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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종인가 노예인가?

$37.00 $25.90

저자/역자 : 머리 해리스/이여진  |  출판사 : 도서출판 이레서원
발행일 : 2023-01-20  |  (147*220)mm 304p  |  978-89-7435-614-9
신약성경은 그리스도인들과 그들 주님의 관계를 묘사하기 위한 많은 방법을 찾는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자녀이고, 그리스도의 제자이자 친구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노예’이기도 하다는 것은 아마도 거의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현대 성경이 ‘노예’라는 뜻이 분명한 그리스어 ‘둘로스’를 ‘하인, 종’으로 에둘러 번역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예제를 혐오하는 현대인들이 생각하기에, 신약에서 노예 이미지를 이용해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과 맺는 이상적 관계의 한 측면을 묘사한다는 사실은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렇더라도, 노예 이미지를 신약에서 빼 버리면 신약의 메시지가 손상된다.
1세기 그리스-로마 제국은 노예제를 기반으로 한 사회였고, 따라서 신약성경이 ‘둘로스’라는 용어로 주님과 그리스도인의 관계를 은유했을 때는 그 당시 노예제가 가지고 있던 특징이 그 안에 포함되었을 것이 당연하다. 머리 해리스는 그리스도의 노예가 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밝혀내기 위해, 1세기 그리스, 로마, 유대의 노예 제도와 이에 대한 신약성경의 태도를 조사하는 것으로 이 작업을 시작한다. 그 과정을 거쳐 그리스도의 노예 됨의 은유를 해설하고 그리스도의 노예가 될 때 참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역설을 제시한다. 이 책은 진지한 성경 연구와 실제적 적용을 위한 통찰력을 제공하는, 성경 신학의 좋은 모델이다.

[출판사 서평]

“노예가 아닌 사람이 있으면 내게 보여 달라.” _ 세네카

스토아 철학자인 세네카는 “노예가 아닌 사람이 있으면 내게 보여 달라. 정욕의 노예인 사람도 있고 탐욕의 노예인 사람도 있고 사회적 특권의 노예인 사람도 있으며, 모든 사람은 두려움의 노예다”라고 고발했다. 요즘 사람들은 자기가 자신의 주인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성공이나 재물, 두려움이나 사랑 같은 무언가의 노예로 얽매여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누구의 노예이며 누구를 위해 살아가야 하는가?

1세기 그리스-로마 제국의 법적·사회적 정황에서 이해하는 신약성경의 ‘노예’ 은유

1세기 그리스-로마 사회에서는 노예제가 당연했으니, 신약의 영적 노예 모티프가 육체 노예에 대한 당대의 관습과 표현에도 한 가닥 뿌리를 두고 있음이 분명하다고 예상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1세기 노예제가 특이할 정도로 복잡하고 각양각색이었음을 감안하여 노예 은유의 의미가 다양할 수 있다고 추정하고, 신약 본문에서 언급하는 노예와 노예제를 지금과는 판이한 그 당시의 법적·사회적 정황에서 엄밀하게 규정한다. 또한 1세기 교회가 당시 노예제에서 어떤 면은 배척하고 어떤 노예 이미지는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하여 그리스도인 삶의 한 측면을 묘사했는지를 연구한다.

‘노예’(slave)라는 뜻인 그리스어 둘로스(doulos)를 왜 현대 성경은 주로 ‘종/하인’(servant)으로 번역하는가?

신약 그리스어에는 영어 단어 ‘하인’(servant)으로 번역하거나 번역할 수 있는 단어가 최소 여섯 개 있다. 그러나 신약의 단어 하나, 즉 둘로스(doulos)는 ‘노예’라는 독특한 의미를 지니고 있고, 이 단어는 신약에 124회 나오고 복합어인 쉰둘로스(syndoulos, ‘동료 노예’)는 10회 나온다. 그러나 영어 성경의 역사에 이상하면서도 획일적인 전통이 있는데, 곧 ‘노예-자유인’ 대조, 죄나 부패의 노예 됨에 대한 언급처럼 문자적인 노예제나 무생물인 어떤 것의 노예 됨이 아니라면, 일반적으로 둘로스를 ‘노예’로 번역하는 일을 피한다는 것이다. 이 이상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까? 어떠한 형태의 노예제이든 보편적으로 혐오스럽게 여겨지기 때문일까? ‘노예’라는 단어에 따라붙는 어감에 대한 우려 때문일까?

