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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신학자이자 변호사, 활동가였던 윌리엄 스트링펠로우의 저작. 소책자 위주로 저작을 냈던 그의 공식적인 첫 번째 책으로 20세기를 대표하는 평신도 신학자이자 활동가인 그의 핵심 문제의식과 통찰들을 잘 담아낸 책으로 꼽힌다. 총 네 개의 글로 이루어진 이 책에서 그는 오늘날 교회의 상황을 진단하고, 교회가 어떻게 복음을 잃었는지, 복음의 차이는 무엇인지, 정교분리라는 현대 사회의 기본적인 규칙이 어떠한 측면에서 복음을 왜곡하는지, 죽음의 세력이 횡행하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그에 따르면 오늘날 그리스도교 교회는 ‘복음’을 따르지 않고 ‘종교’가 되려하고 있으며 이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정치와 종교를 나누려 하는 세상의 흐름과 하느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신이 되려 하는 인간 특유의 종교성이 맞물린 결과다. 이에 맞서 그는 교회가 복음의 의미를 다시 재고하고, 말씀 선포와 성찬을 포함한 교회적 실천을 통해 이를 되새기며 개인과 사회를 아우르는 세상 전체에 그 생명을 퍼뜨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본문 뒤에는 스트링펠로우 사상의 핵심을 파악할 수 있도록 로완 윌리엄스가 해설한 글과 그의 생애에 한 설명을 배치해 좀 더 입체적인 독해가 가능하게 했다. 출간된지 60년 가량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영미권에서는 끊임없이 재출간되고 있는 이유는 아마도 그의 문제의식과 진단이 여전히 강한 호소력을 발휘하기 때문일 것이다. 여러 일로 인해 교회가, 그리스도교 신앙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는 요즘, 아주 근본적인 의미에서 참 가톨릭 신자이자 프로테스탄트 신자였던 스트링펠로우의 목소리는 우리를 둘러싼 세상과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고 신앙인으로서 거듭나게 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출판사 서평]
신앙은 사적인가? 공적인가?
복음과 세상은 어떠한 관련을 맺고 있는가?
오늘날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가?
책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순전히 논쟁을 일으키기 위함은 아니며, 내 견해를 과신해서도 아니다. 논쟁을 일으키는 것은 이 책에 담긴 기본적인 확신, 즉 신앙은 원칙적으로 지극히 사적인 문제일 뿐만 아니라 지극히 공적인 문제라는 확신 때문이다. … 나는 그리스도교의 참됨, 그리스도교에서 전하는 바가 내 삶에 미치는 영향, 즉 변호사로서 하는 일과 정치 참여, 내 인격적인 삶, 내 사생활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이는 종교가 다른 사람들의 삶과 경험,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과 내가 사적으로나 공적으로나 맺는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믿을 때만 가능한 일일 것이다. 내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미국의 종교는 사실상 무신론이거나 불가지론이다. 종교는 하느님과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실제 삶과도 거의 관련이 없다. 종교와 관련이 있는 것은 오직 종교뿐이다. … 교회들, 특히 개신교 교회들은 복음보다는 종교에 몰두하고 있다. – 본문 中
평신도 신학자이자 변호사, 활동가였던 윌리엄 스트링펠로우의 저작. 소책자 위주로 저작을 냈던 그의 공식적인 첫 번째 책으로 20세기를 대표하는 평신도 신학자이자 활동가인 그의 핵심 문제의식과 통찰들을 잘 담아낸 책으로 꼽힌다. 총 네 개의 글로 이루어진 이 책에서 그는 오늘날 교회의 상황을 진단하고, 교회가 어떻게 복음을 잃었는지, 복음의 차이는 무엇인지, 정교분리라는 현대 사회의 기본적인 규칙이 어떠한 측면에서 복음을 왜곡하는지, 죽음의 세력이 횡행하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그에 따르면 오늘날 그리스도교 교회는 ‘복음’을 따르지 않고 ‘종교’가 되려하고 있으며 이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정치와 종교를 나누려 하는 세상의 흐름과 하느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신이 되려 하는 인간 특유의 종교성이 맞물린 결과다. 이에 맞서 그는 교회가 복음의 의미를 다시 재고하고, 말씀 선포와 성찬을 포함한 교회적 실천을 통해 이를 되새기며 개인과 사회를 아우르는 세상 전체에 그 생명을 퍼뜨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본문 뒤에는 스트링펠로우 사상의 핵심을 파악할 수 있도록 로완 윌리엄스가 해설한 글과 그의 생애에 한 설명을 배치해 좀 더 입체적인 독해가 가능하게 했다. 출간된지 60년 가량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영미권에서는 끊임없이 재출간되고 있는 이유는 아마도 그의 문제의식과 진단이 여전히 강한 호소력을 발휘하기 때문일 것이다. 여러 일로 인해 교회가, 그리스도교 신앙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는 요즘, 아주 근본적인 의미에서 참 가톨릭 신자이자 프로테스탄트 신자였던 스트링펠로우의 목소리는 우리를 둘러싼 세상과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고 신앙인으로서 거듭나게 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종교 부흥이 다원주의 사회인 미국의 이념적, 종교적 뿌리를 드러낸 현상이라면, 개신교가 무비판적으로, 너무 쉽게 저 부흥을 후원했다면 그 부흥이 사그라든 지금 개신교는 살아남을 만한 신앙, 고결함, 체력, 유효성을 과연 갖고 있는가? 종교 부흥에서 비롯된 좌절, 실패, 혼돈 이후 이 사회에서 (저 종교 부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종교 부흥이 확장되는 데 기여한) 개신교는 개인의 삶이나 공적인 삶의 영역에서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무엇을 대변할 수 있을까? 종교 부흥에 앞서 자본화되고 대중화되고 상품화된 이단들을 너무나도 손쉽게, 무비판적으로 지지함으로써 개신교 교회들에 생긴 구멍은 무엇일까?
