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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산상수훈(마 5-7)의 역사적, 문예적, 신학적 주해서이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산상수훈이 자리하고 있는 유대 지혜문헌과 그리스-로마 미덕 전통과 두 전통의 중요한 신학적이고 존재론적인 질문인 인간의 번영(flourishing)이라는 맥락에서 산상수훈을 해석한다. 이 책을 읽는 많은 사람들이 산상수훈 본문의 의미를 다루는 주석 부분에 우선적 관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의 2부(6-11장)는 독자들이 언제든 확인하고 사용할 수 있는 주석적 자료를 제시한다. 하지만 이 주석만을 소화해서는 산상수훈을 풍성하게 읽을 수 없다. 이 책의 1부(1-5과)는 산상수훈을 제대로 해석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준다. 그림을 그릴 때 먼저 밑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그림을 완성해 가듯이, 이 첫 다섯과는 산상수훈의 전체 밑그림을 보여준다. 산상수훈을 경치 좋은 산으로 비유하자면 이 첫 다섯 장은 산상수훈을 오르는 안내 지도가 되어준다. 등산을 마치면 넓고 큰 평지에 내려오듯이 마지막 12과(3부)는 산상수훈이 인간 번영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구속사역의 목적이라는 것을 설명한다. 이 책의 목적은 단순히 주해를 위한 주석일 뿐만 아니라 산상수훈을 전체로 읽는 방법과 산상수훈의 통합된 신학적 해석을 제시하는 것이다. 또한 이 책은 마태복음 5-7장 본문의 메시지를 역사적 배경, 문예적 형식, 그리고 신학적 주제에 맞추어 주해한다.
[출판사 리뷰]
이 책은 산상수훈에 대한 단순히 주석서를 뛰어 넘어 산상수훈을 전체로 읽는 방법과 산상수훈의 통합된 신학적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전체 산상수훈 읽기의 한 방법으로 ‘인간 번영’이라는 해석의 툴을 제시하고 있다. 인간번영은 산상수훈이 말하고자 하는 신학적 또는 실천적 의미에 대한 답인 동시에 산상수훈의 거의 모든 곳에서 의미가 통하고, 독자들의 유익이라는 가장 높은 목적을 성취하는 종합적 해석 방법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1-5장은 그 비전을 논증과 설명으로 명확하게 표현하고, 12장은 그 토론을 완전하게 갈무리하고 있으며, 6-11장은 같은 질문을 요점으로 주해하는 종합스케치를 그려내고 있다.
저자는 인류가 항상 직면하는 가장 큰 형이상학적 질문, 즉 어떻게 우리가 인간의 참된 번영(flourishing)을 경험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기독교의 답이 산상수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게 기독교의 실존적 문제에 대한 현실적인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행복, 축복, 샬롬이 무엇이고 어떻게 그것을 얻을 수 있고 유지할 수 있는가? 물론 산상수훈만이 신약성경 혹은 전체성경에서 이 질문을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형이상학적 질문은 성경 전체 메시지의 중심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상수훈은 이 메시지의 진원지요, 동시에 성경이 주는 답변의 최전선이라고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기독교 역사에서 몇몇 산상수훈의 해석들이 위와 같은 형이상학적 문제를 부분적으로 다루고 있지만, 인간 번영이라는 관점으로 산상수훈 전체를 통합해 읽는 방식은 없었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산상수훈에서 진정한 인간의 번영은 오직 우리가 성령으로 힘입어 그의 계시된 아들 예수님을 통하여 아버지 하나님과의 교제할 때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 번영은 하나님의 공동체 혹은 하나님 나라 안으로 제자들을 들어가게 하는 신실하며 마음 깊은 곳에 이르는 전체 인간의 제자됨(whole-person discipleship), 즉 전체 인간이 예수님의 가르침과 삶을 따르는 것으로 경험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번영은 하나님께서 최종적으로 이 세상에 그의 통치를 확립하실 때, 즉 완성된 종말의 때에 완전히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예수님의 삶을 그들의 삶으로 따르는 자들은 이 세상에서는 고통을 경험할 것이지만, 이 고통은 이 참된 번영을 현재도 누릴 수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한 방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입장이다.