‘노예 됨 안에 있는 자유’, ‘노예 됨의 고귀함’이라는 절묘한 역설

기독교의 사유에서는 노예이건 자유인이건 그리스도인은 너나없이 영적으로 자유롭지만, 그래도 그리스도의 노예 즉 ‘자유롭지만, 노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노예가 되기 위해서, 즉 완전히 자유로운 노예가 되기 위해서 죄의 노예 상태에서 벗어난다. 우리는 신자로서 새로운 주인이신 분의 노예가 되기로 결정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자비로우신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있는 노예 됨이다. 1세기에 노예로서 속박받는 삶을 잘 알고 있던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그리스도의 노예’로 불리는 데서 기쁨을 누릴 수 있었을까? 그 칭호가 왜 불쾌하지 않고 듣기 좋았으며, 모욕하는 말이 아니라 고귀한 말로 들렸을까?
이 책은 바울을 비롯한 여러 사도들과 도르가를 비롯한 여러 사역자들의 삶에서 ‘노예 됨 안에 있는 참된 자유와 사랑’이라는 역설을 찾아낸다. 기독교의 자유 안에는 노예 됨이 있고, 기독교의 노예 됨 안에는 사랑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 걷잡을 수 없는 방종이 되지 않고, 노예 됨이 비굴한 예속이 되지 않는다. 초기 교회 성도들은 스스로 그리스도와 동료 그리스도인들의 노예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많은 사람이 복음의 은총을 누릴 수 있게 하고자 했다. 이 책을 읽어 나가는 독자들은 ‘노예’라는 단어에서 떠올렸던 부정적 이미지가 사라지고 ‘그리스도의 노예’라는 별칭이 특권으로 여겨지는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 이 책의 특징
– ‘노예’라는 뜻인 그리스어 ‘둘로스’를 현대 성경 역본들은 어떻게 번역하고 있는지를 조사한다.
– 다양한 고대 문헌을 조사해서 1세기 그리스-로마 제국의 노예제 특징을 연구하고, 지금 우리가 이해하는 노예 개념과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한다.
– 1세기 교회가 당시 노예제에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으로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파악한다.
– ‘노예와 자유’, ‘노예 됨과 소유권’, ‘노예 됨의 특권’ 등 신약에서 ‘노예’ 은유가 갖는 풍부하고 다층적인 의미를 살핀다.
– ‘그리스도의 노예 됨’에 관한 신약성경 본문을 주해하고, ‘그리스도의 노예 됨 안에 있는 자유와 사랑’이라는 역설을 찾아낸다.

이 책에서는 1세기 노예제가 특이할 정도로 복잡하고 각양각색이었음을 감안하여 노예 은유의 의미가 다양할 수 있다고 추정한다. 그렇지만 은유에서 어느 측면이 적절하고 어느 측면이 부적절한지는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가? 저자가 인간-신 관계를 언급하면서 노예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면 노예제 개념에서 흔히 연상되는 통념 타래에 간접적으로 호소하는 것이다. 1세기 노예 용어와 결부되는 평민제도의 정체를 확인하는 데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것을 확인하려면 (1) 그 기간 전체의 문헌에서 노예와 노예제를 통상 어떻게 서술하는지, (2) 신약성경 자체와 (신약성경 개념 대다수의 모판인) 그리스어 구약성경(칠십인경)에서 노예라는 용어가 어떠한 어감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가능한 어감은 (1) 인간-하나님 관계를 주인의 배타적 소유권, 전적으로 주인만 섬길 가능성, 주인에 대한 완전한 의존 같은 개념으로 적절히 묘사한 것으로 (2) 한정 지으면 드러난다. 그러한 관계에서는 그 밖의 강제 순종, 자유 상실, 비굴한 복종 같은 개념이 부적당해 보이게 된다. _ 서문에서

