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다. 하나님께서 주목하는 것은 지금 여기서의 일이며, 이 세상과 우리의 변화다. 하나님은 삶의 문제에 관심하신다. 하나님은 죽은 자들의 하나님이 아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이 장례를 위한 신앙, 천당보내기 위한 신앙이 아니다.
부활도 죽음 후에 오는 것으로 말하지 않았다. 부활은 산자들이 체험하고 경험하는 것이다. 하나님도, 부활도, 관념이나 공상 속에 갇혀있지 않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저세상의 이야기 속에 있지 않다. 하나님은 지금 여기 산 자들의 하나님이시며 부활도 산 자들의 부활이다. 죽은 자들의 부활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다. 오늘 우리들이 관심해야 할 것은 산자들의 부활이다.
…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아이들이 큰 풍선 고래를 타고 돌아오는 모습을 볼 때, 필자는 몸의 부활이라는 개념을 확실하게 깨닫는 계기가 됐다. 아이들이 고래 등에 앉아서 광화문 광장으로 돌아오는 것은 단지 그들의 영적 고양을 희망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세상, 다시는 아이들이 죽음을 당하지 않는 세상, 불의한 것들이 밝혀지고 인간의 생명이 가장 존중받는 세상을 바라는 열망을 응축한 것이다. …
성서, 생명과 평화의 눈으로 읽다
성서는 긴 역사를 통해 일어난 삶의 치열하고 다양한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또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호소와 외침들이 녹아 있습니다. 그 하나하나가 갖는 다양한 패러다임과 역동성은 오늘 우리들이 살아가는 사회의 문제를 예시하고 또 조명해 줍니다. 그러한 예시와 조명을 통해 오늘 우리가 처한 역사에서 야훼 하나님의 분명하신 섭리와 경륜의 방향을 볼 수 있게해 줍니다.
성서는 역사의 과정 속에 나타났던 사상, 철학, 문학의 다양한 패러다임을 포함하고 있을 뿐 아니라, 세상의 역사를 운영하시는 하나님의뜻과 그를 따라 기꺼이 목숨까지도 바치는 인간의 신앙적 응답을 풍부하게 담고 있는 인류 최고의 걸작품입니다.
지배자적 관점으로 오염된 성서 바로잡기
이 책은 지배자적 관점에서 왜곡된 성서이해의 틀을 제거하고 민중의 눈으로 성서를 읽어내는 강좌를 담았습니다. 이 강좌를 통해 우리는 바른 성서 신앙, 성서 속 야훼 하나님과 예수님을 새로운 눈으로 만나게 될 것입니다.
…… 이 책은 상당히 진보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강조점은 바로 우리가 확장해 가야 할 공동체성을 살리는 데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현실의 기독교가 모순이 많은 것은 사실이나, 아무 대안도 없이 섣부르게 기독교 신앙과 교회를 폄하하는 독설을 퍼붓는 것은 무책임합니다. 깊은 애정을 가지고 건강한 신앙, 건강한 교회로 재건하여 나가도록 돕는 데 힘써야 할 것입니다. 개개인이 가진 좋은 의지들을 모아서 공동의 힘으로 함께 이루어 가는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교회는 오늘날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며 증언해 나갈 수 있습니다. ……
<저자 서문 중에서>
[저자서문]
유대인들이 죽음 후의 세상을 나타내는 ‘몸의 부활’ 이야기는 얼핏 이해가 가지 않는다. 죽어서 무덤에 장사 지냈는데 그가 다시 몸으로 온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들이 죽지 않고 잠잔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들이 낚시질 하듯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모두 잠자다가 한꺼번에 일어난다는 것은 또 무엇인가? 도무지 알 듯도 하고, 얼른 납득이 가지 않는 몸의 부활에 대한 개념은 항상 혼돈 속에 있는 숙제였다.
희랍의 영혼불멸 사상은 ‘죽은 사람의 시신은 여기서 낡아 썩어질 지라도 그의 영혼이 다른 세계로 가서 참과 영생을 누리게 된다’고 한다. 죽음에 대해서 이렇게 이해하는 것은 지금 기독인들이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죽음에 대한 이해이다. 이런 이해는 논리적으로 타당하고 납득 가능한 설명이다. 예수 시대에 만연했던 희랍사상이나 영지주의는 영의 영원불멸을 믿었다. 영혼불멸은 죽음으로 인해 영이 몸과 분리된다.
