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만 년 전 동굴에서 시작된 신비로운 괴물들의 이야기
우리는 왜 그들을 만들어냈을까?
프랑스 남서부의 아리에주에는 ‘트루아프레르(세 형제)’ 동굴이라고 불리는 아주 오래된 동굴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1만 5천 년 전 이 동굴에 살던 사람들은 동굴의 벽에 다양한 그림들을 남겼다. 그중에는 머리와 몸통은 수사슴이고 팔다리는 인간인 반인반수의 형상도 있다. 이 괴물의 존재는 무척 흥미롭다. 선사시대의 사람들이 셰이프시프터(Shapeshifter), 즉 모습을 바꾸는 존재를 믿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간과 동물이 섞인 괴물은 트루아프레르 동굴뿐 아니라 세계 곳곳의 선사시대 유적에서 종종 발견된다.
선사시대의 인간들은 수렵과 채집으로 삶을 이어나갔다. 이때 사냥은 필수적이지만 중요한 활동이었다. 그런데 과거에는 동물이 인간보다 더 영리하고, 더 강인하며, 더 빨랐다. 때문에 선사시대 사냥꾼들은 동물에게 잡아먹히지 않고 사냥에 성공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그런데 만약 사냥꾼이 사자나 곰, 늑대가 될 수 있다면 어떨까? 그렇게만 된다면 인간은 피식자가 아닌 포식자가 되어 사냥 성공률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고대의 셰이프시프터는 동경과 욕망, 숭배와 공포에서 태어났다.
매력적이거나 잔혹하거나,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는 기이한 신화와 전설들
고대의 셰이프시프터는 주로 신이나 신의 대리인(무속인, 샤먼 등)에 의해 행해졌다. 변신 능력은 신의 전유물이었으며 평범하고 나약한 인간들은 신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면서 신성(神性)을 향한 인간의 도전이 계속되었고 일부를 쟁취하는 데 성공했다. 마녀나 마법사, 주술사 등이 변신 능력을 구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들을 통한다면 평범한 사람들도 외적·내적 셰이프시프팅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못되고 흉측한 요괴나 정령이 어떤 인간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동물이나 물건으로 바꿔놓는 이야기들이 속속 등장했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신화나 전설, 민담들이 유럽부터 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 등 지역과 민족을 가리지 않고 발견된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우리는 갖지 못한 능력을 갖고자 하는 욕망과 내가 아닌 누군가가 되어 자유를 만끽하고 싶은 갈망이 인류 보편적인 것임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모습을 바꾸는 신비로운 존재들,
상상의 세계를 넘어 문화를 이루다
고대와 중세의 유적과 유물, 문헌 속 셰이프시프터들은 현대 대중문화에 아주 유용한 소재이자 모티프가 되었다. 잔인하고 가혹했다던 루마니아의 블라드 공작과 늑대의 가죽을 뒤집어쓴 사냥꾼은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으로 재탄생되었고, 아름다운 여인의 사랑으로 멋진 본모습을 되찾는 왕자가 나오는 ‘동물 신랑’ 설화들은 〈개구리 왕자〉, 〈미녀와 야수〉 등 하나의 이야기 형식으로 자리 잡았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지킬 박사나 〈해리 포터〉시리즈의 애니마구스처럼 ‘변신’ 자체를 소재로 삼은 경우도 있다.
전 세계의 문화들을 살펴보며 기이하고 신기한 존재들의 유래와 의미를 연구하던 저자는 인류가 이토록 오랫동안 ‘변신’을 추구하고 탐구해왔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꼈다. 그리고 ‘변신’이 선사시대의 동굴벽화에서 중세의 민담과 신앙을 거쳐 오늘날의 문학, 영화, 애니메이션 등 대중문화에서 꾸준히 소비될 수 있었던 것은 변신이 인간의 정체성 추구와 깊게 관련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가족, 국가, 회사 등 어떤 조직의 일원으로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사람들이 그로 인해 혼란과 고민을 겪으며 변신하는 존재에 이끌리고 공감하는 과정이 또 다른 셰이프시프터를 탄생시키는 기반이 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시대와 문화에 따른 각양각색을 변신하는 존재들의 특징과 그에 담긴 의미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과 내밀한 욕구가 보여주는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