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사사 시대를 가리켜 “각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던 시대”라고 말한다. 자기 생각이 판단의 기준이 되는 것이 사사 시대의 특징이었기 때문이다. 사사 시대에 대한 이런 성경의 평가가 낯설지 않은 이유는 우리 또한 자신의 생각이 판단의 기준이 되어 버린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사기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는 전성민 교수가 오랜 시간 사사기를 연구하고 가르쳐 온 결과물이 그대로 담겨 있다. 그는 히브리어 원문을 기준으로 개역개정판과 새번역, 공동번역 등을 비교하고 여러 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참조하여 사사기 본문의 본래 의미를 찾아 간다. 따라서 사사기 본문 흐름에 맞춰 이 책을 읽어 나가는 것만으로도 사사기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사사기 이해는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과 크게 다르지 않은 오늘 우리의 모습을 보게 한다.
사사기를 읽는 것은, 믿음의 영웅 이야기가 아닌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읽는 것이다!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21:25).
사사기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이 말은 왕이 없어 각자 자신이 보기에 옳은 대로 행했다는, 즉 자신이 왕이었다는 말과 같다. 왕은 자신이 욕망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역사를 볼 때, 왕에게 주변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을 이루는 도구요 통로일 뿐이었다(삼상 8:11-18). 물론 성경이 말하는 참된 왕은 그렇지 않다.
물론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는 왕 노릇이 그렇게 노골적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사사기 어떻게 읽을 것인가』는 조금 다른 표현을 통해 사사 시대의 특징을 포착한다. “신앙의 이름으로 포장된 욕망의 시대”라는 부제가 바로 그것이다. 이런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욕망을 추구하되 그 천박한 민낯을 드러내지 않는다. 대신 신앙의 이름으로 그 욕망을 포장한다. 개인의 욕망을 하나님의 비전이라는 이름으로 속인다. 남을 속일 뿐 아니라 자신까지 속인다. 사사기를 열면 이렇게 신앙의 이름으로 자신의 욕망을 포장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소심한 줄로만 알았는데, 권력을 맛본 후 감춰진 폭력성과 욕망을 드러내며 함께했던 사람들을 동역자가 아닌 동원 가능한 도구로만 여기는 기드온, 주변 사람들의 무시와 멸시로 공동체 주변부에 틀어박혀 있다가 어느 날 찾아온 입신양명의 기회를 붙잡기 위해 하나님마저 출세의 도구로 삼는 입다. 그런데 이것을 과연 이들만의 모습이라 할 수 있을까?
사사기를 읽으면 한국 교회의 상황이 겹쳐진다는 말을 많이 한다. 사사기를 이해하면 이해할수록 사사기의 이야기로부터 제3자가 될 수 없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사사기 어떻게 읽을 것인가』와 함께 사사기를 읽어 나간다면, 믿음의 영웅 이야기가 아닌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읽는 경험을, 우리가 사사기를 읽어 내려가는 것이 아닌 사사기가 우리를 읽어 내려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28절 이하에 나오는 시스라 어머니의 말은 아들을 걱정하는 애처로운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 주며 시작한다. 그러나 이내 패전한 적국의 여자들을 “자궁”이라고 부르며 사물처럼 대하는 가나안 문화의 사고방식을 시스라 어머니의 말을 통해 접하게 된다(30절; 아래 주해 참조).…구체적인 사고방식과 행동에 있어서도 하나님 백성은 주변의 가나안 문화와 달라야 했다. 한 문화의 사고방식은 그 사회가 지닌 신에 대한 이해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가나안을 쫓아내라 하시고 그들과 종교적인 교류를 하지 말라고 하셨다.
_드보라의 노래(5장) 중에서
7:1-8은 여호와께서 기드온과 함께 전쟁에 나선 3만 2천 명 중 300명만을 남기시는 이야기다. 흔히 이 남은 300명을 기드온의 “삼백 용사”라고 부른다. 하지만 본문은 어디에서도 이들을 “용사”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 300명은 이스라엘이 스스로 자신을 구원했다고 말할 수 없게 만드는 규모였다. 이 사건을 정예 용사 300명을 선발한 것처럼 이해하는 경우가 있으나, 이런 이해는 본문의 주제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남은 300명은 그들에게 있는 어떤 바람직한 특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큰 규모의 군대를 자랑하는 미디안과 싸우기에는 말도 안 되는 매우 작은 수라는 점이 중요하다.