신약 시대에서 ‘노예 됨’이라는 배경을 감안할 때 우리는 신체적 노예 됨을 은유적 노예 됨과 구분해야 한다. 일상적 의미인 신체적 노예 됨에는 두 사람의 외형상 관계가 수반되어서, 주인이 노예의 신체와 노예가 하는 일을 ‘소유한다.’ 이번 장과 다음 장(즉 2-3장)은 이러한 외적 형태에 관심을 둔다. 반면 비유적, 즉 정신적 노예 됨은 두 사람의 내면상 관계와 관련이 있어서, 그 상태에서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지배 아래 있거나(예를 들어 ‘그리스도의 노예’), 무언가의 지배 아래 있다(예를 들어 ‘의무의 노예’, ‘유행의 노예’). 이러한 내적 형태의 노예 됨이 이 책 나머지 부분(즉 4-9장)의 초점이다.
그러나 신약 노예제의 배경을 논의할 때 추가로 신중하게 구별 지어야 하는 부분이 있으니, 바로 개념상 배경과 역사상 배경 사이의 구분이다. 교회에 이방인의 큰 무리가 급속도로 포함되기는 했지만 기독교는 유대교의 비밀 집회로 시작되었고, 첫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이었다. 그래서 문자 그대로의 노예제든 비유상의 노예제이든, 노예제에 대한 신약의 관점에 유대교가 나타나고 더 전반적으로는 고대 근동의 개념이 나타나리라고 예상해야 한다. 그러나 그리스-로마의 개념도 틀림없이 한몫을 한다. 신약 전체가 그리스어로 쓰였고 그리스어가 헬레니즘 시대의 공용어였으므로 신약에서 노예제를 나타내는 용어에는 그리스식 분위기가 묵직하게 따라온다. _ 2장에서

노예 착취를 반대하고 노예 매매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고대에 드물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1세기라는 배경을 고려하면 신약은 그리스도인 주인들과 동시에 노예들에게도 내린 명령 때문에 독특해 보이며, 신약에서는 주장할 권리보다는 실행해야 할 의무에 강조점이 있다.
첫째, 노예들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경륜에서 노예들은 주인들과 동등한 신분으로 올라간다. 그래서 이들의 개인 존엄성이 확립된다. 의미심장하게도, 기독교 이전의 사회 규범에서는 노예들이 편지 수신인에 들어가지 않았다. 노예들은 사람 취급을 못 받았거나 자유인들의 사회적 책임이 노예들에게는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노예들에게 존엄성을 부여했다는 증거는 다음과 같다. 1. 흔히 하우스타펠른(Haustafeln, 가정 규범)이라고 알려진 가정 의무 목록을 보면 노예들은 사도의 명령을 주인과 동등하게 받았다. 노예들은 도덕적 결정을 할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_ 3장에서

스토아 철학의 사유에 따르면 사실상 영적으로 자유로운 현자에게 외부 환경은 전혀 상관없다. 이를테면, 어느 사람에게 노예의 표식이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자유롭지 않다고 간주해서는 안 된다. 몸이 사슬에 매여 있을 때조차도 영혼은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스토아 철학에는 “노예이지만 자유로운”(둘로스 엘류테로스)이라는 역설이 있다. 그러나 기독교의 사유에서는 노예이건 자유인이건 그리스도인은 너나없이 영적으로 자유롭지만, 그래도 그리스도의 노예, 즉 ‘자유롭지만, 노예’다.
‘노예 됨 안에 있는 자유’는 기독교의 불안하지만 절묘한 역설로, 기독교의 또 다른 전형적 역설인 ‘약한 중에 강함’(참고. 고후 12:10)에 필적한다. 그리스도인의 강함이 하나님에 대한 의존을 인정하는 ‘약함’ 속에서 가장 완벽해지듯이 그리스도인의 자유 역시 오로지 그리스도와 그분 백성에게 전심으로 헌신할 때 완전해진다. 그래도 이 두 역설은 하나가 다른 하나의 당연한 결과이므로 단순히 유사한 역설은 아니다. _ 4장에서

