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에게 크고 강한 나라를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러나 그 나라는 하나님에게 순종하고 옳고 바른 일을 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축복하며 공동체를 약속합니다. 반면에 19장에서는 소돔이라는 한 공동체가 철저하게 멸망당합니다. 흔적도 없이 멸망당합니다. 소돔에는 의인 10명이라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최소한의 공동체조차 없어서 멸망을 당합니다.
이러한 대조를 보면 소돔의 죄악이 무엇이었는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소돔의 죄악은 동성애가 아니라 낯선 손님을 경계하고 학대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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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세계에서는 전쟁에서 승리한 군인들이 패배한 군인들을 성폭행하는 일이 드물지 않았습니다. 고대 세계에서 여자는 매우 비천한 존재였고 그런 의미에서 승리한 군인들이 패배한 군인들을 강간하는 것은 그 패배한 군인을 여자로 취급하여 수치를 주는 행위였습니다. 즉 성욕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권력관계에서 ‘너는 내 밑바닥에 있다.’라는 선언인 것입니다. 소돔 사람들이 두 천사들에게 하려고 했던 것이 이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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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기독교는 종말론, 구원론, 기독론, 신론, 교회론, 그리고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에 관한 첨예한 해석에서 첨예하게 대립하면서도 서로 정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동성애에 관한 문제에서만큼은 아닙니다. 동성애에 관한 성경 해석이 종말론, 구원론, 기독론. 성령론에 관한 해석보다 더 중요하고 근본적으로 사활이 걸린 문제입니까? 그런데 그러한 차이에 대해서는 넉넉하게 받아주고 인정하면서도 동성애에 관한 해석은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전에도 이야기했지만, 혐오의 감정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는 기독교인들이 성경 해석의 문제로 동성애 문제를 풀기 이전에 혐오의 문제를 먼저 풀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혐오의 감정이 개입되어 있으면 그 어떤 해석도 그 혐오의 감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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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적인 성경학자들은 이 창세기 2:18-25절을 근거로 일부일처제라는 이성애적 결혼 제도의 보편성, 혹은 절대성을 이야기합니다. 물론 이 구절들은 결혼 제도의 근간이 되는 구절이고 예수님도 이 구절을 근거로 이혼의 불가함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창세기의 이 구절들을 단지 이성애적 결혼제도에만 국한해 해석하는 것은 상당히 협소한 것입니다. 이성애적 결혼 제도를 포함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은 홀로 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2:18-25절의 핵심 메시지는 사람은 홀로 살지 못한다는 것, 홀로 있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 상대방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정체성 자체는 ‘관계’입니다. 사람의 사람다움, 건강함, 그 생명의 풍성함은 늘 관계를 통해 이루어지고 증진되고 나타나는 것이지 홀로 있는 것으로는 불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2:18-25절의 내용에서 사람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존재(사회적 관계, 공동체적 관계)라는 것이 핵심이지 이성애적 결혼 관계가 핵심 메시지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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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애적 결혼 제도에 따른 가족도 그 안에서 서로에 대한 폭력과 무시, 무책임, 착취 등이 빈번하다면 그 가족은 하나님의 공동체적 속성을 드러내지 못할 것입니다. 오히려 파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소위 세상에서 결손 가정 혹은 비정상적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가족 형태에서 돌봄과 사랑과 책임이 있다면 그가족은 하나님의 공동체적 속성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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