특히 저자는 인간을 번영으로 인도하는 미덕과 하나님의 나라는 상호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강조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에서는 산상수훈을 미덕 혹은 인간 번영중심으로 읽도록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주제들, 특별히 전체성(wholeness)을 통한 번영을 이해하는 것이 산상수훈의 신학을 가장 잘 이해하고 그 의미의 정상에 오르는 명확한 발판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독자들에게 큰 유익을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창세기 1-11장에서 하나님은 그의 인류를 향한 특별한 사랑의 정점으로 만물을 창조하셨다. 그러나 인류는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를 사랑하는 것에서 실패하고 마음과 가슴을 어둡게 하여 궁극적으로 죽음을 초래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시작으로 그의 후손을 통하여 이 상태를 뒤바꿀 수 있는 신비하고도 힘든 장기 계획을 세운다. 구약의 신학은 이 구속과 회복이 이루어지는 다양한 성경적 이야기이다. 이 긴 이야기가 일관되게 말하는 것은 하나님은 신실함과 사랑의 성품을 가지신 분이라는 것과 그에 반해 인류는 끊임없이 주기적으로 믿음과 사랑 없는 행위를 해왔다는 것이다. 역사서와 예언서의 큰 소망은 하나님께서 최종적으로 하나님과 인류를 옳은 관계로 회복하시며 에덴동산을 회복하여 잃어버렸던 번영의 삶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첫 창조 때에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존재했던 샬롬 또는 평화를 하나님께서 회복하실 것이다.
-50쪽
예수님에 관한 학자들의 논쟁 중 의견 일치를 이루는 몇몇 아주 중요한 것들이 있다. 그중 가장 큰 일치를 이루는 것이 역사적인 예수가 하나님의 나라에 관해 설교하고 가르쳤다는 것이다. 그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그를 따르던 자들이 진정으로 그를 따랐는지, 그리고 그가 왜 죽었는지에 대한 모든 것들이 논쟁의 대상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통치 또는 나라에 관해 정기적으로 가르치고 설교하셨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공관 복음서 모두 이 사실을 분명히 밝힌다.
-145쪽
예수님이 산상수훈과 마태복음에서 주는 미덕의 비전은 특정한 색, 모양, 소리 및 느낌을 가지고 있다. 지배적인 색조와 곡조는 의심 할 여지없이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사랑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기독교의 위대한 메시지이자 비전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서로에 대한 그들의 사랑으로 세상에 알려져야 한다(요13:35). 본문에 예수님이 인용한 레위기19:18은 마 19:19; 22:39;야 2:8(“왕”의 법)을 포함하여 신약 성경 전반에 걸쳐 여러 곳에서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사도 바울은 같은 감정과 같은 비전을 주창하면서 가장 초기의 기독교 신학을 말한다-우리가 추구해야하는 가장 크고 가장 중요한 진리는 서로 사랑하라는 실천적 진리, 즉 율법의 참된 성취이다(롬13:9-10; 갈 5:14). 유대교에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은 “종교와 국경을 넘어서는 보편적 유효성”을 갖는 독특하고 새로운 것이다. 이는 그의 백성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가장 높은 수준의 요구이다. 그러므로 사랑-심지어 원수에 대한 사랑-을 더 큰 의의 최종 예로 선택한 것은 단순한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모든 가르침과 신약의 큰 주제와 일치하는 의도된 것이다.
-278쪽
주기도문의 첫 절반의 내용은 중첩되는 세 개의 간구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두 “당신의 뜻이 하늘에 있는 것 같이, 땅에도 있을 지이다”라는 표제어로 요약된다. 마태복음 6:9-10은 종종 세 가지 간구로 취급되지만, 세 가지 평행하는 동사가 하나의 삼중구조 기도를 구성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좋다. 즉, 첫 세 가지 간구들에는 중대한 상호 중첩이 있으며 한 가지 일관된 개념으로 응집된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 받는 것(영어 전통에서는 “신성하게 됨”), 그의 나라가 임하는 것, 그리고 그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은 어감상 미묘한 차이가 있지만 동일한 간구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통치가 완전히 실현되기를 갈망하는 것으로 요약 할 수 있다.
