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 대한 생각을 180도 바꿔 줄 책!
시간의 변화 없이 내 삶은 변하지 않는다.
텔레비전과 스마트폰으로 하루를 날리진 않았는가? 아니면 발에 땀이 나게 바쁘게 살고서는 허탈하지 않았는가? 지극히 짧은 인생이기에 무엇을 위해 살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구체적인 지침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시간을 만들어 그 안에 인간을 두셨다. 시간의 강가에 앉아서 하염없이 시간이 흐르는 걸 지켜볼 수도 있고, 낚싯대를 가져와서 그 시간을 건져 올릴 수도 있다. 건져 낸 시간은 하나님의 시간이 되고, 그러면 질적으로 다른 시간을 살 수 있다.
시간의 변화 없이 내 삶은 변하지 않는다. 시간을 건지려면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달으면 인생이 바뀌고 시간의 배분이 달라진다. 먼저 추구해야 할 것들을 분별하게 된다. 시간의 주인인 하나님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살라고 하시는지를 알면 하나님의 시간표를 살게 된다.
이 책은 인간의 시간과 하나님의 시간이 어떻게 다르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시간을 살 수 있는지 흥미롭게 추적하고 있다. 지혜롭게 사는 법이 하나님의 시간 안에 있다. 하나님은 반드시 당신의 시간 사용을 물으신다. 내 마음대로 썼던 시간이 하나님의 시간 안에서 새롭게 변화되기를 소망한다.
모세는 먼저 우리에게 시간을 계산하면서 살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_시 90:12
지혜로운 사람은 시간을 계산하며 삽니다. 내 인생에 시간이 얼마나 남았나를 기억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 시간의 우선순위를 분별할 줄 압니다. 이 시간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할지를 계산합니다.
저는 앞에서 시간을 건져 내는 것이 구원이라고 했습니다. 내 시간을 건져 낸 사람이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시간의 탁류 속에 떠내려가는 사람을 건져 내는 일입니다. 이 세상의 시간, 인간의 시간, 땅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면 ‘시간’으로 해야 할 일은 사실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입니다. 한낮의 잠 같고 들풀 같으며 안개 같은 인생인데 무슨 일에 그렇게 머리를 쓰고 있습니까? 무엇에 마음을 빼앗기며 살아갑니까?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_ 전 12:7
P 65
이 시대에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름이라도 대충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아는 것은 진짜 아는 것이 아닙니다. 또 그렇게 안다고 해서 제대로 믿는 사람도 없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잘 안다고 생각했고, 하나님을 가장 잘 믿는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보시기에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고, 하나님을 가장 잘 몰랐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하지만 그건 성전도 아니고 예배도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_ 렘 7:4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미 그곳에는 하나님이 안 계신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장소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장소 때문에 시간을 희생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큰 집에 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쏟아 버립니까. 이것이 우리의 패러다임입니다. 왜입니까? 집은 보이고 시간은 안 보이니까요. 돈은 보이고 생명은 안 보이니까요. 믿음 없는 삶이란 공간을 선택하기 위해서 시간을 버리는 삶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시간을 위해서 공간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P 121-122
우선순위대로 일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자 성숙한 인간입니다. 미숙한 사람은 나중에 해도 될 일을 먼저 합니다. 그래서 늘 시간이 부족합니다. 주님은 의식주를 먼저 구하지 말고 하나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라 하십니다. ‘구하라’는 말은 ‘바라라, 찾으라, 갈망하라’는 뜻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라는 것은, 하나님을 갈망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바라고 하나님을 추구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것은 시간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는 사실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나라이자 의입니다. 하나님은 나뉘지 않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의 세 가지 시제이지만, 하나님의 시간은 영원입니다. 그래서 영원이란 개념은 하나님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시간의 억압과 속박에서 해방되는 유일한 길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의식주에 묶이는 것은 시간에 묶이는 첩경입니다. 의식주에 묶이는 것은 나 자신에게 스스로 묶이는 지름길입니다. 나를 추구하는 것은 시간의 속박을 뜻합니다. 왜 우리가 두려워합니까? 이 속박 때문입니다. 이 속박의 올가미 이름이 죽음입니다. 의식주에 묶여 사는 사람은 예외 없이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예수님이 답을 가르쳐 주십니다.
“먼저 하나님을 추구하라. 먼저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라. 먼저 하나님의 의로움을 찾으라. 그러면 모든 것이 풀리기 시작할 것이다. 물론 의식주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그걸 먼저 추구하면 모든 인생이 꼬이기 시작할 것이다.”
명심하십시오.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구원입니다. 나를 먼저 생각하는 것, 의식주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속박이고 죄이고 사망입니다.
P 142-144
예수님의 독특한 점은 바로 사건 속에서 때를 보신다는 것입니다. 사건 속에 감춰진 때의 의미를 드러내서 우리 눈에 펼쳐 보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 일상의 크고 작은 사건들 속에 때와 시간의 의미가 감춰져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시간 인식은 소명 중심, 곧 십자가 중심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_ 요 12:24
십자가는 한마디로 밀알이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십자가는 많은 열매입니다. 십자가는 한 알의 밀이 떨어져 죽을 때 열매 맺는 사건입니다. 밀의 형체가 없어져야 많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 십자가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이제 많은 밀알을 뿌리셔야 할 때라고 생각했으나, 정작 예수님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할 때라고 말씀하십니다.
십자가는 이처럼 시간의 역설입니다. 십자가는 사람의 영광이 절정일 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 영광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십자가는 내 머리에 영광의 관이 씌어졌을 때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 면류관을 하나님 발아래 벗어 놓을 때라고 가르칩니다. 십자가는 내가 이제 마음껏 고개를 들고 활개쳐야 할 때가 바로 한 알의 밀처럼 땅에 떨어져 썩어야 할 때라고 가르칩니다. 십자가는 그래서 인간의 지혜로는 깨달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의지나 결심으로는 십자가를 질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지혜요 하나님의 은혜로만 십자가를 이해할 수 있고 질 수 있습니다.
P 162-163
1
하나님의 시간은 어떻게 다른가?
-시간을 건져 내라
2
하나님은 왜 시간 안에 인간을 두셨을까?
-만사에 때가 있다
3
짧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시간에 겸손하라
4
무엇이 안식하게 하는가?
-쉼 없는 삶의 구원
5
어떤 기도가 기적을 일으키는가?
-믿음이 시간을 거스른다
6
하나님의 시간표를 따르고 있는가?
-인간의 시간, 하나님의 시간
7
무엇을 먼저 할 것인가?
-시간의 우선순위
8
왜 십자가의 자리로 부르시는가?
-십자가와 자유
9
종말의 시간을 어떻게 살 것인가?
-깨어 있음과 분별
10
악한 시대를 어떻게 이길 것인가?
-악을 이기는 기준
11
우리는 왜 하나님과 다른 것을 보는가?
-하나님과 인간의 시간 차이
12
인생을 무엇으로 결산할 것인가
-소명과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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