였다. 실상을 보고 나니 주변의 것에 매달려야 할 필요가 없음을 잊고 살아왔음을 새삼 깨우쳐 주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통 안에서 구더기들끼리 누가 더 통통하고 누가 더 잘 기어오르며 잘 구른다고 한들 무슨 의미가 있으며 가치가 있는가 하는 등의 큰 울림을 주신 것으로 받아들였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아름다운 창조물인 사람이 영혼을 거스르며 싸우는 육체의 정욕은 배설물이니 다 내어 버리고 내면을 하나님의 말씀과 생명과 마음으로 채우고 단장하라는 말씀으로도 받았다.
(151~152쪽)
기독교의 순교는 스데반이나 바울과 같은 믿음의 선진들이 주와 복음을 위해 죽는 것과 훌륭한 믿음의 선교사들이 복음의 불모지에 가서 천국 복음을 전하다가 죽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런 차원의 순교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 내 안에서 나부터 죽는 순교가 이루어져야 하는 자아의 죽음을 말한다.
나부터 순교라 함은 나의 옛사람은 죽어 있어서 내 자아가 밖으로 전혀 드러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것도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육체의 목숨보다 더 귀한 영혼의 생명이 내 안에 계신 빛 되시고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 때문에 주님으로 인하여 주님을 위해 내 자아가 자리를 내어 드리고 정말 온전히 죽는 순교가 이루어져야 함을 말한다.
또한 옛사람의 내가 빛이요 새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거듭난 새사람이 되었다면 하나님이 나에게 사랑하라고 보내 주고 붙여 주고 맡겨 주신 또 다른 나인 형제나 이웃이 나보다 더 나은 새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조건 없이 사랑해야 한다.
그리하여 이후로는 그의 믿음의 성장과 성숙을 위해 내가 양보하고 낮아지며 죽어야 한다. 이는 형제 안에 계신 주님을 위하고 또 앞으로 형제 안에 계실 주님을 위하며 그 주님 때문에 내가 나를 드러내지 않는 죽음 즉 이차적인 순교를 하므로 그가 나를 보고 나 때문에 실족하는 일이 없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와 함께하시는 주님이 곧 이웃과 함께하시는 주님이시다. 이웃과 함께하시는 주님께서 이웃이라는 건너편에서 나를 빤히 지켜보고 계시며 이웃을 위하고 대하는 것이 곧 주님께 하는 것이라고 평가하시기 때문이다. 이웃을 보면서 보이는 주님으로 알고 주님께 하듯 형제에게 하라는 뜻이기도 하다.
머리로 사랑하지 말고 주님의 시선과 마음으로 사랑해야 한다. 머리로 사랑하면 상대가 미운 짓을 하면 금방 나도 미운 맘이 들게 된다. 이 사랑은 얼마 가지 못해 무너진다. 자신도 마찬가지이지만 상대방이 쉬 변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주님의 사랑은 상대방의 행위와는 상관없이 측은한 맘이 들고 그를 바라보면 그의 영혼이 불쌍한 마음만 들게 된다.
설령 이웃이 내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를 나의 거울로 여기고 그와 함께하시는 주님을 보고 주님을 의식하며 형제 대하기를 주님을 대하는 것처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앞에서 그의 영혼을 위해 순교의 마음으로 나를 드러내지 말고 죽으라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이 결코 말처럼 쉬운 일은 물론 아니다. 이웃의 영혼을 위한 일도 주께서 은혜 주시고 성령께서 역사하시며 나는 온전히 죽고 순종해야만 가능하다. 이것이 또 하나의 순교이며 진정한 형제 사랑이다.
결국 나에게서 주님이 드러나야 하고 주님이 주인이시니 주님만 보이고 나는 죽는 자아의 순교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 일차적인 순교다. 또한 형제 안에 계신 주님과 앞으로 그와 함께하실 주님을 의식하고 그 주님 때문에라도 삶의 현장에서와 이웃 앞에서 날마다 죽는 순교의 삶을 살아내야만 한다. 이것이 진정한 형제 사랑이며 이차적인 순교다.
이런 순교들이 나에게서 일상화가 되어 있어야 현장에서 물리적으로 순교해야 할 순간이 닥쳤을 때 주님을 위하고 또한 예수 천국 복음 증거를 위하며 자신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육신의 순교도 능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최종 삼차적인 순교다. 이는 온전한 성령의 장아찌가 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주님 때문에 주님을 위해 자아가 죽는 것과 이웃의 영혼을 위한 사랑 때문에 죽는 일차적인 순교와 이차적인 순교가 일상화되어 있는 사람이 삼차적이며 마지막 순교인 물리적 순교도 감당할 수 있다. 순교자의 받을 면류관은 최고의 상급이며 주님의 기쁨이요 자랑이다. 순교는 기독교 믿음의 절정이다.
(198~200쪽)
제 01 장 성령 장아찌
제 02 장 천수답
제 03 장 무거운 짐
제 04 장 소견대로
제 05 장 인생의 몫
제 06 장 법대로 삽시다
제 07 장 안개
제 08 장 안식처
제 09 장 모판
제 10 장 혀
제 11 장 중요한 때
제 12 장 산 자의 하나님
제 13 장 내 것
제 14 장 진정한 가치
제 15 장 세상의 주인공
제 16장 돌이켜라
제 17 장 다르다
제 18 장 죽었노라
제 19 장 증거
제 20 장 씨의 믿음
제 21 장 요한의 실수
제 22 장 섬김의 대상
제 23 장 화석
제 24 장 간절함
제 25 장 보고 듣다
제 26 장 말씀
제 27 장 현대 율법
제 28 장 빈 마음
제 29 장 남발된 은혜
제 30 장 바로와 나
제 31 장 반응
제 32 장 순교
저서
<신앙의 첫 단추>,<하나님의 마음>,<작은 예수의 삶>,<천국의 메아리>,<주님 행복하소서>,<하나님을 만나 보라>,<알파와 오메가>,<지름길로 가세요>,<나는 날마다 죽노라>,<성령의 숙주>,<성령 장아찌>
Weight | 1 lb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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