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39-41, ‘제2장 이단은 왜 일어나는가?’ 중에서 ]
기독교는 어느 종교보다도 많은 이단을 산출해내었고 그 이단들은 그 어는 종교보다도 강력한 세력을 지니고 있었다. 가장 활기 있고, 현신적이고, 급속하게 성장하는 기독교 인들은 어느 시대나 할 것 없이 이단들이라 부리는 자들이었다.
그렇다면 왜 기독교에서는 결정적 견해 즉, 강력한 확신을 가지고 교회 내에 분리, 이단에 대한 문채기과 역문책이 일어났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기독교는 절대적 진리를 표방하고 심오하고 놀라울 만큼 신비로운 메세지를 선포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기독교는 구원과 영생이 믿음으로 말미암고 그 믿음이 그리스도 나사렛 예수 즉, 역사적 개인이신 분에 대한 것을 믿는 것을 의미했다. 그 분의 생애, 죽음, 부활 그리고 재림하신다는 의미는 각 기독교인에게 생사를 걸만큼 중요한 진리였다. 타인에 대한 기본적 이해를 의심하는 것은 자신의 개인적 견해를 의심하는 것뿐만 아니라 영원히 구원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약 성경의 메세지와 그것에 입각한 초대 교회의 선포는 놀랍게도 간략했다. 가끔 “예수님은 주님이시다”라는 어구로 요약될 정도이다. 이러한 어구는 슬로건으로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생명을 걸만큼 중요한 것이었다. 하지만 충분한 문맥에서 그것을 보지 않으면 무의미할 뿐이다.
그 슬로건은 아무런 설명도 덧붙이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어떤 분이신가? 하나의 인격체이시거나 개념이나 상징이 아니신가? 또 “주님”이시라는 의미는? 그리고 하나님은? 많은 하나님 가운데 한 하나님, 유일하신 하나님 이신가?
기독교 교리는 복음의 중요한 개념을 명쾌하게 설명하려 했고 개인과 세상의 관계 속에 그 중요한 개념을 두려고 했다. 기독교 교리문서 중 가장 ‘정통한 진술은 사도신경이다. 사도신경은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라고 시작한다.
이어서 등장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특별한 내용은 하나님, 성부, 그리고 모든 것의 창조자라는 문맥에 나타난다. 하지만 사도신경은 설명하지 않고 단지 정의할 뿐이다. 예수님은 성부의 “외아들… 이는 성령으로 인태하사 동정녀 마리아 에게서 태어나”신 분이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의미가 도대체 무엇인가? 니케아신조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와 동일하신 본질”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 분과 인류와의 관계는? 칼케돈 신조의 정의에 의하면, “인간성인 측면에서 우리와 같은 분이시며 우리와 동일한 본질로서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시다.”
451년 칼케돈 회의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사이에는 4세기라는 긴 세월이 걸쳐있다. 4세기 동안 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인간간의 관계를 문서화 하기에 이른다. 451년 이전 그리고 그 이후에도 선택적 문서와 설명이 계속하여 나왔다. 만일 칼케돈의 신조와 일치하지 않고 그 범위를 넘어가면 이단으로 정죄 받았다.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의 근거로서 성경망으로는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을 성부 하나님의 양자된 아들로 부르지 못하도록 금하지 못했다. 그 분이 “태어나셨다”고 말하는 것을 사도신경은 금하지만 그 분이 태어 나셨는지 영원하신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