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돌아와 그분의 백성 가운데 속한 사람들을 끝까지 따르겠다고 굳게 결심해야 할 이유는 그렇게 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들을 따르고 그들의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삼고 그들의 백성을 나의 백성으로 삼고자 한다면, 여러분의 정욕을 죽여 없애고 모든 악한 욕구와 성향을 십자가에 못 박아 영원히 죄와 작별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정욕은 다양하고도 강렬합니다.
죄는 매우 사랑스럽고 당연하게 보입니다. 죄와의 결별은 오른쪽 눈알을 뽑아내는 것에 비유될 만큼 어렵습니다. 잠시 동안은 죄를 삼갈 수 있고, 부분적으로는 그리 어렵지 않게 정욕을 억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를 완전히 끊고 가장 좋아하는 정욕을 온전히 포기하는 일은 가슴을 찢는 듯한 아픔을 느끼게 합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자들을 따라가려면 그런 아픔을 감수해야 합니다.
우리는 단지 죄뿐 아니라 세상의 전부를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33)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것을 모두 내버려야 합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이 누리는 영광스런 영적 특권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 포기하겠다는 의지와 각오가 필요합니다. 세상의 것이나 그와 유사한 것이 그런 손실을 메워주기를 바라지 말고 낯선 땅, 곧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땅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아버지의 집과 친족과 고향을 떠나 갈 바를 알지 못한 채 하나님이 보여주실 땅으로 나아갔던 아브라함을 닮았습니다
_67-68p 조나단 에드워즈의 설교 「룻의 결심」 중에서
‘룻의 결심’에서 에드워즈는 그리스도를 붙잡을 때 일어나는 어려움과 손실을 설교했다. 육적인 자들은 그 손실과 어려움 때문에 그리스도를 택하기를 주저한다. 마치 오르바가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간 것과 같다. 그러나 룻은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자기 고향과 백성을 뒤로하고 시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갔다. 나오미가 따라오지 말라고 말려도 극구 따라갔다. 이 역시 구원의 소중성을 진정으로 깨달아 그것을 찾고 구하라는 전도 설교이다. 구원을 찾는 자에게는 구원에 대한 간절함이 반드시 나타난다. 그 간절함이 그리스도께 나아갈 때 생기는 어려움과 고난을 능히 이기게 하고 그리스도를 붙잡게 한다. 또한 이렇게 그리스도를 붙잡고자 하는 자는 과거의 죄된 삶을 뒤로하고 버리게 된다. 우리 시대에는 이러한 전도 설교가 없다. 값싼 은혜, 싸구려 복음의 유행으로 사람들은 가볍게 신앙생활을 하려고 한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제자도를 찾아보기 힘들다. 복음을 잘못 전한 탓이다. 따라서 구원에 대한 갈망조차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는 구원의 필요성, 그리스도의 탁월함, 복음에 있는 하나님의 탁월하신 지혜,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움을 설교해야 한다. 진정한 구원의 은혜가 있는 자들이 그 소중성을 알아 죄를 버리고 구원을 얻기 위해 찾고 구하며 간절함으로 구원을 얻기까지 은혜의 수단 속에 있도록 해야 한다.
_215-216p 김홍만 목사의 해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