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관점에서 설교를 보면 작은 변화들이 일어납니다. 성도에게 잘 들리려면 메시지를 어떻게 구성할지, 어떤 방식으로 전달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됩니다. 말씀을 흘려보내 성도들에게 잘 도착하게 하는 메신저로서 설교자의 정체성을 생각하게 됩니다. (p.36)
성도들에게 담임목사님의 말씀은 강단의 설교가 전부는 아닙니다. 목사님이 평소에 보여주는 모습에서도 메시지를 깨닫게 됩니다. 목사님과 일상 속에서 함께 웃고 울고 아파하고 위로하던 순간들이 모두 설교에 연결이 됩니다. 성도들은 담임목사님의 설교를 대형교회 목사님의 설교와 단순 비교하지 않습니다. 논리정연하지 않아도, 세련된 표현이 아니어도 ‘우리 목사님’과 삶을 나누는 말씀이기에 성도들은 기꺼이 듣습니다. (p.39)
말씀을 전하는 입장에서 듣는 성도들의 입장으로 시선을 전환하면 달리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나의 설교는 어떻게 들릴까? 내가 뿌린 말씀의 씨앗이 성도들의 마음밭에 잘 떨어졌을까? 더 잘 들리고 공감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기술적인 접근으로 스피치를 향상하기보다 관점의 전환을 통해 단순하지만 큰 변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목사님도 수월하게 준비하면서 성도들도 더 잘 들리고 이해하는 설교를 할 수 있습니다. (p.61)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사람들에게 전달한다는 점에서 ‘소통’입니다. 설교시간에는 말씀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그 말씀을 듣는 성도, 전하는 목회자와의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을 선포하는 권위를 지니되, 설득과 공감의 방식으로 전달해야 합니다. (p.68~69)
예수님은 뛰어난 스토리텔러이자 커뮤니케이터이기도 합니다. 현재와는 너무 다른 2천 년 전의 커뮤니케이션 환경 속에서 예수님은 전례가 없는 화법으로 대중들을 사로잡았습니다. 예수님은 저술가가 아닙니다. 오직 말로 말씀을 전하셨지요. 비유라는 명료하고 이해하기 쉽고 무엇보다도 짧은, 본질적으로 새로운 형식의 말하기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 말씀의 생명력은 메시지뿐만 아니라 메신저에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커뮤니케이터로서 어떤 메시지를, 어떤 이야기의 방식으로 전했는지 주목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p.75)
강의 중에 한 목사님이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신학교에서 ‘원고에서 벗어나지 마라. 그대로 외워서 할 수 있으면 백 번이라도 연습해서 하고 그게 아니면 차라리 그냥 읽어라’ 이렇게 배웠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는데 틀렸다는 말입니까?” (…) ‘원고에서 벗어나지 말라’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설교하면서 맞닥뜨리는 다양한 상황에 적응할 수 없습니다. 현장 반응을 보며 적절하게 대처하는 유연성이 떨어져 성도들과 소통하기 어려워질 것입니다. (p.83)
음식과 그릇이 어우러져야 맛도 있고 멋도 있게 식사를 할 수 있듯이 설교도 내용과 전달방식을 균형 있게 맞추어야 합니다. (…) 음식의 본질은 맛에 있지만 그릇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설교는 영의 양식이고, 스피치는 말씀을 더 깊이 음미하게 해주는 그릇이기 때문입니다. (p.101)
목사님이 먼저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은혜를 충만하게 받아야 열정을 다해 전할 수 있고 성도들도 동일하게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목사님이 자신의 설교 내용에 충분히 설득되어야 성도들도 설득할 수 있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느낀 감정이 연단에서도 그대로 전달되어야 합니다. (p.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