-p.15.
전도라는 사명이 교회 밖이 아니라 교회 안을 향하고, 교회 생활의 핵심이 예배가 아니라 복음을 배우는 것이 되어버린 현상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전해야 할 곳은 세상과 그곳의 평범한 공간들이다. 회중은 하느님의 말씀을 공적으로 기념하고 찬미하기 위해, 달리 말하면 예배하기 위해 복음화된 이들의 모임이다. 저잣거리가 아닌 회중이 복음 전도의 대상이 될 때 세상과 예배당에는 입에 발린 말만 떠돌게 된다. 이러한 현실에서 성직자와 평신도의 관계는 모호하고 혼란스러우며 과민한 상태가 된다. 평신도는 암묵적으로 성직자를 자신과 마찬가지로 복음화되어야 할 존재로 취급하고, 성직자는 평신도를 암묵적으로 이교도 취급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상황에서는 참된 복음화(전도)도, 예배도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그리고 성직자와 평신도들의 시선에서 세상은 사라진다.
-p.61~62.
온전한 삶, 세상에서의 삶과 교회에서의 삶이 상호침투하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삶의 표지다. 때때로 어떤 이들이 주장하듯 그리스도인의 삶의 특징이라고 말하는 옷, 식생활, 개인 윤리 같은 외적인 모습은 표지가 아니다. 그리스도인이 지닌 힘, 혹은 능력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점에 있다. 그리스도인은 교회에서 찬미하고 기념하는 하느님의 말씀이 이 세상에서, 이미 자신과 함께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은 현실주의자다. 그는 자신이 바라는 대로의 세상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바라본다. 그러한 세상을 보고 부끄러워하거나 회피하지 않는다. 현실을 얼버무리거나 무시하지 않는다. 세상으로부터 숨거나 현실을 부정하거나 위장하려 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 빛뿐만 아니라 어둠이 있음을 안다. 그리스도인은 전쟁과 질병, 가난, 고통, 탐욕, 증오가 있음을 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평화와 건강, 안전, 사랑과 용서가 있다는 것도 안다. 그리스도인이 알지 못하거나 두려워하거나 부인해야 하는 극단적인 인간 경험이란 없다.
-p.94~95.
일상에 임한 하느님의 말씀, 세상에 임한 하느님의 말씀을 분별하는 은사를 받은 교회,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세상 가운데 세상을 섬길 수 있는 근본적인 자유를 지니고 있다. 하느님의 말씀이 모든 곳에 있기에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모든 곳에서 자유를 누린다. 세상이 기다리는 분이 이미 오셨으므로 누구도 그 자유를 제한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그 자유를 실현하는 것, 그 자유를 바탕으로 이미 성취된 세상을 섬기는 일은 사람들이 통념적으로 알고 있는 자선charity, 이른바 ‘선한 일’,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이 아니다. 이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이스트 할렘과 그 밖의 여러 지역에서 나는 많은 자선 단체를 봤다. 이스트 할렘에는 수많은 사회복지사, 자원봉사단체, 정부 기관이 활동하고 있다. 모두 진심으로 자녀 양육, 결혼 생활 상담, 구직활동 돕기, 비행과 탈선 예방, 재활 치료, 주택 지원, 세입자 보호 등 주민을 돕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나는 그들의 활동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증언과 섬김은 그러한 ‘선한 일’과 구별되어야 한다. 한 사람이 다른 누군가에게 ‘선한 일’을 한다는 생각이 지닌 가장 커다란 위험은 이웃과 마주한 가운데 어떠한 결단을 내릴지, 어떠한 행동을 할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그러한 생각이, 결국은 그러한 생각을 하는 자기가 하느님의 자리에 오른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위한 자신의 행동이 ‘선하다’는 주장은 사실상 자신의 행동이나 결정을 하느님이 어떻게 심판하실지 이미 알고 있다는 주장과 다를 바가 없다. 이는 교만이다.
-p.113.
해설: 성서적 인간이 된다는 것
윌리엄 스트링펠로우의 생애
윌리엄 스트링펠로우 저서 목록
“스트링펠로우는 칼 바르트의 글을 현실에서 구현해낸 인물이었다. 난 언제나 그를 닮고 싶었다.”
– 스탠리 하우어워스 (신학자, 듀크대학교 명예교수,『교회의 정치학』, 『신학자의 기도』, 『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의 지은이)
“스트링펠로우는 헌사도, 자신을 기념하는 어떤 무엇도 원하지 않았다. 자신의 흔적을 세상에 남기려는 마음도 없었다. 그의 글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그를 영원불멸의 영웅으로 만들려는 감상주의나 욕망에서 일어나는 행동이 아니다. 죽음이 거리낌 없이 활보하는 시대, 모든 생명체, 심지어는 지구의 생명마저 요구하는 이 시대가 그의 지혜를 요구한다. 20세기 어떤 사상가도 스트링펠로우만큼 저 폭력의 거대함을 이해하지 못했고 이에 움츠러들지 않는 복음의 생명을, 복음의 필요성을 보지 못했다.”
– 월터 윙크(신약학자, 『사탄의 체제와 예수의 비폭력』, 『사탄의 가면을 벗겨라』의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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