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정의로운 분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진노를 풀기 위해 죽으셔야 했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에 특별히 민감해야 한다.
경제적 약자라는 이유로 가난한 사람이 차별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 우리는 영적으로 파탄한 상태였을 때 그리스도의 부를 분에 넘치게 받았으므로, 경제적으로 파탄한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기고 그들에게 우월감을 느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영적으로 받을 자격이 없는 가난한 자로서 하나님의 자비를 값없이 받았기에, ‘받을 자격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꺼이 베풀어야 마땅하다.
– 본문 “1. 복음 중심의 사역” 중에서 p.18그리스도의 희생은 하나님의 정의를 충족한다(롬 3:20-26). 나는 마치 죄를 지어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되는 것이다(사 1:18).
하나님이 죄인을 향해 거룩하다고 선언하시는 것을 신학자들은 ‘칭의’라고 한다. 칭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놀라운 교환이 이루어진 결과다. 예수님은 친히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자신의 의를 내어주셨다(고후 5:21; 벧전 3:18). 예수님은 우리를 자신처럼 거룩하게 만들기 위해 죄 많은 우리처럼 되셨다. … 하나님은 우리에게 용서받을 자격을 갖추라고 하지 않으신다.
죄를 씻기 위해 영적인 업적을 남기라고도, 스스로 깊이 자책하라고도 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은혜로만 용서하신다는 것 (롬 3:23-24), 이것이 복음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사랑할 테니 뭔가를 하라고 하지 않으신다. …
성경적 믿음은 지식이나 열심, 고행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공로를 의지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분을 강하게 붙잡는 우리의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우리를 그분에게로 들어 올리는 그분의 강한 사랑을 의지한다.
– 본문 “6. 복음이란 무엇인가” 중에서 p.128-129, 134
전문용어를 쓰자면,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그리스도에게 ‘전가’하셨다. 전가한다는 말은 지불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넘긴다는 뜻이다.
애초에 우리가 죄인이 된 것도 정확히 이런 것이었다. 아담의 죄가 우리에게 넘어온 것이다(롬 5:12-19). 우리는 아담의 죄가 전가되어 죄인이 되었다. … 우리의 죄가 이런 식으로 그리스도께 전가되어, 그리스도는 자신의 죄가 아닌 우리의 죄로 정죄받아 죽으셨다. … 그러나 이야기는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성경은 세 번째 전가에 대해 말한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5:21). 우리가 의롭게 되려면 우리의 죄가 그리스도께 전가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그리스도의 의가 반드시 우리에게 전가되어야 한다. 그런 후에야 우리가 의롭다는 선고가 가능하다. 하나님은 정확히 그렇게 하셨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생애와 희생적 죽음을 근거로 우리에게 전가된, 하나님이 주시는 의를 받았다.
– 본문 “8. 칭의” 중에서 p.187-188
지역 교회는 세상과 극명하게 남달라야 쓸모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일부러 달라질 필요는 없다. 교회답게 행동하면 된다. 모름지기 교회란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사랑을 비추는 등대다. 교회다운 교회는 세상을 사랑한다.
주관성의 바다에서 자아를 상실한 시대에,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꾸밈없는 복음을 전하는 것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는 일이 있을까? 절망에 빠져 구슬프게 노래하는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예배하며 그분을 높이는 노래를 기쁘게 부르는 것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는 것이 있을까? 영혼을 살찌우는 사랑을 찾아봐도 찾을 수 없는 때, 교회를 새로 찾은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는 것이 있을까? 지역 교회는 세상에 없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줄 때 세상을 가장 사랑할 수 있다.
– 본문 “11. 교회” 중에서 p.265-2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