이렇게 노예 됨과 소유권을 고찰할 때 무엇이 요점으로 부각되는가?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만드셨고 이제는 존재하게 하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으니”(고전 8:6) 모든 사람이 그분의 소유라는 의미다. 그런데 어떠한 의미에서든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특별한 소유, 바로 그분의 소유인 백성인 까닭은, 그리스도께서 신자들을 모든 불법에서 자유롭게 하시면서(딛 2:14) 그분의 노예로 사셨기(고전 6:19-20; 7:22-23)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사셨기 때문에 신자들은 완전히, 오직 그리스도의 소유이며, 그분의 노예들이 자원하여 받아들이는 포괄적 소유권에 포함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신자들의 절대적이고 배타적인 주인이시다. 구매에 대한 그분의 권리는 무한하고, 어느 노예도 서로 다른 두 주인을 적당히 섬길 수는 없으므로 그분은 주권을 놓고서는 경쟁자를 전혀 용납하지 않으신다. ‘구매 증명’ 즉 소유권 표시는 신자의 삶에 내주하시고 역사하시는 성령이다. 바로 그 성령은 하나님의 이 ‘자산’이 목적지에 온전히 도착하리라는 보증이다. _ 6장에서

처음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노예’가 되는 영광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겼는지는 신약 저자 네 명의 편지 서두만 보아도 뚜렷하게 보인다. 바울이 로마서를 “그리스도 예수의 노예인[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롬 1:1)로 시작하지,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이자(참조. 고전 1:1) 그의 노예”로 시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분명 의미심장하다. 베드로도 예상과 달리 베드로후서를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벧후 1:1)로 시작하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이자 노예”로 시작하지 않는다. 이들 초대 교회의 주요 인물 둘 다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는 것보다 그리스도의 노예가 되는 것을 더 귀한 특권으로 생각했다고 추론해도 되지 않을까? 다음으로 예수의 두 형제인 야고보와 유다의 증언도 있다. _ 7장에서

신약이 그리스도의 노예를 비유적으로 기술하면서 노예 됨에 항상 따라다니는 부정적인 특징을 제거한 결과 그 비유는 주 그리스도에 대한 신자의 배타적 헌신을 묘사하는 완전히 긍정적 이미지가 되었다. 둘로스라는 용어를 기독교 신자들이 사용하면서 둘로스는 듣기 좋은 구석도 있고 불쾌한 구석도 있는 말이 아니라 완전히 듣기 좋은 말이 되었다.
신약이 노예 이미지를 부정적으로도 긍정적으로도 사용한다는 것은 놀라워할 일이 아닐 것이다. 한편으로는, 우리는 죄에, 멸망에, 정욕에, 술에, 영적 권세에, 거짓 신들에게, 타인에게 노예가 된 사람들에 대해 읽는다. 다른 한편으로는 긍정적인 의미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에게, 그리스도에게, 의에, 순종에, 동료 신자들에게 노예가 되어 있거나 노예가 되라는 권함을 받는 것으로 묘사된다. “노예의 사회적 현실은 너무나도 다면적이고 모호했기에 의식적으로 숙고해야 이 용어를 서로 다른 비유의 의미로 제대로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Martin, Slavery as Salvation [1990], 60, 참조. xviii). 긍정적으로 쓰였든 부정적으로 쓰였든, 노예 이미지는 응용 범위가 다양하다. _ 8장에서

시리즈 서문 / 저자 서문 / 약어 표

제1장 서문
이 연구를 하는 이유
노예 신분 은유
‘하나님의 노예(들)’ 표현
‘그리스도의 노예(들)’ 표현

제2장 1세기 로마 제국의 노예제
유대의 노예제
그리스의 노예제
로마의 노예제
고대와 현대의 노예제

제3장 육체적 노예제에 대한 신약의 태도
노예들과 노예 소유
‘노예-자유인’ 대조
노예제에서 유래한 이미지
노예제에서 배척하는 측면
새로이 주입된 태도
바울이 빌레몬에게 보낸 편지
마무리 논평

제4장 노예와 자유
자유 ‘그리고’ 노예
노예 됨에서 벗어나는 자유
노예 됨으로 향하는 자유
노예 됨 안에 있는 자유

제5장 노예 됨과 주 되심
초기 기독론의 신앙고백
퀴리오스라는 용어
주인과 노예의 상관성
멍에로서의 노예 됨
노예가 하는 섬김
다른 사람들의 노예 됨

제6장 노예 됨과 소유권
소유권의 실상 / 소유 수단 / 소유권 표시

제7장 노예 됨과 특권
G. 자스의 견해
D. B. 마틴의 견해
그리스도의 노예 됨이 몇몇에게만 해당되는가?
‘그리스도의 노예’와 ‘하나님의 노예’의 관계
둘로스에 담긴 의미