-306쪽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사람들이 모든 것을 한데 모아 그들 스스로를 위해 공급하며 하나님을 떠나 살기를 구할 때 그 결과는 그들이 구했던 평화가 아니라 오히려 불안이다. 즉, 6:22-24의 탐욕에 대한 경고와 6:25-34의 불안에 대한 권고 사이에는 유기적인 연관성이 있다. 탐욕은 불안을 야기한다. 세상적 보물을 쌓는 것은 하나님을 향하지 않은 마음이며 역설적이게도 평화를 주지 않는다. 그러나 꽃들과 새들처럼 사는 사람들은 세상의 재정적 관점에서 볼 때 어리석은 자들이지만 불안에서 자유로운 자들이다. 그들은 첫 번째로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들의 모든 필요를 불안함 없이 얻는다. 모든 불안의 원인이 욕심이라는 말은 아니다; 실제이든 상상이든 다른 많은 불안의 요인들이 있다.31 그러나 탐욕은 예수님이 초대하는 인간 번영과는 반대되는 이중-영혼의 불안에 필연적으로 빠지게 한다.
-345~346쪽
부활승천하신 구세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교회와 예수님의 제자들은 현재 그러나 아직 온전하지 않은 인간 번영의 경험으로 그들을 인도하는 세상에 존재하는 한 방식으로 초대된다. 하나님은 세상을 그의 창조물들을 위한 생명과 평화의 장소로 창조하셨으며 그들이 세상에 번영을 가져오는 일에 참여 할 수 있도록 힘을 북돋아 주신다. 예수님은 청중들을 다가오는 그의 번영과 생명의 나라로 초대하는 지혜자이자 왕이다. 산상수훈이 이 메시지의 중심에 있다. 어떤 학자가 말한 것처럼, 모세의 율법은 유대 민족의 역사를 형성했지만, 그에 못지 않게 그리고 그보다 더 “산상수훈은 그 안에 하나님의 백성의 역사, 우리의 개인적인 역사,
그리고 모든 인류의 역사를 창조하고, 인도하고, 변화시키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423~424쪽
1부 오리엔테이션
1. 산상수훈의 백과사전적 배경 · 42
2. 마카리오스: 비아티튜드를 지배하는 마카리즘 · 70
3. 텔레이오스: 산상수훈 전반에 걸친 전체성 · 105
4. 산상수훈의 일곱 가지 주요 용어와 개념들 · 128
5. 산상수훈의 구조와 마태복음 내에서의 위치 · 151
2부 주석
6. 마태복음 5:1-16 · 192
7. 마태복음 5:17-48 · 235
8. 마태복음 6:1-21 · 287
9. 마태복음 6:19-34 · 325
10. 마태복음 7:1-12 · 347
11. 마태복음 7:13-8:1 · 369
3부 신학적 반추
12. 산상수훈과 인간 번영 신학 · 396
“많은 학자들이 산상수훈을 이해하기 어려워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산상수훈에 대한 기독교의 해석 역사에 기여해 왔다. 페닝턴은 이 예수님의 가르침 모음집을 인간 번영의 지혜 전통과 미덕 윤리 전통에서 해석하는 일을 이루어 내었다. 내가 동의하지 않는 부분에서 조차 나는 산상수훈을 인간 번영의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그의 논리적이고 선명한 설명을 통해 배움을 얻었다. 이 책은 강의실에서 뿐만 아니라 설교자들을 위한 탁월하고 오래 각광받는 자료가 될 것이다.”
– 스캇 맥나이트, 노던 신학교(Scot McKnight, Northern Seminary)
“산상수훈에 대한 또 다른 책이 필요한가? 그렇다, 왜냐하면 이 책과 같은 강점들, 선명성, 파토스, 그리고 통찰력을 갖춘 책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은 수세기에 걸친 많은 전통적 읽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책은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성경을 해석 한다. 이 책은 산상수훈 읽기의 목적이 개인의 인격적 변화임을 일깨운다. 이 책은 균형 잡혀 있고, 해석학적으로 풍성하며, 학문적이면서도 목회적이고 신학적인 사용에도 유용하다. 다양한 층의 모든 독자들이 페닝턴의 주해와 때로는 고지식한 씨름을 통해 상호 소통하며 유익을 얻을 것이다.”
– 로버트 W. 야부르, 커버넌트 신학교(Robert W. Yarbrough, Covenant Theological Seminary)
“산상수훈에 대한 분별력 있고 읽기 수월한 주석이다. 이 주석의 초점은 산상수훈이 그려주는 참된 인간 번영의 실현 방법에 대한 상세한 읽기 방식에 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페닝턴의 주석은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주목할 만한 다양한 시사점들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은 산상수훈 연구에 창의적이고, 실질적이며, 가치 있는 공헌이다.”
– 브랜든 D. 크로우, 웨스트민스터 신학교(Brandon D. Crowe,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
Weight | 1.5 lb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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