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삶]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요한일서 4장 20절).
뒷소리 잘하고 얌체 같은 짓만 하던 옆집 여자가 주일 아침만 되면 곱게 한복 차려 입고 교회 정문에 서서 천사의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나누는 김 집사가 될 수는 없다. 아니, 겉모습은 그렇다 할지라도 그건 진짜가 아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태복음 25장 45절).
내 이웃에게 나누는 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요, 내 이웃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이것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나 일터에서나 가정에서나 동일한 원칙이다. 교회에서 보이는 얼굴과 직장에서 보이는 얼굴과 가정에서 보이는 얼굴이 같지 않은 우리는 에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일만 달란트 빚진 자와 다를 바 없다.
한 임금에게 일만 달란트를 빚진 종이 도저히 채무를 갚을 능력이없어 아내와 자신들을 팔아야 할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런데 이 종이 엎드려서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곧 빚을 갚겠습니다.”라고 사정하자 임금은 그를 불쌍히여겨 빚을 탕감해 주었다. 감사한 마음으로 자리에서 물러난 종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을 빌려 간 친구를 만나는데, 그는 당장에 친구에 멱살을 잡고 흔들며 빚을 갚으라고 독촉한다. 그리고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애원하는 친구를 붙들어 빚을 갚도록 감옥에 집어넣었다. 이게 바로 은혜받은 우리,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오는 김 집사의 모습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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