제8장 신약에서 ‘그리스도의 노예’의 의의
노예 이미지와 기원
노예 관련 용어의 부정적 어감
전적으로 긍정적인 이미지로서의 그리스도의 노예
요한복음 15:15, 갈라디아서 4:7, 이 비유의 한계
그리스도의 노예의 이상적 상황

제9장 ‘그리스도의 노예’: 신약의 네 가지 사례
도르가 / 오네시보로 /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록
1. 칠십인경에서 둘로스의 용례
2. 노예를 나타내는 신약의 용어
3. 신약 영어 역본에서 둘로스의 번역

인류 역사상 ‘노예’라는 단어가 긍정적으로 사용된 적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약 성경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그리스도의 노예로 규정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머리 해리스는 노예라는 단어가 가지는 당대의 역사-문화적 의미뿐만 아니라 신학적인 의미를 꼼꼼하고 포괄적으로 연구하여 그 결과를 이 책에 담았다. 우리의 신앙고백처럼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이시라면 우리가 그분의 노예 됨은 당연한 것이고, 그 관계는 그 당시 주종의 관계와는 달리 억압적 강요가 아니라 상호간의 신뢰와 사랑에 근거해 있다. 이 책의 논지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우리가 그리스도의 노예라는 사실에서 진정한 자유를 맛보는 기쁨을 경험하리라 생각된다. – 신숙구(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신약학 교수)

트리니티 신학대학원의 머리 해리스 교수는 그리스도와 하나님께 대한 그리스도인의 관계를 그리스도의 ‘종’보다는 그리스도에 대한 전적인 순종을 의미하는 ‘노예’로 번역할 것을 제안한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대해 신학적으로 깊이 있고 신앙적으로도 크게 유익한 이 책을 성도, 목회자들, 신학자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한다. – 이상일(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신약학 교수)

어찌 보면 성경 이해는 용어와 격렬하게 다투는 싸움이다. 놀랍게도 성경에서 한 단어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성경 전체를 통찰하는 길라잡이 역할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해리스의 ‘둘로스’ 연구도 여기에 해당한다. 해리스는 고대 문서와 신약 성경을 넘나들며 학자들과 치열하게 논쟁을 벌인 끝에 ‘둘로스’의 의미를 선명하게 보여 준다. 아울러 복잡한 논의를 우리말로 멋지게 옮겨 준 번역자의 노고를 치하하고 싶다. – 조병수(프랑스 위그노 연구소 대표)

저명한 신약학자 머리 해리스의 이 책은 고대 지중해 주변 문화권의 노예제도와 노예 관련 용어들에 대한 상세한 연구를 바탕으로 신약의 핵심적인 가르침의 한 축을 매혹적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주제어가 ‘노예’이지만 여기에는 자유 개념, 주 되심의 개념, 속량 개념 등이 다 연결되어 있다. 이 책은 해리스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단어와 문법 연구가 곧 신학과 직결된다는 점이 그것이다. 돈 큐핏 같은 신학자는 오늘 시대에 걸맞지 않은 주인-노예 이미지를 폐기할 것을 주장하지만, 해리스는 섬김을 통해 참자유를 누리는 그리스도인 됨의 역설적 진리를 옹호한다. 읽고 배우고 실천해야 할 귀한 길잡이 역할을 하는 책이다. – 최승락(고려신학대학원 신약학 교수)

머리 해리스

머리 해리스(Murray J. Harris)
미국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의 신약 주해 및 신학과 명예 교수다. 영국 케임브리지 틴들 하우스 소장과 케임브리지 대학교 신학원 교수를 역임했다. F. F. 브루스 교수 문하에서 박사 학위(Ph. D.)를 받았다. 50년 이상 그리스어 신약성경을 읽고 가르쳤으며 NIV 성경 번역에도 참여했다. 요한복음, 골로새서, 빌레몬서 주해 가이드북을 저술했고, 그 외 주요 저서로는 NIGTC 고린도후서 주석 등이 있다. 국내에 번역된 책으로는 『막힘없이 성경 읽기』, 『신약에 나타난 부활』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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