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송은 ‘부족함이 없는 삶’의 필수 요소이다. 암송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고, 하나님의 생각이 우리의 생각을 빚게 하는 주된 방법이다. 성경 암송은 매일 하는 큐티보다도 중요하다. 우리의 마음을 놀라운 구절들로 채우고 그것들을 묵상에 쉽게 활용할 때, ‘큐티’가 우리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p.20
우리는 충분히 갖지 못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사랑과 베푸심은 무한하다. 하나님의 사랑과 베푸심은 상상 가능한 모든 한계를 초월한다. 하나님 자신이 그런 분이시기 때문이다. p.54
예수님은 전혀, 완전히 두려움이 없으셨다. 왜인가? 자신과 아버지의 관계를 아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시편 23편 1절(“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을 온전히 사신 최초의 인물이다.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와의 연합이 더없이 강했기에 그분은 부족이나 두려움을 절대 알지 못하셨다. 예수님이 우리의 목자이듯이, 그분의 아버지는 예수님의 목자이셨다. 예수님이 두려움을 모르셨듯이, 우리도 그럴 수 있다. p.75
“최악의 상황이 닥쳐도 괜찮아! 최악의 상황이 닥쳐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고 내가 그분의 풍성함 가운데 거할 테니까!”
하나님의 본성과 하나님나라 때문에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과 하나님을 신뢰하는 모든 자는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p.79
그러나 욥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욥은 침묵했으나 하나님에게서 도망치지 않았다. 하나님이 그에게 깊은 갈망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는 시련을 겪는 내내 거듭 외쳤다.
“하나님 앞에 서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하나님께 얘기하고 싶다고요!”
우리가 하나님께 얘기하고 싶다는 이런 갈망을 추구한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야기하도록 허락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 어느 상황이 적절한지 결정하실 것이며, 우리가 끈질기면 하나님을 볼 것이다. 우리의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다. 욥의 경우처럼 겸손하게 하고, 깨우쳐주며, 믿음의 깊이를 더하는 경험이 될 것이다. p.185-186
‘척하기’를 주의해야 한다. 사실 우리가 고통당할 때, 모든 게 괜찮은 것처럼 행동하길 피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중요하다. 믿음과 불평은 서로 배타적이지 않다. 믿음이 강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에게 불평할지 모른다. (중략) 하나님께 말하라! 하나님이 당신의 소리를 들으시게 하라. 하나님은 흥분하지도 않고, 불안해하지도 않으며, 걱정하지도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불평에 화내지 않으실 것이다. 불평은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 한 방법이다. 욥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교훈 하나는 우리가 불평함으로써 하나님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p.196-197
우리가 주님을 위해 뭔가를 할 때 우리의 동기를 점검하는 좋은 방법이 있다. 그 일이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을 때 우리가 얼마나 즐겁게 인내할 수 있는지 보면 된다. 우리는 자신이 누군가를 향한 사랑에서 행동하고 있다고 믿지만 그 사람이 보답하지 않을 때 화를 낸다면, 이것은 우리의 동기가 사랑이 아닌 다른 무엇이라는 뜻이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 우리는 다시 내려놓고 이렇게 말해야 한다.
“주님, 여기 있습니다. 제가 망쳐 놓았습니다. 주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p.234
이것은 예수님과 함께하는 프랭크 루박이나 달라스 윌라드의 하루가 아니라, 당신의 하루여야 한다. p.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