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기에 믿는 신앙인가?
믿기에 사랑하는 신앙인가?
공생애 시절 예수는 자비와 용서를 선포했다. 동시에 왜곡된 진리와 일그러진 하나님 나라의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자신의 삶과 존재를 투신했다. 특별히 율법주의에 갇혀 있는 이들을 강력히 비판했다. 예수가 비판했던 당시 율법주의자들은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신심으로 율법을 실천하지 않았다. 그들은 율법준수를 통한 내세의 구원과 현세의 성공을 꿈꿨다. 자신들의 의로움과 우월함을 증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율법을 이용했다. 더 나아가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 병든 자들을 정죄하기 위한 근거로 율법을 내세웠다. 이와 같은 현실 앞에 예수는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참된 자유와 해방, 생명살림의 도구로 사용되어야할 율법이 생명을 억압하고 더 깊은 자기중심주의와 의로움의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당시의 현실 앞에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우리의 종교적 현실은 어떠한가?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순수한 사랑 때문에 그분의 말씀을 실천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통해 무엇을 얻기 위해 종교적 열심을 감행하는가? 엄밀히 말해 종교에 속한 모든 인간들은 무언가를 얻었고 얻기 원한다. 문제는 얻기 원하는 대상이다. 안타깝게도 인간은 자신의 동기를 온전히 파악할 수 없다. 방법은 오직 한 가지뿐, 매순간 자신을 낯설게 바라보며 성찰하는 것이다.
종교적 언어와 관념, 경험에 대한 익숙함으로 수북이 쌓여 있는 먼지를 털어낼 수 있도록 돕는 책이 있다. ‘벼랑 끝에 선 십자가’다. 저자인 이봉규 목사가 이 책을 집필하게 된 동기는 어느 날 문득 사역 속에 자신의 설교와 종교적 실천이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사랑이 아니었음을 깨달은 순간부터였다.
그는 말한다. “개척교회라는 척박한 상황 속에서 5명의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낙심하기보다 성공한 미래를 꿈꿨습니다. ‘아이들이 예수를 믿어 변화되면 세상이 부러워할 만한 소망을 품게 되겠지. 그리고 소망을 하나 둘 이룬다면 주변에 좋은 소문이 퍼질 거야. 그러면 우리 중고등부도 크게 부흥할 수 있겠지? 조금만 더 힘을 내자!’ 이런 생각을 품고 아이들을 열심히 가르치고 섬겼습니다. 사례를 받지 않고 아이들을 위해 2시간 거리의 교회를 주중, 주말 상관없이 오고 갔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주어진 이들을 향한 저의 사랑은 성공적인 미래를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결과를 기대하고 대가를 구하는 ‘거래’와 같은 사랑이었습니다.”
그가 이 책을 통해 던지고 싶은 질문은 단순하다. “사랑하기에 믿고 실천하는 신앙인가? 아니면 믿기에 결과와 대가를 기대하며 실천하는 신앙인가?” 이 목사는 이 책을 통해 바울이 정의한 믿음, 소망, 사랑의 언어를 되짚어간다. 동시에 기독교 신앙이 전하는 믿음, 소망, 사랑의 본질과 신앙의 원리를 다시 세워간다.
성서가 인간을 죄인이라 말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순수하게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은 아닐까? 그래서 예수를 믿고 따른다. 그 사랑을 배우고, 그 사랑을 만나, 온전히 사랑하는 존재가 되기 위해. 그 사랑은 자본의 가치로 바라볼 때는 쓸데없는 사랑인지 모른다. 그러나 마음과 영혼, 정신의 세계 안에서 그 사랑은 우리 영혼을 해방시키고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누릴 수 있도록 돕는 가장 쓸모 있는 사랑이다.
기독교 사랑의 본질을 알고 싶은 이들, 그 사랑을 만나고 다시 회복하고 싶은 이들, 믿음과 소망, 사랑의 관계와 원리를 좀 더 깊게 이해하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