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상 우리나라 국민의 4명 중 1명은 불면증에 시달린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피곤해 하고 쉬고 싶다고 말하는데 왜 그들은 잠을 자지 못할까?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잠자리가 바뀌었거나 온도가 잘 맞지 않아서, 너무 시끄러워서 등 환경적인 요인이 있을 수 있다. 또한 몸이 좋지 않아서 잠을 못 잘 수도 있다. 또 한 가지 요인은 요즘 들어 더욱 문제가 되는 것들인데 바로 좋지 않은 습관들 때문이다. 뇌를 자극하는 스마트폰을 많이 사용하거나 자기 전에 카페인을 복용하는 것이 불면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사실 치료나 개선이 가능한 것들이다.
이보다 더 심각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원인은 바로 고민, 걱정, 염려, 분노와 같은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감정들이다. 갈등과 불안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의사들은 오늘날 불면증이 증가하는 가장 큰 원인이 스트레스라고 말한다. 우리를 억누르고 있는 마음의 짐들이다. (27쪽)
하루하루의 걱정과 염려가 우리에게 있다. 때로 우리는 그 속에 갇혀서 어찌해야 할 지 모른다. 내 주변에는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사람보다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지금 상황이 너무나 암울해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고 눈 앞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잠 못 이루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염려할 상황이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기도할 상황도 된다.
다윗의 하나님은 다윗의 방패가 되시고, 영광이 되시며, 그의 머리를 드시는 분, 다윗과 친밀한 관계 속에 들어와 계신 분이었다. 다윗이 편히 잘 수 있었던 것은 이런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33쪽)
우리가 처한 상황은 대부분 스스로 어쩔 수 없을 때가 많다. 나에 대해 나쁜 말을 하는 사람도 사실상 막기 힘들다. 그러나 우리 마음 속에 일어나는 전쟁은 끝낼 수 있다. 불안과 걱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할 때 하나님을 기억하라. 의로우신 하나님,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 주권적으로 택하셔서 보호하고 계신 하나님을. 수면제 없이도 편히 눕고 잠잘 수 있을 것이다. (41쪽)
다윗은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면서 다섯 번이나 여호와 하나님을 찾고 있다. 어둠의 수렁에서 하나님을 절박하게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고통 중에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찾는 일이다. 참 뻔한 답인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것을 잊고 살아간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이런 상황에 처하면 하나님보다는 주변의 가까운 친구를 찾아간다. 나를 위로해주고 내 어려움을 공감해줄 누군가를 찾아가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문제 상황에서 도피하거나 잊어버리려고 잠을 자거나 여행을 가거나, 병원을 찾아가기도 한다. 극심한 무기력을 우울증이라는 병으로 진단하여 약을 먹는 것이다. 그러한 방법들은 일시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처럼 보이나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환경에서 사느냐가 아니라, 내가 그 환경에서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 안에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56쪽)
터가 무너질 때 의인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다윗의 친구들은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니 모든 책임을 내려놓고 산으로 도망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보고 있는 모든 터는 무너질 수 있지만 하나님의 터는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터는 언제나 견고하고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다. 우리의 믿음이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께 있다면, 온 세상에 터가 무너져도 우리에게 있어서 달라질 것은 없다. (110쪽)
하나님의 시간이 우리의 시간과 다르고 그분의 방법이 우리의 방법과 다를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이다. 믿음은 우리에게 어려운 상황 뒤에 있는 하나님을 볼 수 있게 하고 그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게 한다. 우리는 그 신뢰에 기초해서 현재의 삶의 태도를 바꿀 수 있다. 우리의 믿음이 약해서, 우리의 이해가 더뎌서 오랜 시간 후에 하나님의 선하심을 인정하게 될 때가 많다. 그러나 꼭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분명한 말씀을 주셨고 역사와 믿음의 선진들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증명하셨기 때문이다. (18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