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직업의 흥망성쇠를 통해 들여다보는 우리 시대의 자화상
하이브리드 총서 여덟 번째 책으로 기획된 이승원의 「사라진 직업의 역사」는 조선 근대 초기에 생성되어 현대에 들어와 사라진 9개의 직업의 흥망성쇠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오늘날 현재의 삶의 의미를 재조명해보고자 하는 취지로 쓰인 캐쥬얼한 인문교양서로, 오랫동안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연구에 매진해온 저자가 한국의 변천사 속에 숨겨진 사회의 이면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새로운 문제의식이다.
신종 직업은 시대의 변화를 틈타 새롭게 생겨나기도 하고, 또 오래된 직업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라지기도 한다. 근대 초기 우승열패,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구호 속에서 조선인의 직업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해왔다. 때문에 이러한 직업의 변화야말로 근대성의 일부이며, 한 사회의 메커니즘을 보여주는 척도라 할 수 있다. 한 사회의 지배적 욕망의 배치와 경제적 메커니즘을 대변하는 것이 바로 직업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전화교환수, 변사, 기생, 전기수, 유모, 인력거꾼, 여차장, 물장수, 약장수로 대변되는 일명 ‘사라진 직업’들을 통해 당대 사람들의 세세한 일상과 다양한 시선을 공유하고, 근대 문화의 상징적 풍경이라고 할 수 있는 통신, 영화, 젠더, 독서, 모성, 교통, 도시, 의학 등 각 분야의 문제들을 되짚으며 지금 여기 문화와 일상의 지형도가 된 역사를 탐사한다. 그리고 우리네 근대식 삶의 흔적과 무늬를 더듬으며 과거를 통해 오늘날 우리 삶의 모습을 재조명해보려는 시도는 현재를 넘어 미래를 바라보는 또 다른 힘이 된다.
직업 생성과 소멸 속에 감춰진 일상의 욕망과 치열함에 대하여
이 책은 과거에는 있었지만 현재에는 없어진 존재를 통해 현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실상과 욕망을 반추한다. 저자는 어떤 직업이 사라졌다고 해서 그 직업에 대한 욕망이 사라진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 욕망은 어디에서 어디로 흘러갔을까. 무엇이 사라지고 무엇이 남는 것일까. 이 책은 사라진 직업이라고 해서 그것으로 끝이 아님을, 또 다른 형태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면서 대중들의 욕망을 드러내 왔음을 이야기한다. 자연의 신성성을 세속화하면서 성립된 근대화 과정에서 자연적 흐름을 단축하고 싶은 인간의 의지와 욕망이 발현되면서 새로운 직업들을 낳았고 또 소멸시켰듯이, 우리의 직업 또한 사회적 욕망의 배치가 바뀜에 따라 함께 변화되어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욕망의 변화야말로 살아 있는 역사의 치열함 그 자체임을 역설한다.
내가 어떠한 직업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가는 나 자신 자체를, 나아가 이 사회, 이 시대를 설명하는 중요한 척도가 된다. 현재 내가 갖고 있는 직업이 어떠한 욕망을 실현하고 있으며, 나아가 미래 어떠한 욕망으로 발현될 것인지는 이 땅에 발 딛고 사는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사유의 토대이자 역사적 사명의 또 다른 이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