_미디안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기드온(7:1-8:3) 중에서
공식적으로 왕의 지위를 차지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가 누리게 된 부요함은 결코 왕의 부요함에 뒤지는 것이 아니었다. 이런 점에서 미디안의 왕복이 언급된 것은 아주 인상적이다. 왕이 되라는 제안을 거절했지만, 기드온은 실제적으로 왕의 권세를 요구한 셈이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것, 특히 지도자들의 그런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말은 맞으나, 행동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뿐이다. 맞는 말도 바른 행동을 이끌지 않고 위선과 욕망이 묻은 행동을 감출 뿐이다. 하지만 감춰진 욕망은 금세 드러나고 만다.
_왕의 권력을 누리는 기드온(8:22-28) 중에서
기대 속에 선택받고 부름받았으나 개인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바람에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길이 된 이야기는 삼손의 이야기만도 이스라엘의 이야기만도 아닐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힘으로 자기 이익만 추구하다 이제는 조롱거리가 되어 버린, 그래서 무너지는 것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세우는 길만 남은 오늘날 한국 교회의 이야기가 아닐까 두려울 뿐이다. 하나님이 삼손의 욕망을 통해서도 섭리하셨지만, 그 욕망에 대한 책임은 철저히 삼손이 감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_삼손의 마지막(16:28-31) 중에서
하나님이 왕이 아닌 시대에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은 힘없는 여인들이었다. 하나님의 통치의 부재가 왕이 되고 싶어 하거나 스스로 왕이라고 생각하는 힘과 지위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리 나쁜 상황이 아닐 수도 있다. 자신의 뜻대로 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힘과 지위가 없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통치의 부재는 그들을 위해 공평과 정의를 이루어줄 분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나님이 왕이 아닌 시대의 약자들은 그 시대의 악함을 자신의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_이곳은 가나안 땅이더라(21장) 중에서
칠흑 같은 사사기 이야기가 끝나고, “사사들이 통치하던 시대”의 이야기로 소개되는 그 다음 이야기는 한 이방 여인의 이야기다. 그 여인은 이방인일 뿐 아니라 남편을 잃은 과부였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남편이 없는 이방 여인은 사회적,경제적으로 가장 취약한 존재였다. 게다가 그의 시어머니마저 과부였다. 남편과 아들을 잃은 한 과부 시어머니와 남편을 잃은 한 이방 며느리의 인애가 새로운 역사를 시작한다. 사사기의 어둠이 깊을수록, 이들 두 과부의 인애 이야기는 밤하늘의 별처럼 더욱 빛난다. 자신의 욕망을 신앙의 이름으로 포장한 힘 있는 남성 종교 지도자들이 아니라, 한 없이 약하게만 보였던 이방 과부의 이야기가 바로 사사기의 어둠 속에서 제시된 희망의 좌표였다. 한국 교회와 사회의 희망의 좌표 또한 그러할 것이다.
_나가는 말: 희망의 좌표 중에서
1. 왜곡, 쇠락, 나락(1:1-3:6)
사소해 보이나 치명적인 내리막(1:1-2:5) | 근본적인 문제(2:6-3:6)
2. 하나님의 의외성(3:7-31)
모범적인 사사 옷니엘(3: 7-11) | 하나님의 의외성: 에훗과 삼갈(3:12-31)
3. 여인 천하(4-5장)
드보라 이야기: 여성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4장) | 드보라의 노래: 하나님 구원과 지파들의 하나 됨(5장)
4. 몰락하는 세습: 기드온과 아비멜렉(6-9장)
부름받는 기드온(6장) |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기드온(7장) | 왕이 되어 가는 기드온(8:4-35) |
세습 권력의 최후(9장)
5. 덫에 걸린 달변(10-12장)
소사사 이야기1: 돌라와 야일(10:1-5) | 입다 이야기(10:6-12:7) | 소사사 이야기2: 입산, 엘론, 압돈(12:8-15)
6. 삼손: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책임(13-16장)
마노아의 아내와 삼손의 출생(13장) | 사랑과 전쟁(14-15장) | 들릴라 스캔들과 삼손의 마지막(16장)
7. 신앙의 이름으로 욕망을 포장한 시대(삿 17-21장)
합력하여 악을 이룸(17-18장) | 하나님이 왕이 아닌 시대(19-21장)
나가는 말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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