그러나 기독교의 부활신앙은 “몸이 다시 사는 것”(사도신조)이다. 부활 후 현현 기사도 예수가 몸으로 부활한 것을 강조한다. 예수를 만질 수 있었고 느낄 수 있었으며, 그는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생선을 먹기도 하며, 마치 성찬식을 하듯이 그것을 떼어 준다. 그 장면은 주님의 부활이 몸의 부활임을 실증한다. 그가 몸으로 현현했다는 것과 일정기간이 지
난 후에 사람들에게서 사라져 버렸다는 것은 ‘몸의 부활’을 강조한다. 당연히 시신이 남았어야 할 무덤이 비었다는 빈 무덤 이야기도 예수의 몸에 일어난 새로운 변화를 말한다.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아이들이 큰 풍선 고래를 타고 돌아오는 모습을 볼 때, 필자는 몸의 부활이라는 개념을 확실하게 깨닫는 계기가 됐다. 아이들이 고래 등에 앉아서 광화문 광장으로 돌아오는 것은 단지 그들의 영적 고양을 희망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세상, 다시는 아이들이 죽음을 당하지 않는 세상, 불의한 것들이 밝혀지고 인간의 생명이 가장 존중받는 세상을 바라는 열망을 응축한 것이다.
그것은 집단의 부활을 상징한다. 만약 단순하게 장례를 치르고 고인과 유가족을 위로한다면 아이들이 날개를 달고, 그들의 영이 몸을 떠나서 하나님이나 천사의 품으로 돌아가는 그림이 적절할 것이다. 그러나 그 아이들이 고래를 타고 몸으로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그것을 보는 모든 시민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희망하는 가장 강렬한 상징이다. 세월호 아이들이 우리에게 몸으로 돌아오는 세상이 이루어지는 것이 성서가 말하는 “몸의 부활”이며, 이것은 개인의 부활이 아닌 집단의 부활, 새 역사의 부활을 뜻한다.
부활은 세상과 이스라엘의 운명이 최종적으로 역전되는 것이다. 구약
예언자들이 몸으로 다시 오는 전통과 세례 요한이나 엘리야가 다시 온다는 전승은 부활한 개인이 몸이 없는 영이 아니라 구체적인 인간의 부활이며, 이는 단지 특별한 개인의 부활이 아니다. 엘리야가 다시 온다는 상징은 불의한 시대를 심판하기 위해서다. 식민지 아래서 약소국이 당하는 착취와 억압은 근본적으로 억울하고 의로운 죽음들을 낳는다. 그러므로 몸의 부활은 그들이 갈취당한 삶을 되찾는 것이지, 한 사람 개인만 살리고 역사와 인간의 삶은 그대로인 채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다. 하나님께서 주목하는 것은 지금 여기서의 일이며, 이 세상과 우리의 변화다. 하나님은 삶의 문제에 관심하신다. 하나님은 죽은 자들의 하나님이 아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이 장례를 위한 신앙, 천당보내기 위한 신앙이 아니다.
부활도 죽음 후에 오는 것으로 말하지 않았다. 산자들이 체험하고 경험하는 것이다. 하나님도, 부활도, 관념이나 공상 속에 갇혀있지 않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저세상의 이야기 속에 있지 않다. 하나님은 지금 여기 산 자들의 하나님이시며 부활도 산 자들의 부활이다. 죽은 자들의 부활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다. 오늘 우리들이 관심해야 할 것은 산자들의 부활이다. 경외서인 빌립복음은 말한다.
주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부활하셨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옳지 않다. .
그분은 먼저 부활하시고 나중에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아 있 는 동안에 먼저 부활을 경험하지 않으면 그들은 죽어서 아무것도 받지 못할 것이다.(빌립복음 어록 19. 79)
그리고 소성리 주민들과 함께 사드반대투쟁으로 바쁜 중에도 선뜻 나 서서 꼼꼼하게 교정을 해준 대구 새민족교회의 백창욱 목사님께 깊이 감사드리며 ‘함께 생각 나누기’ 질문 작성을 도와주신 안성용 집사님께 도 감사를 드린다.
2019년 첫눈 오는 날에
송파구 오금동 강남향린교회에서 김경호 목사가
11 복음서의 문서 자료들
12 십자가의 길, 제자들의 반란3
13 하나님 나라는 자라고 있다
14 하나님 나라는 어떤 세상일까?
15 인간과 세상, 그 존재의 근원
16 하나님, 인간, 세상, 몸의 혁명
17 예수, 수난 받으시다
18 예수, 십자가를 지시다
19 부활신앙의 역사
20 몸의 부활, 성 금요일의 부활
지은 책으로는
『오경-야훼신앙의 맥』,
『역사서-새 역사를 향한 순례』,
『왕국시대 예언자-시대의 아픔을 넘어서』,
『포로기와 그 이후 예언자-위기 속에서 대안을 찾다』,
『지혜문학-신앙의 새로운 패러다임』,
『복음서(상)-역사적 예수와 그의 운동』,
『함께 읽는 구약성서, 신약성서』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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